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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두순 시인 / 우주쇼 외 8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8. 26.

박두순 시인 / 우주쇼

 

 

우주쇼

본 적 있니?

 

봄날 들길에 나가 봐

여기 저기서

민들레꽃이

우주쇼를 하고 있지

 

그꽃 누가 피웠나?

우주가 피웠지, 우주의

햇볕, 바람 구름, 달빛이 들어 있지.

 

우주쇼를 마치면

민들레는 하얗게 하얗게

우주선을 날린대

조그맣고 까만 씨앗 하나씩을 태워

 

그 우주선에게

손 흔든 적 있어.

 

 


 

 

박두순 시인 / 동그라미를 받았다

 

 

저수지에 돌을 던졌더니

큰 저수지가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아팠나 봅니다

 

그래도 참고

 

동그랗게

동그랗게

동그라미를 만들어

내 앞에까지 보내 주었습니다.

 


 

박두순 시인 / 꽃에게

 

 

나는 사람들에게

네 칭찬을 자주 한다

 

신이 만든 것 중

가장 성공한 게 너라고.

 

널 아무리 헐뜯으려고 해도

아름다워 번번이 실패다

 

너 앞에선

절망이다  희망이다

아름다움 밖에 보지 못해서.

 

 


 

 

박두순 시인 / 서운함

 

 

지우개가 돼

그를 지웠다

바람에 날려 지웠다

구름에 얹어 지웠다

땀방울에 뭉개 지웠다

빗소리에 섞어 지웠다

파도에 밀어 넣어  지웠다

지워졌나 했는데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찌든 때 같았고 붉은 녹 같았고

아스팔트에 들러붙은 껌 같았다

떨어지는 꽃잎에도 묻고

낙엽으로 덮었는데도

그는 살아있었다.

 

 


 

 

박두순 시인 / 지움

 

 

살아간다는 건

쌓고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이 시를 쓰고 있는 볼펜심을 본다

이 순간도 심의 잉크가 줄어들고 있다

잉크를 지우고 있구나

살아간다는 것도 지우는 거구나

 

부드럽던 시절을 지우고

팽팽하던 살결을 지우고

순수했던 눈빛도 지우고

받는 세월을 써버리고

희망이란 것도 그만큼 지우고,

 

마침표 한 점을 얻는구나

점 하나 안에 뭉뚱그려지는구나.

 

-시집 <찬란한 스트레스를 가지고 싶다> (2014년 발행) 중에서

 

 


 

 

박두순 시인 / 물소리

 

 

물의 음성은

돌이 만든다

 

목소리 하나

갖고 싶은 돌

 

물 아래

엎드려 주고

물의 낭랑한 음성을 갖는다

 

 


 

 

박두순 시인 / 시국(時局)

 

 

너도 나에게

읽히지 않고

 

나도 너에게

읽히지 않는

 

서로 난해한 때이다

 

-어두운 두더지, 시선사 2022.

 

 


 

 

<동시>

박두순 시인 / 편지

 

 

편지 왔다, 꽃편지

들의 조그만 민들레꽃

 

가장 큰

들 편지지에

 

가장 작은

꽃 편지,

 

들길이 읽는데

내 마음이 다 젖었다.

 

 


 

 

<동시>

박두순 시인 / 두 산의 이야기

 

 

1. 가을 산

 

밥을 먹인다

 

찾아온

새들에게

 

찾아온

다람쥐들에게,

 

그리고 남은 밥을 먹는다

도토리 몇 알로.

 

 

2. 겨울 산

 

잠을 재운다

 

찾아온

개미들을

 

찾아온

곰들을,

 

그리고 맨 나중 잠든다

하얀 눈을 덮고.

 

 


 

박두순 시인

1950년 경북 봉화 출생. 대구교육대학교 졸업. 1977년 <아동문학평론> <아동문예> 동시 추천. 1991년 시집 <그대를 적시는 빗소리> 발간과 <자유문학> 시부문  신인상. 동시집 <들꽃과 우주통신> <누군가 나를 지우개로 지우고 있다> <망설이는 빗방울> 등 7권. 초등학교 교과서에 '몸무게' 등 4편의 동시가 실림. 한국아동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방정환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박홍근아동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수상.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 동시전문 계간지 <오늘의 동시문학>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