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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용진 시인(안동) / 화이트홀 하우스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0. 31.
박용진 시인(안동) / 화이트홀 하우스

박용진 시인(안동) / 화이트홀 하우스

 

 

 계단에서 밟을 뻔했다

 

 질린 얼굴이 원래 흰 건지 분간이 어려워 잠시 어지러운 사람들인가 싶었지

 

 한 마리의 초파리만도 못한 생이 늘어졌을 요동치는 집엔 가재도구 빈 술병 어지러울 거고 음모라고 부를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굴러다닐 거고

 

 대상자를 설득하다가 어깨가 빠진 아동복지센터 직원이 떠올랐다

 

 문을 두드렸다 지금 읽는 책은 무엇인가요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규칙은 잘 준수했는지

 책가방의 무게 따윈 아랑곳없이 머리에 뾰족한 더듬이를 다듬어 놓고

 

 시푸르죽죽하게 잠자는 아이

 유통과정을 따져도 쓴맛인지 관심 없을 한 가지 표정만

 

-시집 『파란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박용진 시인(안동) / 문간에서

 

 

별과 별 사이 미아가 될 것 같아

달로 가려고 요금이 싼 종이배를 탔습니다

좌현으로 기운 배에 붉은 달이 떠오르고 스모그로 깃발은 얼룩지고

이주자가 늘어 흙탕물의 스프롤로 잠들 곳 사라져

심장은 달의 뒷면에서 뛰었지만 올무에 걸린 발은 늘 아팠어요

체액엔 성엣장이 흐르고 의심은 이심, 머리만 주억거려

경계를 오가는 정령*의 안내로 고요의 바다를 찾았습니다

 

승객들의 역진화는 진행형이지만

 

*이령 시인

 

 


 

 

박용진 시인(안동) / 베텔기우스가 폭발하더라도

 

 

힘을 주며 걷는 게 우선이었지

 

오리온성좌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별의 잔해를 찾으면서 여길 빨리 지나치고 싶어

 

터질 별에 대해 떠든 건 맞지만 하루 종일이 멈춘 골목에서 빛을 갉아 먹고 주저앉히는 어둠은 어느 만큼일까

 

질퍽한 습기가 밑창에 스며 종일 부은 발은 식지 않고

 

눈물에도 속물이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열두 살 이하 삼분의 이는 후천 면역 결핍이랬지 그중 60퍼센트의 면역을 기대하지만

 

카마티푸라*의 아이들은 여전히 아이를 낳고 깔깔거리겠지

 

어떤 값을 대입하며 다른 결과의 드레이크 방정식이 된 나는 골목의 무엇인가

>

끓는점이 낮은 표정이 떨어진다

부서진 별로 밝아질 하늘 한번 흘깃거린다

 

*카마티푸라: 인도 사창가.

 

 


 

 

박용진 시인(안동) / 소나가찌

 

 

조각구름이 말을 건다

무슨 내용인지 몰라 구름을 헤집으니

떨어지는 아이의 침상

 

시린 밤은 침상으로 넘어갈 것 같아

아이의 손을 잡으니

진저리치며 불렀을 구름 깃털이 흩어진다

 

조막손 치맛자락 칭얼대던 잠투정을 다독이려 해도

일방통행 역주행을 시켜

아픔은 잔여 메아리로 남아돌고

 

이건 먼지, 먼지였어

 

스스로 불을 지펴도

먼 세상엔 눈먼 구름

눈이 많아도

눈은 오지 않아

공공연한 일을 볼 수 없어

사로잡힌지 오랜 포르노만

얼어붙은 저녁해 아래 자리잡지

 

아무도 모르는 사실과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선생님들께 얘기해도 그냥 넘어가려 해

이물질 취급을 받은 나는 깨금발로 뛸까

 

국경에 구름을 두고 가는 구름을 보며

돌부리를 갉는다

 

 


 

 

박용진 시인(안동) / 캄보디아의 갯벌

 

​갯벌을 거니는데 뼈 한 조각이 말을 한다

전장을 건너온 뼈는 살 속에 살던 때가 그립다며,

참호 옆 개망초 한 송이가 손에 닿는다

손에서 시신경, 지금이라도 불리는 곳까지

육식주의자들의 메탄가스와 파도가 내지르는염. 염.

아이들 낙서 낭만 엽서 살육의 풍경을 덮으려고

죄를 고백하는 이를 두고 배후 찾기는 날 샌지 오래

365일 추모하는 우리

다음으로 밀릴 뿐 언제나

포격 재개로 불기둥과 매캐한 화약, 살을 발라내는 소리

허공에서 대지로 꿰뚫려 죽은 자와 숨 가쁜 패전 소식에 분개하며

멀어지는 미완성의 스케치

기억은 언청이 소리로 귓등을 헐치고 유언을 남길 사이없이 뼈만 남아

수위를 넘어 사라짐에 몸부림치며 떠올리는 태곳적부터 살아온 방식

벽 앞 시신을 수습한다

무너지는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모래알에 스민 기억들에 성가를 부를까

물이 밀려온다 다시 돌아오는 아침의 그늘처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덮인 지 오래

통제에서 자유로울 방송을 준비하지만

입은 여전히 무언증 혹은, 속말의 행로는 측면에 머물고

후일, 기울기가 다른 애먼 해석이 될 뼈는

잠 깬 뒤의 꿈처럼 어디에도 없단 소릴 듣겠지

표백에 대한 질문은 미룬다

비린 갯 냄새 아래 부식하는 뼈를 추린다

​​

* 살아남은 자의 슬픔 : 베르톨트 브레히트

 

 


 

 

박용진 시인(안동) / 파란 꽃

 

​너를 불러도 묵묵부담이었지

쳐다보며 부끄러워지고 파잔* 뒤의 코끼리처럼 무기력해지고

입을 여러 번 휑궈도 부서진 영혼에 대해 할 말은 뱉기 어려워

꽃을 핀다면 믿습니다만 피는 파란색인가요

빈 젖 사이 뒤척이는 아이

모두의 장례식장을 시작할 때 입니다

*파잔 phajaan - 코끼리를 길들이는 매질

 

 


 

 

박용진 시인(안동) / 눈 사람, 네

한순간 얼어붙는다

공중에 뜬 질문이었네, 라고 생각했을 때 머리는 더 커졌어

속으로 뭐랄지 대충 감은 잡히지만 아무도 관심 없는 일이란 건 네 머릿속인데

부족한 강설에도 질린 얼굴과 추위로 성장했지만

저기, 누구 없나요

물은 떠밀려 다니기 바쁜거죠

한 귀퉁이가 잘린 빈 교실 낡은 칠판의 반경의 깜밖이는 까만 눈동자들이 긴 팔을 늘어뜨린 교단엔 무표정한 어슬렁의 네가

밥을 먹는 게 전부인 시절

아이들의 행동은 처음부터 어두웠다고 하자

길게 쓴 시 읽으며 매돌된 쓸쓸함의 뒷장을 정리한다 희미한 반음의 박동으로 내일이면 커질 온도차를 떠올리며 잠들고

누가 햇살을 바랐나, 간간이 내릴 비를 걱정했지

진한 물비린내에도 녹아들길 바라겠지만

질문은 여전하고

 

 


 

박용진 시인(안동)

경북 안동 출생. 2018년 『불교문예』로 등단. <시와반시> 소시집 당선, 한국현대문화포럼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선진문학 심사위원. 시집 『파란 꽃이 피었습니다』. 문경문학상 수상. 충성대문학상 수상. 현대향가시회, 시현실샘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