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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인서 시인 / 3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8. 16.

이인서 시인 / 3

 

 

우리집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3이 있다

굴러다니다가 손에 잡히면 장롱을 받치는데 쓰이기도 하고

발에 걸리면 느닷없이 채이기도 하는3

 

3은 세 번째 문을 통해 들어와서

세 번째 숟가락으로 밥을 먹고

세 번째 호흡으로 숨을 쉬고

세 번째 옷을 입고 학교에 간다

리폼인지 니폼인지 무릎이며 팔꿈치가 오바로크 쳐진 옷을 입고

세 번째 줄에 서서 흘러가는 구름을 보다가

세 번째 의자에 앉아 영화를 본다

아무리 벅찬 감정도 꾹꾹 눌러두었다가

세 번째 웃음으로 웃고

세 번째 울음으로 운다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그래서 얼굴이 없는 3

어디로 튈까 고심 중인 3

3속에 숨어 편히 쉬고 있던 숫자들은 어디로 갔나

심부름 중인3은 언제 돌아오나

부르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3

 

나는 짝수 밖에 갇혀 살았다

1 3 5 7 9를 외치며 홀수의 잔을 비웠다

 

저기 출발을 서두르는 세 번째 열차가 오고 있다

마지막 보루 같은 삼세번을 외치며

나는三生의 기차에 오른다

 

 


 

 

이인서 시인 / 카스 혹은 돔페리뇽

 

 

 거품을 마신다 오늘의 기분과 소문을 구성한다 거품은 번지고 소문은 둥둥 떠다닌다 나는 무중력 상태에 빠진다 나는 거대한 거품이다 나는 거품을 밀어내지 않고 거품은 나를 밀어내지 않는다 밤마다 우리는 한데 섞인다 나는 거품의 추종자

 

 거품을 따라간다 거품은 나를 바다로 데려간다 헤엄 칠 줄 모르는 나는 거품을 타고 바다로 나아간다 소문을 노 삼아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간다 나는 거품의 무게를 재지 않는다 거품의 출처도 캐지 않는다 무게는 쉽게 무너진다 거품은 거품끼리 부딪쳐도 서로 구멍을 내지 않는다 거품 속에서는 근심에도 무게가 없다 뭉치고 뭉쳐서 스크럽을 짜도 부드러운 거품, 거품에 내 혀가 녹아내린다 벌겋게 달아오른 저 거품, 폭발할 것 같지 않나요? 나는 거품에 부딪히지 않으려고 몸을 돌린다 부유하는 저 거품들은 언제 터지려나 우리는 언제 생시를 떠나려나

 

 펑, 소리를 내며 병뚜껑이 날아간다 우리도 함께 펑, 블랙아웃!

 

(2015. 다층 봄호)

 

 


 

 

이인서 시인 / 그래 떠나라 하자

 

 

다 퍼주고도 남을 만치

넒은 도량을 지닌 마음도 아니다

이른 아침

네 창가에 서리는 촉촉한

이슬이 지난밤에 흘렸던

그리움의 두께만치 쌓일 때

호호 불어 네 아픔을 덜어줄 만치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아름답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컴퓨터 책상에 앉아서

닿을 듯 말 듯한 펜을 집으려

응덩이를 들썩이기도 귀찮아

그 문장을 지워 버리는 능동적인

삶보다 게으름의 묘수를 찾는

그런 위인이라 듣고 손가락질 받는 것이

나에게는 더 적절한 표현이리라

 

이렇게 말하자

사랑은 기다리는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하자

사랑은 더디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발걸음이 마음 걸음이

이 향한 바라봄이 부끄러러울 뿐이라고

자신만 그리워할 뿐

내 사랑은 아주 멀리 떠나 버렸다고

네가 찾던 사랑은

메마름 갖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래

다 떠나라 하자

더디 오는 사랑이든

멀리 보는 사랑이든

떠나라 하자

그래 그렇게 하자

 

 


 

이인서 시인

1959년 전남 영광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불문과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2015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