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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옥 시인 / 플라토닉 러브
사랑을 가장 높은 곳에 둔다 말한 적 있네, 한동안 꿈꾸었지만 사람들이 비시대적이라고, 비현실적인 몽상일 뿐이라고, 설득했네, 슬프지만 시대를 인정 했네
높은 사랑 존재하고 있었네, 한 영혼 본 순간, 팔만 육천 사백 시간 철저한 침묵, 지독을 숨긴 채, 처럼 품고 사는 사람 보았네
존재하는 것으로 행복한 사랑이란 自足의 차원, 나는 뭐라 반박할 수 없었네, 신념이 담긴 눈을 보며 감동이 가슴을 통과했으므로, 진정한 사랑이란 신적인 것에 가까우므로
디오티마는, 사랑이란 자신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을 갖기 원하는 것이지요, 육체로나 심령으로 나, 마름다운 것 속에서 잉태 하는 것이에요, 우리의 본성이 그 속에서 예술을 낳고 싶은 것이랍니다, 영원히 사는 일이지요
사람을 가장 높은 곳에 둔 자는, 심령의 아름다움 볼 수 있다지요, 美의 큰 바다로 나가 풍부한 知를 배우고, 진리 터득해야 한다지요, 그때 본성이 볼 수 있는, 美 그 자체 영원한 것, 변함없이 그대로인 것을 위하여
좁은 곳에서 살았네, 저 우주를 알지 못했으므로, 나는 다시 오르네, 보다 높은 前望을 위해, 이 천 년 동안 기다리는 고독한 산에, 한 발 한 발 등정 중이라네, 美 그 자체 영원한 것을 향해
*디오티마: 향연에 나오는 여자예언자
신명옥 시인 / 머플러라고 부르는 새
오랫동안 나를 아프게 쪼아대던 새에게 머플러란 이름을 붙였다 그것을 잘 접어서 상자 속에 담고 뚜껑을 꼭 덮었다 그것은 한동안 머플러로 있었다 머플러라고 부르는 동안 나는 새를 잊고 지냈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뚜껑을 들썩거리며 푸드덕거렸다
빠져나가려는 깃을 쑤셔 넣을수록 내 삶은 점점 숨이 막혔고 나는 숨 쉬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끼어 있는 새를 꺼내기로 했다 뚜껑을 열자 회오리바람 타고 솟구친다 허공을 휘저으며 춤을 추는 머플러 점점 작은 새가 되어 능선 너머로 사라진다
머플러를 상자에 집어넣는 것이 나를 가두는 일이란 것을 알았다 새를 날려 보낸 금강하구 고요해진 호흡 속으로 푸른 허공을 날고 있는 내가 보인다
신명옥 시인 / 색채론
나무의 감정이 서로 다른 빛깔이다
단풍나무 아래 쏟아진 베르테르 붉은 슬픔 은행나무 아래 쌓인 고흐의 노란 비탄 대왕참나무가 벗어놓은 황제의 갈색 곤룡포
돌풍에 쓸려 바닥을 구르며 색계色界에서 무색계無色界로 존재에서 무로 이동하는 중
한 계절 저 그늘에서 땀 식혔으므로 휘몰아치는 바람의 운구에 가슴 졸이다
색色을 지우고 허공虛空으로 돌아간 나무
눈꺼풀 내리고 안으로 귀를 접고 까마득한 백지를 건너는 시간
돌고 도는 생몰의 궤도에서 남은 것은 또 내일을 향해 움직이고
발랄한 햇살 쏟아지면 오늘은 오늘의 감정으로 색깔 피어내는 일이 이 수다스런 언덕의 풍경
신명옥 시인 / 흐르는 것들
흰 배를 드러내며 솟구치는 참숭어들 산란할 곳을 찾았다는 몸짓일까
물억새 틈에 보이는 개양귀비 붉은 빛에 놀라며 나도 길속을 헤엄치는 중
새와 구름과 바람과 낮달 무엇을 향해 헤엄치는 중일까 모든 길들을 온몸에 받아 적은 지구본은 답을 아는 듯 빙글빙글 돌고
지느러미 길어진 그림자가 나를 따라오지 막힌 곳에선 몸을 뒤틀고 열린 곳에선 가슴지느러미 세워 물살을 잡으며 물구비 넘을 때마다 유연해지는데 멈출 수 없는 흐름 속으로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
흐르는 대로 흘러가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즐기다 그러나 흐르는 것으로 다일 수 없다는 듯 졸졸거리는 외침소리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시간을 부리며 나를 흘러가게 하는 것이 누구일까
