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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림 시인 / 달에게
어찌하느냐 뻔히 닿지 못하는 줄 알면서 감히 손 뻗어 인연(因緣)을 이어보려 했던 나 하염없이 띄워 보낸 그 많은 연서는 한 줄 한 줄 그대로 되돌아 왔다 네 차가운 미소와 함께. 거절당한 내 사랑 그러나 돌아설 수 없는 미련한 사랑 어찌하면 좋으냐
김림 시인 / 밤하늘 엿보기
밤하늘이 열매에 빠진 광경을 그만 보고 말았다 은밀히 속삭여야 할 것들 그 누구에게도 말고 단둘이서만 주고 받아야 할 그들만의 달콤한 언어를 어쩌다 나 그만 듣고 말았다 나 혼자 화끈 달아올라 바람에게 달려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 어쩌랴 하필이면 홀로 애달픈 이토록 깊은 밤에
김림 시인 / 구름의 서사
처음부터 이렇게 우울한 낯빛은 아니었다 정처가 허락되지 않는 까닭에 작정 없이 서성였을 뿐 대개 노선은 비슷한 길이었다 이제 막 태어난 어린 안개구름이 햇살 사이로 해사하게 웃는다 모를 것이다 얼마나 험난한 여정이 펼쳐질지 면사포를 쓰고 새털처럼 가볍게 양떼를 따라간 이도 성긴 비늘을 털어내는 두툼한 잿빛 눈썹의 사내 앞에선 난색을 표했을 것이다 천둥과 벼락을 만나면 생면부지의 남이라도 왈칵 껴안고 부둥켜안은 채 거세게 저항했으리라 한 몸이 되었다 한들 영원할 수는 없으므로 흩어졌다 모이고 반복되는 이합집산 이별에 익숙해져야 한다 예고 없는 비극은 언제나 모서리를 세우고 한바탕 수직으로 휘몰아친다 출산을 앞둔 바다사자처럼 무거워져 눕는 구름 빗물 가득한 만삭의 배를 어루만지며 낮은 곳으로 미끄러진다
이제 쉴 때가 되었다
-계간 『사람의 문학』 2022년 가을호에서
김림 시인 / 호숫가에서
한평생 게으름을 부렸다 사랑을 지키는 일에도 사랑을 버리는 일에도 그저 손 놓고 멍하니 떠나가는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 둘 잃어갈 때마다 괜한 심술은 늘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졌다 어째서 너는 미동도 없는 것이냐 호수에 물이 반 던져 넣은 돌이 반 파랗게 물든 호수를 들여다 보며 아차 싶었다 애꿎은 돌팔매에 이리 멍든 것이냐 죄스러웠다 호수가 저 홀로 하늘을 사모하여 몰래몰래 하늘 언저리 한 조각씩 떼어다 제 속에 머금어 둔 줄 꿈에도 모르고,
김림 시인 / 아침단상
빈속에 쓸어담는 커피가 쓰기는커녕 달디답니다. 새벽부터 저 혼자 중얼대던 TV는 혼자서 지쳐가고 어둑한 조명거둬 보일 듯 말 듯 입김을 뿜는 아침, 잠든 그대를 흔들어 깨웁니다. 푸른 웃음 날리며 그대가 챙기는 한장의 조간에 그늘처럼 잠시 스치는 어제 일들. 접고 나면 아무 일 없이 덮히는 그런 사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김림 시인 / 너를 보내고
저세상으로 앞서간 그대 살만한지 꿈에서조차 찾아오지 않는다 그대 없는 세상 살아 무엇하냐고 그대 있는 저세상에 가야겠다고 무섭도록 빠르게 그대에게 가리라고 차에 오른다 무심코 당겨 매는 안전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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