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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미 시인 / 마음을 바꾸면
병든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방문을 열고 시어머니의 안색을 살핍니다. 오늘도 차도가 없겠구나 생각하니 살아가는 나날이 힘겹게만 느껴집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마음을 바꿔먹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이 두터운 내 업장(業障) 탓.! 그 업장을 소멸할 기회가 주어졌다 생각하니 시어머니를 모시게 된 것이 여간 고맙지가 않았습니다. 마음을 바꾸니 몸도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풍경소리>에서
강현미 시인 / 노름판
삼팔광땡을 노리고 섰다판에 나섰다 청춘을 판돈으로 걸고 오가는 손길 속에 치열한 눈치작전 표정을 들켜선 안 된다 노다지 캐듯 단번에 한몫 보려는 심사 이 판에 전부를 건다
짜고 치는 속임수 내가 울면 네가 웃는 세상 마지막 화투 한 장에 희비가 엇갈렸다 걷는 놈 위에 뛰는 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었다 타짜가 되고 싶었으나 들러리 신세 젊음을 탕진하고 기웃기웃 노름판을 떠날 수 없는 사람 개평 인생으로 전락했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었다
강현미 시인 / 두루마리 인생
고양이 발톱에 휴지가 다 풀렸다 몇 번을 되감아 봐도 반듯한 제 모습을 찾지 못하고 먼지만 날렸다 문득 되돌릴 수는 없고 풀리기만 하는 휴지가 내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다
마디를 되짚어간다면 반듯하게 되돌아갈 수 있을까 엉킨 뭉치를 차분히 풀어낼 수 있을까 가끔 구멍이 나 있어도 무사히 건너뛸 수 있을까 잘못 뜯은 실수를 또 되풀이하지 않을까
지금은 알 수 없는 일 과거는 모퉁이를 돌아갔고 미래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먼 훗날 내가 다 풀려 마지막, 딱딱한 심지가 드러나도 괜찮은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대충 감아 두툼해진 휴지를 지켜보는 고양이의 눈이 묘하다
강현미 시인 / 발정난 세상
춘정이 동한다는 말은 거짓말 진화된 인간들은 사철 발정을 한다 발기가 안 된다며 비아그라를 먹고 돼지도 아닌데 최음제를 먹고 흔적이 남지 않는 물뽕을 마시게 한다
화장실에서 옆 사람과 크기를 가늠하는 남자들 자랑처럼 연애 무용담을 늘어놓고 상대방은 부러움에 입맛을 다신다 어떤 교수는 격려한다고 어깨를 만지고 친근감의 표현으로 엉덩이를 만졌다고 변명을 한다 발끈하면 별 것도 아닌데 일을 크게 만든다고 핀잔이다 세상은 21세기인데 의식은 원시인 종족 번식의 본능에 충실한 남자들 보이지도 않는 활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강현미 시인 / 너의 섬이 되고 싶다
바다위에 떠있는 외로운 돗단배 하나 나는 그 곁에 작은 섬이고 싶다
작은 파도에도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너를 보며 내볼에 흐르는 눈물 흠처 저 파도 속에 묻는다
빈 배 저어오는 네 모습이 힘겨움에 나는 네곂에 작은 섬이고 싶다
갈매기 벗 되고싶어 네 머리위로 날으니 가다가 힘이들면 갈매기 벗삼아
이뿐 숲 우거지고 그림같은 작은 집이있는 너의 작은 섬에 머물러 편안히 쉬이려므나
강현미 시인 / 월하미인
우리 집에 미인이 살고 있다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그녀는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월하미인 몇 년에 딱 하룻밤 조용히 다녀간다 그녀가 슬쩍 얼굴을 내밀어도 어쩌면 우리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가끔 이파리를 닦아주며 상상해 본다 어딘가에 숨겨둔 공작을 닮은 그녀의 화려한 꼬리를
어느 날 달빛에 이끌려 뜰에 내려서면 그녀가 와있을까 흰 드레스를 입은 신부처럼
그 밤, 우리는 말없이 오래 마주 보고
꿈인 듯 하룻밤이 지나고 맞이한 아침. 향기만을 남긴 채 미인은 사라질 것이다
다시 온다는 기약도 없이
*월하미인 : 공작선인장의 개량종으로 하룻밤 동안 흰 꽃을 피움.
월간 <see>. 2017.8월호
강현미 시인 / 엄마는 우주인
엄마가 우주인이 되었다 투명한 줄 하낭에 의지해 사는 말을 잊은 채 고갯짓과 눈빛으로 나와 교신한다 빤히 쳐다보는 눈길에 서둘러 식사를 준비한다 가느다란 관을달아 밥을 먹이고 약을 먹인다 그 옛날 나를 안고서 젖병을 물렸을 엄마 나는 우주선침대에 기대게 한 채 먹인다
나도 한떄 우주인이었다 뱃속의 태아일 때 컴컴한 자궁 안에서 엄마와 탯줄로 이어진 채 양수 속을 유영했다 "아가야 자니" 엄마의 말 한마디에 발길질을 했으리라
TV 화면에서 사람들이 헤어지는 장면이 나오자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나는 어떤 이별이 덜 아플까 생각한다 끝없는 우주공간으로 떠나야 할까 아니면 블랙홀로 순간 사라져야 할까
그러고보니 사람들은 무주 우주인인 것 같다 우주인으로 탱어나 우주인으로 生(생)을 마감하는 다만 그 사실을 잊고 있을 뿐
벽에 걸린 엄마 사진은 젊디젊은데 사진 속 엄마보다 더 나이든 나는 이제 우주 관제소가 되어 힘들게 엄마를 제어한다
누워있는 엄마의 야윈 등을 어루만진다 어서 일어나 지구로 돌아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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