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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희 시인 / 내 안의 푸른 솔
빨갛게 익은 능금 속에는 꺼지지 않은 희망이 숨어 있지요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 보물처럼 온 우주를 꼭 끌어안고 있는 원대한 씨앗
내 마음 속에도 단단한 씨앗 있지요 비바람 불거나 눈이 내려도 지친 나를 일으켜주는
내 안의 푸른 솔 당신입니다
최대희 시인 / 나팔꽃
비에 젖은 봉오리로 끙끙거리던 어제를 잊고
어스름 동틀 무렵 참 부지런하기도 해라
아침이 왔다고 제일 먼저 함박웃음 짓네
그래 오늘은 어제와 다른 새 아침이다
최대희 시인 / 늑대의 울음
동틀 무렵 늑대의 울음소리가 나를 부동 자세로 얼어붙게 했다 순간, 이승을 떠난 아버지의 품이 그리워 소름이 돋았다 情이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숨 못 쉬게 하는 고통인지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위독하단 전화를 받고 훌쩍이는 사내, 그는 어머니의 영원한 막내아들 중년이다, 그가 갑자기 일곱 살의 어린아이로 마당을 뛰어다니다 배가 고프다며 엄마의 젖가슴을 더듬는다 악을 쓰며 싸우던 엄마는 어화둥둥 내 새끼 많이 먹어라 봄날의 백목련처럼 뽀얀 물고구마를 쟁반 가득 깎아 놓고
울음을 멈추고 주섬주섬 옷을 걸친 사내가 걸어나간다 현관문이 열리며 찬 공기가 빚쟁이들처럼 안으로 쳐들어왔지만 늑대의 울음처럼 서늘하진 않았다.
최대희 시인 / 봄볕
삽살가히 털이 오월의 잔디밭보다 부드럽다
하룻강아지가 어미젖 찾듯 아직 눈뜨지 않은 버들눈이 봄볕에 부리를 들이밀고 맛나게 꿈을 채우는 한낮
밭두렁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어서오라고 내게 손짓하는 희망처럼 가물가물
씨 콩 고르던 엄마의 무릎 베고 툇마루에서 꿈을 키웠던 봄날 봄볕이 눈꺼풀을 어루만지면 강아지를 꼭 끌어안던 작은 손
그 옛날의 봄볕.
최대희 시인 / 세상에서 가장 큰 풀
대나무는 풀이다 꿈은 크게 결심은 단단하게 하되 욕심은 비우라는 아버지 말씀 싸르락싸르락 댓잎으로 이야기하는 푸른 사랑에 기대어
비바람에 흔들려도 꺾이지 않고 몸으로 보여주던 꼿꼿한 정신 세상에서 가장 큰 풀은 아버지다
최대희 시인 / 스며들다
마음이 통한다는건 화선지에 먹물들듯 스며드는 것이다
죽이 맞는 친구 죽이 맞는 취미 죽이 맞는 당신
새순이 연두에서 초록으로 스며들듯
화사한 봄날 그대 가슴으로 스며들다
최대희 시인 / 넌 별이야
넌 별이야 두툼한 어둠일수록 더욱 빛나는 별이야 너의 능력은 멀리서도 알 수 있지
백 년이 지나고 천 년이 지나도 우린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없지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 서성이며 주변을 맴도는 사람 도토리로 땅에 떨어진 추억을 다시 줍는 사람도 그건 스스로가 선택한 최선의 선택인 것을
어둠과 바람을 불러 모아 가장 부드러운 눈길로 마음속 그림자에 주문을 걸어
폭설이 길을 지워도 매화는 피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장미꽃은 피지 넌 별이야 두툼한 어둠일수록 더욱 빛나는 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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