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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화 시인 / 누드 花
잃어버린 흑연을 떠올린다
뭉개진 신체가 곡선을 가진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가끔
퇴화된 기관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알몸으로 생식하던 시절 꽃을 피우는 기관이 있었다
우리는 불타는 꽃잎을 목격했다
마음은 내 몸에 산 적 없다 예쁘다 말하면 뼈가 싱싱해졌다
쇄골이 배시시 웃으면 전생이 환해진다
슬프다 말하면서 옷을 벗는다 마음이 무거워지면 몸을 벗는다
우리라는 화분이 무성해지면 다시 우리, 꽃의 노래를 흥얼거리면 된다
부끄럽다 말하지 말고 다시 우리, 수풀이 발견될 때 까지 맨몸을 만지자
살다 보면 옷이 몸을 더럽힌다
벌거벗은 이야기는 죄가 없다 우리의 꽃은 죄가 아니다
마음이 살다 간 자리에 꽃이 무더기다
쓸모없는 자리에 마음이 흐를 몰골이 생겼다
신재화 시인 / 남아공 아침 밥상을 무대에 1막 올리기
케이프타운 로빈슨 호텔 2층 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을 들고 있으면 미아가 된다. 이곳은 새벽을 배우는 공간. 아프리카를 닮은 사람처럼 때론 배우처럼 떠나는 곳과 떠나야 하는 곳의 사이 어디쯤. 잠시 그곳을 아침이라 부르기로 했다. 대본에도 없는 선듯한 추위와 엄습해 오는 즘생의 숨소리. 오싹한 기분은 옷깃을 여미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기지개를 켠다. 이곳의 커피는 새벽의 유적에 다녀온 사람의 체취를 닮았다. 이른 새벽부터 찾아온 기괴한 울음소리는 고향에 두고 온 어린 소녀의 웃음소리와 친근한 교미를 시작했다. 미친 게 아니냐고 그 시절의 아비나 어미는 나무랄지도 모르겠지만. 나만 조연이니까 그 기억은 그랬으니까. 하늘을 엮는 저 작은 새는 주연처럼 대본을 떨친다. 붉은 계단 아래 웅크린 회색 고양이 한 마리. 유령처럼 *테이블 마운틴 산 아래 떠돌다가 잡은 자리일 터. 그 옆을 내어준 나의 역사가 아프리카처럼 펼쳐지는 순간. 새들은 쪼로록 짭짭 거리며 울어대는데 그날의 소녀를 찾는 구애가 절규라는 단어로 바뀌는 생각이 무심코 들었다. 탁트인 바다 **씨프런트 해변에서는 어젯밤 부딪치던 맥주 잔이 잠시 소녀가 살던 해변을 그리워 한다. 씨프런트 해변이 새로 단장한 바른 자세로 넓게 펼치며 눈에 담는다. 가끔은 동조할 수 없는 풍경도 있다. 아프리카의 정면이 여행자의 고요를 위해 한 장 한 장 써 놓은 묘사의 틈 사이로 스며든다. 나는 그날의 소녀처럼 더 고요하게 그 날의 배우들의 배역을 적고있다. 빨개진 아침 하늘을 한입 구겨 넣는다. 이제 다시 시작해볼까. 초원의 기분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새벽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남아공 아프리카 시내 중심에 우뚝 솟은 산 이름 **남아공 아프리카를 둘러 싸고있는 애메랄드 빛 해변의 이름
-웹진 『시인광장』 2025년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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