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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다희 시인 / 과거라는 지옥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0. 26.
김다희 시인 / 과거라는 지옥

김다희 시인 / 과거라는 지옥

 

어릴적 아픈 과거의 지옥 속에서 평생을

살 줄만 알았다..

너무 아파 심장안 깊숙한 곳에 돌덩이처럼

힘들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과거에 살면서

혼자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울었다.

생각했다.

정답이란 없겠지만 생각했다..

과거라는 감옥에서 이제 그만 나올수 있는

방법을 나자신과 계속해서 생각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시간이 해결해줄꺼야..

시간이 지나면서 다 아무 일도 아닌

추억으로 남아..

아니였다..

아픔을 잊는 건 시간의 흐름이 아니였다.

모두..

전부..

나 자신의 생각.

나 자신의 행동.

나 자신의 삶이였다..

평생을 살면서 과거라는 지옥보다 행복을

찾아 떠나고..

사람들과 어울려 웃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과거의 지옥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였다..

평생의 자신과의 싸움

 

 


 

 

김다희 시인 / 동굴

 

 

신라 오릉 지나는데

능 안에서 바겐세일을 한다

-무조건 천원

황금 왕관도 천 원

만파식적도 천 원

기분이다. 이사금도 천 원

 

신라 천년이

천 원에 팔리는데

나의 내력도

어느 은밀한 곳에서

바겐세일 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마다

컴컴한 동굴 속이다

회귀하는 연어처럼

어둠을 거슬러가면

내 인생도 무조건 천 원에

다시 살 수 있을까

아, 하고 소리치면

돌아오지 않는 소리처럼

나는 지금

동굴의 그늘을

느릿느릿 지나가고 있다

 

 


 

 

김다희 시인 / 가운뎃손가락

 

 

무를 써는데 가운뎃손가락이

칼 믿을 기웃거린다

반의 반치쯤 물러서도 좋으련만

자꾸 겁 없이 대든다

그 모습이 다섯 남매의 가운데,

나를 보는 것 같다

제일 먼저 대드는 것도 나였고

제일 먼저 눈물 흘리는 것도 나였다

한두 해 터울로 다섯을 둔 어머니

그때마다 이마에 가늘게 썬 무채가

시나브로 시나브로 늘어갔다

살면서 어머니 이마에

눈물 밴 밭고랑을 만들기도 했지만

다섯의 중심을 지탱하는 것도 나였다

어머니의 주름살 속에 숨은

상처 난 내 가운뎃손가락을 본다

내 가운뎃손가락에 남은

상처의 그늘을 본다

 

 


 

 

김다희 시인 / 우물

 

 

한 번도 속을 보인 적 없는 뒷마당 우물에는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오아시스가 있어요

 

알록달록한 나를 이해하는 건 이곳뿐이죠

숲에서 벌레를 안고 온 날은 한 아름 꽃을 안고 오아시스를 찾아가요

그는 슬픈 내 눈을 핥고 나는 그의 입속에서 잠을 청하죠

 

숲에서 본 나무들은 이런 현실을 이해하려 않죠

벌레를 키운 나뭇잎도 이 대목에선 혀를 내두르고요

 

이해를 구한다는 것

그건 우물의 내력을 죄다 품어야 알 수 있는 것

 

넘치거나 마르고 싶지 않은 우물의 근성

 

그가 물 낯에 굴절을 일으켰다는 건

가장 큰 폭발음으로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는 것

그건 수천수만의 경험으로 대번 알 수 있죠

 

세상은 모두 편한 방향으로 몸을 웅크려요

종작없고 허겁떨이인 나도

어둑발 오아시스를 발견 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죠

 

 


 

 

김다희 시인 / 오후 두 시

 

 

시 삽니다

고장난 시 삽니다

쩔그렁 쩔그렁

시 장수 지나간다

끌고 가는 리어카에

짝 잃은 행과 지워진 시어들

와글와글 와글와글

짝짓기 하느라

북새통이다

쓰다만 시 삽니다

시 안 되는 시 삽니다

창문 밑에 서서

자꾸 보채는

오후 두 시의

가위소리

 

 


 

 

김다희 시인 / 틈

 

 

아버지 팔뚝에 힘 불끈거릴 때

그때 놓칠까 세상 밖 나온 나처럼

첫째도 꼴찌도 아닌 딱 중간의 나처럼

나팔꽃과 메꽃 사이에 낀

붉은 계절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내 생각의 밭에 누군가 부려 놓은 한 톨의 씨앗,

 

호기심이 넝쿨처럼 뻗어 갈 때

아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지만

하늘과 땅 사이 점점 좁히고 있다

 

힐끗 돌아본 거기

하늘에도 허방이 있어

발을 잘못 디딘 새 한 마리 추락한다

 

- 시집 ‘봄의 시퀀스’(시로여는세상, 2014)에서

 

 


 

 

김다희 시인 / 눈, 첫눈

 

 

마침내 어둠의 팽팽해진 몸에

새벽이 빗살 무늬 아프게 긋는다

나는 순교자처럼 당당하게 서서

하늘의 하얀 예언을 기다린다

수억 광년쯤 떨어진 거리에서

별빛이 쏟아져 내리다가

눈, 첫눈이 되는 축복의 시간

빈 바다가 제일 먼저 속살 내밀어

순은의 인장을 받는다

밤새 고백한 고해성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방풍림의 키 큰 우듬지에

하얀 면류관이 내려 앉는다

너는 어디에 있느냐

나는 또 어디에 있느냐

무릎 밖에 꿇을 수 없는

내 가난한 기도에

허공에서부터 뚜벅뚜벅

내려온 흰 발자국이

웅크린 소금 갯벌 위를 걸어

나에게로 오고 있다

그때부터 울음이 터져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김다희 시인

1962년 부산에서 출생. 부산여대 유아교육학과 졸업. 한국문학방송 2012 신춘문예 당선, 2013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하늘 더해가기』 『골목別曲』 『봄의 시퀀스』. 현재 월간 『좋은만남』, 계간 『한국동서문학』 편집국장. 문화관광부 <감천문화마을>, <민락수변공원> 마을미술프로젝트 집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