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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빛나 시인 / 흰수마자
강기슭 왕버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이른 봄부터 댐을 쌓는 공사로 내내 소용돌이가 인다 물살이 바람의 머리칼을 휘감나 싶더니 어느 순간 발설하는 자세로 왼쪽 방향을 푼다 모래톱에 조금씩 거친 소란이 일어도 온 몸의 고운 빛깔은 지나온 바닥의 깊이를 알 수 있는 내밀한 순간이 있음을 느낀다 댐 잠수부는 내심 물의 촉수로 긴장된 감정의 모서리를 굴리며 쉼을 풀었으리, 언제부터인지 물 속 벽의 실금을 살피는 것도 발부리를 긁어 나아가는 것도 앞서 간 어머니의 기우였을까 예민한 근성은 조용히 한 길을 고집한다 물살에 휩쓸리는 칼날 시선을 고정시키기 위해 자그락거리는 자갈의 무게를 가슴으로 누른다 어머니의 한숨처럼 깊은 물속에 혼자가 되는 시간이 많다 봄부터 여름을 잇댄 댐 공사가 더 빨라져 물 소용돌이를 익숙하게 방어해야 하고 강 속 어디에 묻힌 줄 모르는 모래의 아픔을 생각하다가 미끄러지는 찰나, 내성천 어머니의 물은 긴 기다림처럼 왕버들 그늘이 수심 한가운데로 와서 그의 몸을 끌어낸다 물의 가장자리가 따뜻하다
강빛나 시인 / P2P
혁명은 극단적이고 물음은 새로워야 한다
중앙은 가릴 것 없는 벌판이어서 재미없다 위험해지기 위해서는 모르는 곳으로 사라져야 한다 모든 혼자는 위험하다
은밀한 디아스포라에게 잠은 사치가 된 지 오래 쉽게 쌓는다고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거야 둔감한 경계가 빗나가는 것을 묵인할 때도 있다
블록은 벽돌처럼 단단해서 몸에 체인을 감고 오르면 내가 나답게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벌판의 중심이 아니었고, 가장자리나 바닥에서 맴돌았다 관계의 수직은 일찌감치 없거나 해체되어 불신자 이름에 오르지 않아도 되었다
이 밤 텅 빈 중앙을 넘는다 나를 검열하지는 마 국경은 없으니까
타우마제인, 일곱 살 때부터 난 어디든 넘나들고 싶었다 문제는 어려울수록 구미가 당겼으니까 누구보다 빠르게 마이닝을 하고 낯선 것은 블록을 쌓는 일처럼 즐거웠다
거칠한 바닥에서 믿을 건 오로지 자신이야 다 털린 아버지는 벽돌을 나르며 중얼거렸다
아찔한데도!
예측할 수 없어서 쌓은 것이 헛수고일 때도 편향적으로 재미있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아래 없이 암호로 세상을 타전하는
나는 지금 위험한 골방이다
강빛나 시인 / 명예, 고양이 족보
이것은 고양이 소유권에 대한 결투 사람들은 물러설 곳 없는 부두에서 싸웠다*
검은 가까워서 아무 때나 죽음을 기념하기 좋아
맞거나 찌르거나 사는 일이 사소해서 사소하지 않으면 목숨 걸 일없어서
나는 없고 오로지 고양이 족보가 쓰인 두루마리를 가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골몰하다가 모래 위를 걸었다
거슬러 족보를 뒤적이면 무지개를 닮은 반골의 오드아이,
눈빛으로는 알 수 없어서 앙고라 고양이를 두고 사람들은 표정을 주름처럼 반복해서 구겼다
바보 같군요 당신은, 겁이 많아서
바)))))))))))보))))))))))(((((((
메아리는 해변의 그림자를 흉내 내며 돌아오고
농담에 기분이 상한 진지한 사람들이
제각각 믿고 싶은 소문만큼 발레리나 보폭으로 우아하게 사라졌다
*알랭드 보통의‘불안’에서 인용
강빛나 시인 / 한사람
당신의 무게 벚꽃잎보다 가벼웠나 봐요
해가 안 뜨는 줄 알았는데 밥을 먹어요
새벽보다 먼저 일어나고 저녁보다 늦게 잎이 돋았다고 당신은 더 뛰고 비가 온다고 나는 우산을 돌렸어요
잠시, 당신 이마에 주름이 몇 개였나를 생각을 하다가 내일 아침 찌개에는 뭘 넣을까 고민해요
벚꽃 뿌리였던 당신
당신이 없는데 어떻게 봄이 오는지 별 것이 아닌지
강빛나 시인 / 뭉게구름 벙글어지듯이
여름을 닮아 속심이 든든한 그녀는 물돌이로 커가는 감자꽃을 좋아했다 5월 감자꽃을 생각하면 가난의 성장통이 쉽게 지나가고, 꽃이 피기 전에 유전을 자르면 실한 엉덩이처럼 꽃은 밭고랑을 꽉 채우고도 남았다 그녀는 꽃을 그대로 두면 웃자라 내성천의 보슬보슬한 감자 맛을 잃기 쉽다고 했지 인간의 생각이란 어쩌면 중심보다 중심을 살짝 비껴가는 부푼 꽃 색이 좋아서, 펼치면 조금 감추고 싶은 이력서처럼 백사장은 감자 꽃잎이어서, 그 속에 노란 들판을 꿈꾸기도 하지 복사열에 꽃잎이 느슨해지면 통나무다리를 세워 공중에 오르고, 고무대야에 앉아 물미끄럼 타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는데, 땅을 밀고 올라오는 바지랑대에 눈길이 닿는 그녀와 나는 닮은 곳이 없지만 자른 감자 꽃대를 몇날며칠 식탁 위에 놓으면 꽃잎은 뭉게구름 벙글어지듯이 땅 한 평 빌려주고 일수 놓는 걸음으로 장마가 오가는 사이, 감자는 그녀를 꼭 닮아 버릴 데 없이 야물었다 잘라야 할 때, 딱 자르면 속 썩을 일이 없는 걸까 항상 오른쪽에 가방을 메고 같은 자세로 살아가는 그녀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틀 시간이 없어 자르는 일도 구름 타듯 하지 그녀가 장터에 감자를 팔고 온 밤은 배추, 열무 모종을 생각하지 서른다섯 시간으로 쪼갠 하루지만 늘어진 여름 물돌이에 발을 담그고, 가끔은 육지 속의 섬을 자처해 보는 것 정수리에서 이마로 향하는 땀방울을 짚어보는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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