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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애영 시인 / 수국水菊을 읽는 시간
화면 속 먼춘 장면이 오랫동안 날 옭아맨다 햇살 한 줌 세 들지 않은 지하방 푸석한 벽지 자디잔꽃의 무늬가 은화처럼 새겨있다
꽃 아닌 형상들이 제 체면만 바라볼 때 섬이 되어 침수된 신림동 장애인 가족 폭우가 휘몰아친 자리, 내 의자도 잠길 것 같다
노아의 방주方舟 한 칸 간절했을 꽃잎의 시간 슬픔을 하늘에 띄워 기댈 생이 혹여 있다면 별들의 난간이라도 무릎 꿇어 세우고 싶다
-《나래시조》 2023. 겨울호
구애영 시인 / 시차
날개가 시작이었을까 저물녘, 창문에 달라붙은 벌레가 날개를 벗어나려고 파닥거린다 얇아질 대로 얇아진 무게 나방이 저물고 있다 저것은 가시엉겅퀴, 붉은 섬초, 물매화 옆을 지나온 젊은 무사 파르르, 떨고 있다 떨림을 소진하고 있다 그런데 왜 내 몸이 떨리는 걸까 날개의 흔적을 가진 것도 아닐 텐데 어깻죽지가 왜 가려운 걸까 중심, 그것들을 가까스로 붙잡은 채 대치하듯 한동안 우리는 마주 바라본다 보호색을 한 꺼풀 벗기면 드러날 바람의 속살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내 몸속 암전 그것은 민무늬로 스몄을 거다 빙벽 같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나는 그만 빙의를 허락하고 만다 바깥이 안이 되고 안이 바깥이 되는 찰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름 들 지워야 했을까 허공에 이별을 만들려는 생각 그것은 우연을 기연으로 만드는 일 때론 몸짓도 유언임을 알기에 낯선 시차를 품고 나는 다시 날개의 감각을 풀어낸다 놓아준다 -웹진 『시인광장』 2024년 4월호 발표
구애영 시인 / 씨 간장
동틀 녘 어머니가 햇살을 동이고 있다 방퉁이 속살마저 하늘의 깊이를 재고 아들 둘 다 떠나보내고 그렇지 걷어냈다
누비구름 불룩한 일가(一家), 시나브로 졸아들던 몸 서운암 샛바람은 그 속앓이 알았을까 오롯이 천년을 지워야 사리 한 알 남는 법
뚜껑위로 감꽃이 수북하다 눈 시리다 악아, 간을 맞출 땐 생계란을 띄워봐라 잉? 어느새 한낮을 씻은 낮달 동동 뜬다 젖지 않는다
구애영 시인 / 샤갈의 창문에 갇힌 여자
화약 탑이 사라지고 손잡이만 남은 문 때론 키스와 비수 여기저기 쏟아진다 계명이 새긴 자리 뭉클 선악과도 꺾인다
그러다가 나비가 이미지로 날아간다 다 주고 남겨진 세계 색유리로 반짝인다 차디찬 금속성 닿으면 소스라칠 그 살냄새
누가 봐도 내 손가락 갇혔다고 말하겠다 이젤 속,푸른빛의 마을 거긴 닿을 수 없다 등 뒤에 날개를 그려 넣고 또 다른 문틀 찾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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