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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영 시인 / 사건 A
몸의 70%는 언제나 사무실에 있다. 1%는 집에, 3%는 길 위에, 4%는 어느 바닷가를 거닐고 있다. 점심을 제때 먹을 확률은 50%, 이중 국적의 갈비탕을 먹고 주인 여자에게나 욕할 확률은 80%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사람들은 나를 나라고 말하고, 낮으면 변했다고 한다. 대꾸할 확률은 날씨가 나쁘면 50%, 좋으면 5%. 저녁마다 비치적비치적 비만 왔다. 사무실을 나온 70%가 곧바로 집에 돌아갈 확률은 15%, 술집에 앉아 노닥거릴 확률은 80%, 나머지는 마른 안주와 젖은 안주 사이에 낮게 깔려 있다. 어느 쪽이든 12시를 넘길 확률은 80%, 잔소리 들을 확률은 90%이다. 이때 내가 화를 낼 확률은 30%, 그랬을 경우 오래 살지 못할 확률은 95%라고 그녀는 말한다. 냉장고에서 2%를 꺼내 든 채, 엉덩이를 30%쯤 까고 변기에 앉아 잠들 었는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날 확률은?
송기영 시인 / 옥션에서 사는 법
네 건강은, 아침마다 새하얀 트레이닝복을 입고 운동을 나가는 옆집 여자와 비교할 수 있다. 너의 결혼 생활은 네 엄마와 이혼하지 않은 검은 토파즈의 아버지와 비교할 수 있다. 작년 실적은 중국에서 수입한 검은색 고춧가루와, 또 네 습관은 전봇대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말티즈와 비교 가능하다. 가벼운 우울은 항아리에 오랫동안 담겨 자기를 삭히고 있는 된장과 공통점이 있지만, 이런 네가 이런 된장에 밥을 비빌 때만큼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권태롭다. 무료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수저를 내려놓으면 너는 다시 불안하니까. 어쩌면 이런 불안은 전봇대에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전단지들과 비교할 수 있고, 가벼운 우울 역시 전봇대를 뽑을 힘이 없다는 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비교는 수면제를 먹고 다음 날 저녁까지 푹 잠이 든 불면증 환자와 비교할 수 있어 좋다. 당일 배송, 한 통에 삼만 팔천 원. 어쩌면 네 건강은, 새벽 운동을 나갔다가 집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한 여자와 비교할 수 있다. 너의 결혼 생활은 네 엄마가 재혼한 붉은 셔츠의 아버지와 비교할 수 있고, 네 습관은 전봇대에서 담벼락으로 옮겨 붙은 지 오래다. 현상 수배된 자기를 지르기엔, 네 작년 벌이로도 충분하다. 비유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다들 비교는 하고 산다. 적어도 비교해서
송기영 시인 / 발치
그이와 만난 건 아주 오래 전이었어요. 남들은 운명이라 그러더군요. 기쁠 때나 슬플 때에도 그이는 나를 위해 일했지요. 가끔은 단단하게 박힌 못을 뽑거나 소주병을 따 주기도 했고요. 또 옆집의 그녀들을 씹을 때면 기꺼이 힘을 빌려 주기도 했어요. 그이는 참,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이는 강했어요. 그래서 그이와 그렇게 끝날 줄 생각지도 못했죠. 함께 산 지 고작 삼십 년밖에 안 되었는데. 그이는 너무 닳아 납작, 엉그러졌죠. 의사는 그이의 사랑이 다 됐다고 내게 이야기했어요. 그래도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진 아직 남은 이가 있으니 괜찮겠죠. 생각보다 이별은 쿨해서 좋았어요. 그이에게서 어렵지 않게 쏙 빠져나왔으니까. 혼자 남은 그이. 먼발치에서라도 한 번 볼 걸 그랬나요.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이와 마주했던 곳에 자꾸 피가 배네요.
송기영 시인 / 웃음 쿠폰이 경제에 미친 사소한 영향
정부는 가족의 건강과 복지 증진을 위해 웃음 쿠폰을 발급했어요. 울적하거나 울먹할 때 가까운 인출기에서 뽑아 사용하면 되죠. 하지만 수산물 센터 김씨는 오징어 회 한 접시 에 자신의 쿠폰을 끼워 팔았어요. 대형 할인점에 우유를 납품하는 박씨도 자신의 쿠폰을 사용해 왔고요. 부도덕한 상술이라고 비난한 사람들도 있지만, 불법이랄 게 있나요. 뭐랄 까, 그렇게밖에는 쿠폰을 쓸 수 없었나 보죠. 덕분에 여분의 웃음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 서, 밤새도록 웃을 수 있는 도시의 경계도 생겨났어요. 누구는 경계가 아니라 전선이라 말 하지만, 그저 우리는 더 많이 웃을 수밖에요. 그래서 우르르 필드로 몰려 나가 에스까르고 를 까며 꺄르르 웃었어요. 까르페디엠! 가끔 경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묻곤 하 죠. “너, 그 웃음 어디서 났니?” 뭘 하든 사업만 잘되는데 어떠려구요. 안 그래요, 코리아?
송기영 시인 / 실내악
식물을 입양했다. 새끼여서 앙증맞다. 키우기 좋게 성대를 제거하고 중성화 수술을 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날, 그것은 축축한 뿌리를 앞섶에서 꺼내 스텐그릇에 담긴 물을 날름 마셨다. 그리고 볕이 드는 베란다에서 잠이 들었다. 걱정과 달리 식물은 무럭무럭 자랐다. 털이 길어지면 속아주었다. 살찌지 않도록 운동을 시켰고, 우울해질까 운동을 시켰으며, 바람 소리에 울지 않도록 또 운동을 시켰다. 모두들 예쁘다고 쳐다봤고, 한 번쯤 파란 어금니를 만져보고 싶어했다. 식물이 그들의 손을 덥썩 무는 법은 없었다. 최소한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했으니까. 식물을 입양했다. 근육이 발달해 점점 실내를 채우고 있는 식물, 식탐이 심해도 몸매 관리를 위해 하루 한 끼만 먹는 식물. 말이 없어서 좋은 식물, 다 커도 얘는 앙증맞을 거야. 모두들 웃었다.
- 계간 《시사사》 2021년 여름호
송기영 시인 / 제조업입니다
말 제조를 합니다. 제조업이죠. 끼워 달거나 기워 넣습니다. 잘못 갓다 붙이면 쪽박을 차기도 합니다. 엎지를 수 있지만 마음만 먹으며 기어코 주워 담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몇 번 먹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말입니다. 말의 생산성은 분위기에 달렸습니다. 분위기를 뛰어넘는 말이 있다면, 반역이거나 혁명입니다. 말 조제가 아니라 제조입니다. 귀가 없는 당신에게 어떤 말이 약이 될 수 있을까요. 말놀이나 하다가 약이나 안 올렸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귀를 물어뜯으면, 말꼬리를 잡고 뱅글뱅글 돕니다. 뚫을 수만 있다면, 말총을 만들어 심장을 겨눌 텐데.
말 제조를 합니다. 궁하면 찍어 내는 게 말이라고 하지만. 있는 말도 아니고 없는 말도 아니고. 산 말도 죽은 말도 아닌, 무엇인가 상큼 발랄 유쾌한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것인데. 어젯밤 내가 당신에게 건넨 건,
말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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