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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정현 시인(芝園) / 추일정현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8. 16.

김정현 시인(芝園) / 추일정현

 

 

낙엽(落葉)은 폴란드 망명정부(亡命政府)의

지폐(紙幣)라고

김광균 님은 추일서정을 그렇게 노래했지

 

그러나

내게 낙엽(落葉)은

백지(白紙)로 온 굳은 약속(約束)의 편지

 

이 生에 이루지 못한 꿈

내 生에 이루자는 헛된 의지(依支)

 

하얀 백지(白紙)에 빼곡히 담긴 아픔이

누렇게 뜬 잎새가 되어 갈 바람에 휘-휘- 날린다

 

 


 

 

김정현 시인(芝園) / 별

 

 

보송보송 바람 좋은 날 먹물 짙은 하늘에 그이와

내 눈에만 보이는 보석들 그 중에 가장 영롱한 보석 몇 개

호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값 잘 쳐준다는

보석상인 만나면 돈 두둑히 받아 고장난 몸

튼튼히 고치고 싶어하는 농아인 아저씨

병원비 내 드리고 툭하면 수돗물 난방 고장으로

고생하는 월셋방 사는 윤할머니

수돗물, 난방 잘되고 월세 걱정 없는 방 한 칸 마련해 드리고

그래도 남으면 이씨 할아버지 부실한 치아

틀니 끼워드려 식사 꼭꼭 씹어 드시게 하고 싶다

그런데 나도 그이도 그 보석 손에 닿지를 않아

키가 한참 더 자라기를 기다려야겠다.

 

 


 

 

김정현 시인(芝園) / 암바라와 해바라기

 

 

유리알 같은 하늘 아래

일제의 총칼 앞에 무너진 소녀의 아픔

 

하늘 끝 저기쯤 뛰놀던 동산일 것 같아

하염없이 바라보며 가만 서있습니다

 

허름한 칸막이 앞에 늘어선 그림자

무섭고도 두려워 오들오들 흔들립니다

 

서슬 퍼런 사나운 늑대들에게 물린

생채기가 뽀얀 몸에 피었습니다

 

꽃잎에 떨어진 빗물이 흐르지 못하고

출렁이다가 거뭇한 상처로 물듭니다

 

일천구백사십오 년 팔 월 십칠 일

만세 소리가 하얀 구름에 실려왔습니다

 

부풀던 기쁨은

빈 주머니 스치는 바람이었습니다

 

뿌리 깊은 그리움이

환향녀, 환향녀 환청으로 떠돌다

귀딱지 촘촘히 박혔습니다

 

암바라와 들풀 되어

거칠게도 박혔습니다

 

-시집 『둥근 달 허리를 묶고』에서

 

 


 

김정현 시인(芝園)

경기도 광주 출생. 2004년 계간 <지구문학> 신인상 등단. 한국문인협회회원. 화백문학편집부장. 천수문학회. 밀레니엄문학회. 해바라기 동인. 시집 『내가 사랑한 사기꾼』 『복사골 춘향이』 『광야에 떨어진 풀씨』 『네가 손끝으로 말하면 나는 작은 눈으로 듣는다』 『그림자에도 색깔이 있다』 『둥근 달 허리를 묶고』. 공저 『눈먼 사랑을 깨우는 종소리』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