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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유오 시인 / 투명한 몸
아이는 해파리를 보고 유령이냐고 물었습니다
유령의 이름을 부르면 유령이 달라붙는다고 말해주었는데요
아이는 그 말을 믿지 않고
전생에 사람이었던 유령은 해파리를 잡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인간을 통과해 유령이 된 유령은
이제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으니까요
해파리에게는 유령이 보이지 않고 유령은 투명한 자신의 몸을 알지 못해 서로가 서로에게서 멀어집니다
여전히 해파리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헤엄을 치며 물속을 돌아다닙니다
물 밖에서는 유지할 수 없는 동그란 몸으로 물로 이루어진 투명한 몸으로
혼령으로 세상을 떠도는 유령처럼
없는 것처럼 보여도 눈앞에 있는 것
비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가득 채워져 있는 것 그건 꼭 마음 같지 않습니까
전부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둘 떠오르는 기억처럼
가라앉아 있던 해파리들이 떠오릅니다
아주 천천히 눈앞에 나타나다가 이내 사라지는
-시집 『순수한 기쁨』, 아침달, 2024년
차유오 시인 / 순수한 거품
손을 씻자 비누를 따라 작아지는 사람들
물은 거품을 데리고 어디론가 내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떠날 때
그들로부터 비롯된 더러움이 크기를 키워갈 때
자신에게는 어떤 모양이 있는지 비누는 보고 싶었다
매일 바뀌는 모양을 기억할 수 없었으므로
흘러가는 대로 두게 되는 생각들 커지는 거품과 다르게
비누는 작아지는 버릇이 있었다
더는 자라지 않고 끝없이 작아지는 노인의 몸처럼
작아지기만 했다
비누는 그런 자신을 멈추고 싶었다 눈에 보이는 깨끗함을 갖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손을 씻었다
비누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끝에 대해 생각했다
버려지다와 사라지다 사이에서
내가 나를 기억하면 죽어서도 내가 지속될 것이라고
비누는 물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사라지기를 택했다
차유오 시인 / 모두 잠들어 있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졸면서 고개를 흔들고 있다 영혼이 빠져나가는 모습 같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모르는 사람들과 익숙해진다 나와 나눈 것도 없는데
사람들은 계속해서 문밖으로 흘러나간다
다른 곳에서 내리면서 왜 같은 곳에 앉아 있는 걸까
남겨진 사람만이 떠나간 사람을 생각할 수 있고
아무도 보지 않는 창문 위로 낮은 지붕들이 떠다닌다 저 안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얼굴도 없는 사람들은 건너편이 된다
사람들은 나의 국적을 묻다가 여행지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말해준 곳은 내가 가지 않는 곳 영원히 그곳에 갈 수 없을 것이다
기차가 속도를 높일 때마다 몸이 흔들리고 나는 처음 흔들려 본 것처럼 놀라게 된다
철길 위를 걸어다니면 또다른 발이 생겨나고
철길 위로 뛰어든 사람들은 철길이 되었을까 돌이 되었을까 걸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들이 솟아오른다 이곳을 지나가야 한다
-2020 신춘문예 당선작 수록작
차유오 시인 / 연체
누군가를 기다리는 책이 되어 책상 끝에 앉아 있는 아이 혼자라는 게 무서워서 도서관에 온다는 말은 아이보다 더 외로워 보였는데 책을 베고 자면 말랑한 머리는 딱딱해질까 그렇다면 깨워 줘야 할 텐데 다른 생각에 빠져 손을 베일 때 피는 종이 위에 서서히 번져 가고 커지는 건 언제나 슬픔뿐이다 피가 흐르는 순간에도 죽어 가는 것보다 살아 있는 것에 가까웠지 멈추지 않을 것 같은 피가 스스로 멈춰 버릴 때 몸도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 나는 매일 연체되는 것 같다
차유오 시인 / 언덕의 모양
끝을 기다린 적은 처음이었다 끝없는 모래 언덕을 오르며 생각했다
사람은 같은 일을 겪어도 다른 장면으로 각자의 기억을 갖게 된다는데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 오늘을 기억하게 될까 언덕의 모양이 바람을 따라 바뀌는 동안 서로 같아질 수 없다면 철저히 달라지고 싶다고 너는 말해 주었지 같다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자 가까워지는 발자국들, 스쳐가는 얼굴들 모든 기대가 허무하듯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으면 모든 게 금방 사라질 것 같았지
언덕 위에 가만히 누워 어떤 사람은 내려가고, 어떤 사람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이렇게나 다른 사람들이 저렇게나 비슷해 보여서
올라가고 싶은 마음과 달리 언덕은 언제나 내려가기 좋은 모양이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싫어하는 것들도 이상하게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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