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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지현아 시인 / 맏이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8. 16.

지현아 시인 / 맏이

 

 

이가 몽땅 부러지는 밤

부러진 이를 입안 가득 물고 있는 꿈

다 잃은 것 같고 다 가진 것 같은 순간

가지런한 말들이 똑똑 부러져 입안을 할퀴는 잠

고인 침이 목구멍으로 달아난다 나에게 들키지 않고

혹은 내가 짐짓 외면한

 

이불 속에서 입안에서 와글대는 하소연들

엎어진 퍼즐같이 되었지만 아직 혼날 순 없답니다

좀 더 근사하면 좋았겠지만 이 꼴을 보며 유감이지만

만에 하나 잃어버린 조각이 있다면

그곳엔 꽃을 심을게요

 

커다란 문처럼 정원을 지키는 두 앞니

치열을 읽는 게 혀의 취미라서

교정은 할수록 어렵다고 사전에 치치카카

잇새에 꽃이 피었다는 설화

 

백색은색 접착제로

밤새 부러진 잇조각들을 붙이니

또 하룻밤이 입을 앙다문다

 

집을 나서 내가 웃으면

실금이 간 이들이 덩달아 와글대고

 

어쩌다 그 틈을 비집어

꽃 한 송이 내비치는 날도 있었다

 

- 2016년 <시와 문화> 봄호

 

 


 

 

지현아 시인 / 넌 어디에 있니

 

 

여름에

신발은 문밖에 두고서

들어온 고양이가 있었다

나는 왜

자꾸만 이곳으로 올까요

되려 물으며 밥을 먹고

맞춘 눈을 아래에서부터 부풀려

감았다 뜨는

턱시도를 입은 고양이가

종이피아노를 연주한다고 했던가

골판지를 내어주자 열중하던

네가 잠이 들었을 때

작은 몸에서 들리던 소리와 진동이

종이피아노와 닮았더라는 기억

흰 배 검은 얼룩에 손을 얹고

너는 이제 고양이피아노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고양이가 오지 않던 날이면

배앓이를 했다

창을 등지고 누워

빗소리도 종이피아노를 닮았다는 생각

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창밖이 잘 보이지 않는 날에 내 마음은 더 잘 보였고

네가 오지 않는 날이 늘어나며

계절이 바뀌었다

지난 여름 너를 몰랐는데 다음

여름의 우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건

도둑고양이의 마음일까 내가

길고양이가 지나간 길이었대도

할 수 없지

우리는 여름을 살았고 우리의 여름은 지났고

길 위에서

고등어나 치즈 같은

야옹 혹은 안녕처럼

이름이 아닌 이름들을 부르는 동안

네가 오지 않을

여름이 왔다

 

 


 

 

지현아 시인 / 작은 주체와 작은 대상들의 이야기

 

머리카락이 움큼 빠졌다 쓰다 만

글자처럼 보인다 글자가 되지 못한

선들이 바닥을 누른다

현재를 고정한다

다음 바닥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바닥 내가 사는 피부*

​파도가 치지 않는 바다

받침이 없는 말 파도 소리

낙엽 쓰는 소리가 들린다

물을 빼앗긴 잎은 소리를 가진다

창문을 열면

무언가 타고 남은 재가 날린다

열차가 지나가자 쇠맛이 난다

누군가 피를 흘리고 있을 것이다

편지 멀리 떠난 사람이 두고 간 피부

만질 수 있는

눈이

얼마 전 떠나간 사람들의 뼈가

내린다

*영화 제목 인용

 

 


 

지현아 시인

서울 출생. 영남대 철학과. 2011년 《문학과 창작》을 통해 등단. 시집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