신명옥 시인 / 오프라인
화면에 접착된 눈동자 이어폰에 매달린 귓바퀴 지하철, 공원 벤치, 세상의 모든 의자를 타고 정보의 홍수 속을 헤엄치는 눈망울들 도로에는 유투브에 실려 떠가는 행인 스마트폰과 중얼거리는 행인 좋아요를 클릭하는 내 머리를 치는 도토리가 높은 곳에서 내리는 죽비소리로 들렸지 눈과 귀를 안으로 모으라는 말씀에 폰을 접고 별똥별을 따라가 보았지 공원 숲에 널린 운석들 몇 바퀴 돌아야 눈에 익는 고요를 모으는 도중 나를 잊어버렸지 그동안 세계가 평화로웠어 더 이상 방울이 보이지 않을 때 내가 보이기 시작했지 우주를 떠도는 사이버 공간에서 나라는 깃발을 흔들고 있는 입자 하나
신명옥 시인 / 하나의 이름을 가진 수많은 너
너는 겨울의 다락을 열고 가볍고 눈부신 의상으로 갈아입는다 싸늘한 공기 속으로 물의 꿈, 물의 색채, 물의 깃털이 되어 환한 바람을 몰고 오는 너
너는 변신을 좋아한다 어느 날은 엷은 안개가 되어 나를 기다린다 구름의 얼굴로 바라보다 구슬비로 내려오고 소나기로 쏟아진다 너는 솟구치는 물너울, 리듬을 싣고 달리는 악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용, 하늘에 떠 있는 꿈, 눈 뜨고 잠자는 거울
너는 물과 무 사이에 놓인 ㄹ의 날개, ㄹ의 숨결, ㄹ의 사랑 나를 빠지게도 하고 띄우기도 하고 달리게 하는 詩 손에 닿으면 무저항으로 녹아 스며드는 아이스크림
네가 머문 곳에 태초의 풍경이 펼쳐진다 가지마다 눈비늘 돋고 가등 불빛에 헤엄치는 별무리가 몰려들면 나는 태고의 신비 속으로 걸어간다
늘 처음의 모습으로 내게 오는 너 지지치도 늙지도 않는 불멸의 초인 매 순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꿈꾸게 하는 흰 새 감동은 육각에 담긴 스노보드를 딛고 무한공간을 가로지른다
- 계간 《시사사》 2022년 가을호에서 -
신명옥 시인 / 환타지아
미루나무 꼭지에서 쏟아지는 이 빛의 시간을 어떻게 할 것인가
꿈꾸듯 신나게 살아봐야지 넓은 세상을 맘껏 다녀봐야지
운명은 내 바람과 무관하게 모눈종이 위에 나의 좌표를 그려놓았다
빈칸을 채우기 위해 우왕좌왕하던 시절 가파른 비탈 오르내리는 동안 겨드랑이 속에 접힌 날개가 팔딱거렸다
한 생이 한바탕 꿈꾸는 일이라면 이것은 누구의 꿈속일까
아이들이 커서 제 길을 찾아간 후 삶은 여백을 슬그머니 내어준다
꿈다운 꿈을 알기 위해 긴 세월과 가혹한 체험이 필요했을까
돌이끼처럼 덮고 있는 습을 긁어내고 찾아온 마음의 무중력 공간
나뭇잎 틈으로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가장 나이고 싶은 모습을 찾아 꿈의 숲으로 걸어가는 날
신명옥 시인 / 폴짝 뛰어 꼭지점에 닿은 날
대나무 숲이 웅성거리는 가을 한 복판 탁자에는 유리다호 가득 천일홍차 목각 칸마다 솜씨 좋게 빚은 다과가 있었어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지 푸른 하늘과 단풍든 산이 보이는 자리 황홀해진 손이 의자에 앉아 붉은 천일홍차 한 모금 마시고 노란 어리연꽃 한 송이 초록 달 한 덩이 하얀 구름복숭아 한개 앞 접시에 담았지 아름다운 작품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어 그런데 빈 의자는 누구의 자리일까 웅웅거리는 소리와 어른거리는 그림자 속에서 숲에서 날아온 작은 새가 앉더군 긴 회색꼬리가 엷은 청색상의와 잘 어울렸어 이곳이 누구의 꿈속이냐 물으니 멋진 새소리로 대답하더군 여기는 벗어난 자의 삶속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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