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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용만 시인 / 사랑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8. 13.

김용만 시인 / 사랑

 

 

뒤란 꽃들이 붉다.

자꾸 뒤꿈치를 들어

방 안을 넘어 본다.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궁금한 것

그리하여 마주 보는 것.

분명 사랑이다.

 

-시집 <흘러가는 기쁨>

 

 


 

 

김용만 시인 / 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

 

 

새들은 날기 위해

쉴 참마다 머리를 산 쪽에 둔다

 

가벼워지기 위해

뇌의 크기를 줄이고

뼛속까지 비운다

쉽게 떠나기 위해

움켜쥘 손마저 없앴다

 

새들은 쉴 참마다

깃털을 고르고

날면서도 똥을 싼다

 

자유로이 떠나기 위해

 

깃털 하나만큼 더 가벼워지기 위해

 

오늘은 먼 길 떠나려나

 

이른 아침부터

뒷산에다 울음마저 버린다

 

-시집 <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에서

 

 


 

김용만 시인 / 산

 

안개가 산을 감추는 것은

산도 울고 싶을때가

있기 때문이다.

가끔 읽고 보고 좋아라했더니

가심에 콕 새겨진 시,

오늘, 해질녘에

완주 소양 시인님댁에 다녀 왔다.

 

 


 

 

김용만 시인 / 딱새 놀다 가는

 

 

야트막한 야산이 하나 있음 좋겠다

약간 경사가 져도 좋겠다

듬성듬성 돌이 박힌 양지면 더욱 좋겠다

흙과 돌멩이 모으고 가려 쌓으며

힘써 개간하고 싶다

따그락따그락 호미 끝을 세워

서늘히 땀에 젖고 싶다

가르마 같은 밭고랑을 타

딱새 놀다가는

빈 밭이어도 좋을

돌이랑 흙이랑 한나절 놀고 싶다

산그늘 따라 신발 털고 돌아와

긴 겨울밤

무심히 단잠에 빠지고 싶다

 

 


 

 

김용만 시인 / 지게

 

지게가 사라지고

어깨가 허전해지면서

불행이 시작되었다

지고 다닐 수 있을만큼의 거리

지고 다닐 수 있을 만큼의 무게

지고 다닐 수 있을 만큼의 크기가

사라진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어깨에 아무것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픔을 모르는 시대

가난을 모르는 시대

무슨 외로움이 있어

한 줌 사랑을 얹겠는다

 

-시집 <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

 

 


 

 

김용만 시인 / 호박꼬지 마르는 동안

 

 

초가실 맑은 햇살 마당에 가득하다

저 햇살 몇 삽 담아

요양병원 어머니에게 가야겠다

병실 가득 눈부시게 깔아놓고

참깨 털고

고추 널고

호박 곱게 썰어 하얗게 널어야겠다

귀가 어두운 어머니와 바위에 앉아

해 지는 강물을 오래 바라봐야겠다

꼬들꼬들 호박꼬지 마르는 동안

 

 


 

김용만 시인

1956년 전북 임실 덕치마을 출생. 전주대 국문학과를 졸업. 2012년《포엠포엠 》 신인상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