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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성구 시인 / 무위사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0. 20.
이성구 시인 / 무위사

이성구 시인 / 무위사

 

수차례 호들갑에도

무위사는 침묵이다

앉아서 천리보듯 한 점 걸림이 없다

눈 한번

감는 사이에

더께 넓히는 고목들

꽃창살에 앉은 먼지

모은 시간 흘린다

전설의 새 천왕봉에 앉았다가 날아가고

숨 한번

고르는 사이

꽃 피고 물 흐른다

내것이 아니어서

가져갈 게 없는 거지

새날고 열매 열리는 거침없는 무위사

가만히

들어 올린다

풍경소리에 걸린 나를

 

 


 

 

이성구 시인 / 곡비哭婢

 

모질다

가는 이 밀어주는

저 곡소리

여태껏

숨어 우는 나도 조금

모질지만

슬픔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

저 여자

 

 


 

 

이성구 시인 / 전기공 메모

 

 

사람보다 많은 소들

여물을 기다린다

녹슨 대문 자물쇠는 입 다문지 이미 오래

할머니

손녀 내리고

점심을 차린다

뽕나무와 전신주가

함께 서있는 우산각

환갑 넘긴 막내와 마을이 늙어간다

내어 온

묵은 김치가

오랜 동네처럼 시다

 

 


 

 

이성구 시인 / 전신주에 올라

 

 

내 몫만을 지닌 채

꼭대기에 오른다

좀처럼 무서움은 다져지지 않는다

여기는

경치에 취해

웃는 곳이 아니다

계곡 한 번 가자는데

한 번도 못 갔었다

계절이 바뀌기 전 미련없이 다녀오자

미루고

미룬 것들이

여기까지 떠오른다

무척이나 무거운

하루를 달고 올라

어금니 스윽풀고 궁중의 섬이 된다

삶에서

손해는 없다

서운하고 아쉬울 뿐

 

-계간 『시조시학』 2013년 겨울호 신인상 등단작

 

 


 

이성구(李成九) 시인

전남 강진 출생. 2013년《시조시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2016년 시조집 『뜨거운 첫눈」 출간. 현재해동미래종교창시연구소장, 강진온누리문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