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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유춘희 시인 / 선데이 서울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8. 16.

유춘희 시인 / 선데이 서울

 

 

그 여자는 너무 쉬운 문장 아무나 눈을 돌려

흘끗 훔쳐 읽기 좋은 여자

가판대 앞 선 채로도 후루룩 읽혀지는

펜팔구함경기도고양시합정동68번지이름장대혁

나이19세직업학생전화354-1865가 이데올로기의 전부인,

물리 공책과 수능 완전 정복 사이에 낑겨 있다가 킥킥

돌려지던 여자

사랑방 보료 밑에 오래 깔려 있던

자랑스런 대한 남아 조병익 병장 침낭 속에서

며칠 밤 불침번 서는 여자

때로 서울―순천행 고속버스 뒷좌석 그물망에 걸쳐 앉았다가

본격적으로 읽혀지기도 하는, 그러나 대부분

단숨에 읽히고 거침없이 툭, 버려지는 여자

버려져 다 찢겨지고도

몇 차례 더 읽혀지는

 

너무 쉬운 여자

아무에게나 배시시 눈꼬리 흔드는

늦여름 패랭이 같은

시대여 ! 시여 !

 

 


 

 

유춘희 시인 / 그리움의 사칙연산

 

 

그리움에그리움을더하면두개의그리움이되고

그리움에그리움을곱하면두곱의그리움이되고

그리움에서그리움을빼도그리움은남는다

그리움을그리움으로나누어도그리움은남는다

남는그리움에또다른그리움을더하고

더해진그리움에또다른그리움을곱하고

그리고빼고또나누고나누고또빼고

 

떡주무르듯주무르는그리움자꾸손끝에묻는다

 

 


 

 

유춘희 시인 / 나물 속에 묻는 그리움

-토란잎, 호박잎 혹은 연잎위의 빗방울

 

 

샐쭉하게 돌아앉은

너의 문은 오늘도

나를 위해 열리지 않았다

 

앙다문 네 마음을 열고 들어가

우단처럼 너를 덮고

잠들 수 있다면...

 

스미지 않는 네가 있어

스미고 싶은 내가 있어

매번 같은 자리로

끊임없이 나를 부러뜨리는 것이다

 

눈물 툭툭 부러뜨리러

날마다

너에게 가는 것이다

 

 


 

유춘희 시인

1963년 충남 천안 출생. (유정이). 홍익대 국어교육과 및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3년 월간 <현대문학> 신인상 당선되어 등단. 시집 <내가 사랑한 도둑. 2002년  <동화 읽은 가족>으로 푸른문학상 수상. 2003년 동화집 < 이젠 비밀이 아니야> 시산맥 동인. 현재 홍익대학교 교양학부 겸임교수로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