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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숙 시인 / 어머니의 달
소등(燈)한 듯 깜깜한 하늘 보일 듯 말 듯 실선 하나 보이더니 초승달이 떠오른다 빛 하나 통과 하지 못하는 심해(深海) 어쩌자고 별까지 뜨는 걸 막았을까 소쩍새 울음 한 번에 한 번씩 달이 커 간다
논둑 쑥 모닥불 피워 멍석 깔아 놓고 누운 이곳 부채질, 쑥 타들어 가는 소리 아득하니 별 올려다보는데 은하수가 달을 가린다 자꾸 불러 오는 배 잠들지 못하는 맘 알까
아침이면 어색해 숨는 달 내 눈에 또 띄고 만다 장독대 위 모시송편 달빛 세례 받으며 무심히 잠드는 밤 달 보며 소원 빌던 엄마는 또 딸을 낳았다 딸 다섯, 시어머니 시퍼런 훈계가 담을 넘어 돌아다닌다
허공에 두 손 모우다가 올려다 본 은쟁반이었다가 상처투성이 움푹 패인 얼굴이었다가 그리운 이름으로 되 살아 오는 어머니의 달 눈썹달 보름달 사이 오가며 베란다 배회하는 이순의 나이에도 보름달 뜨는 밤이면 어머니처럼 잠 못 든다
김애숙 시인 / 백일홍
두근두근 심장 터져 피흐르고 씨방이 부풀어 오른다 가을 끝자락 붙들고 울고있는 꽃잎 다 소실하여 잡풀인가하였다 여기저기 꽃울음 지천으로 깔려 있어 발 내디딜 수 없고 씨앗 뚫고 나와 심장은 더 파리해져 간다
밤마다 별 내려와 수놓았다 바늘에 찔려 피가 흐르고 그 선홍빛 꽃이 품었다 색 누가 탐했는가 누가 질투했는가
나비 사라진 꽃밭 땅거미 내려와 둥지 튼다 꽃시들어 드러난 민머리 갈바람 희롱하고 민머리 앞뒤로 흔들며 마지막 인사하는 꽃 죽음에는 마침표가 없다 더 큰 우주가 기다리고 있을 뿐.
김애숙 시인 / 하늘과 바람과 달
새벽하늘 한 귀퉁이 별이 진다 하늘이 별들을 불러들이나 보다 열어 놓았던 밤하늘 창이 닫히고 있다
어둔 새벽 바람이 꽃씨 품고 날아 오른다
헤어짐은 머릿속에 잠시 머물다 사라진 문장 같다
푸른빛으로 차오르는 새벽하늘 목련나무 꽃 진 자리마다 어린잎들이 꿈을 꾼다
참새의 재잘거림 아침이 도둑고양이처럼 찾아들고 어깨 들썩이며 춤추는 나무 뒤로 바람의 비늘이 일어선다 나무에게 눈 맞추며 속살거리던 바람 얼굴 붉어져 골목 비질하고
생명 안고 설레는 나무같이 나도 옛날에 청춘이었다
<동시> 김애숙 시인 / 이슬
안개와 조곤조곤 꽃잎과 소곤소곤 별빛달빛 아롱다롱 빛나네
은방울꽃 은구슬 금낭화에 홍구슬 양달개비 옥구슬
또르르 또르르 하프 줄에 엮어서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띠리링 띠링 띠링 연주해보자 새벽 창이 열릴 때까지
김애숙 시인 / 채송화
화단가에 채송화 소곤소곤 피었다
노랑빨강 연분홍 때때옷 입고서
오동포동 잎사귀 살래살래 흔들면
부서지는 햇살에 반짝이며 피는 꽃
아기자기 귀염꽃 어여뻐라 채송화
헤살헤살 웃음꽃 귀여워라 채송화
김애숙 시인 / 학교 가는 길
은이야 학교 가자야
오빠랑 누이랑 손 꼬옥 잡고
개울 지나 다리건너 꽃길 지나서
나비도 잠자리도 함께 가자야
가는 길에 친구하고 발 맞춰 노래하고
재잘재잘 흥얼흥얼 학교 가자야
김애숙 시인 / 파꽃
두통이 관자놀이 근처에 그물막 친다 오십견 통증이 잠 걷어가도 아침은 정숙한 여인처럼 나를 씻기고 만다
겨울과 봄이 건조대 위에서 영역 다툼 하는 동안 내 시간은 양파 그물망처럼 낡아져 파꽃이 피었다
거실 한 귀퉁이 햇빛 속에 드러난 체모 손가락으로 집어내려 안간힘 써도 들리지 않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부끄럽지 않은 날은 더 오래 해바라기를 한다
파릇한 미나리 허리 동이고 기지개 켜는 정자동 재래시장 하늘엔 낮달이 그린 듯 떠 있다
김애숙 시인 / 엄마의 유산
핏빛 석양이 단풍에 녹아 든다
코 끝 시린 아름다움이다 눈먼 어머니와 마이산으로 단풍구경을 간다
당뇨를 앓고 있는 어머니의 자궁은 이미 오래전에 생산을 멈춘 상태이다 꽃보다 아름답게 누워있는 어머니의 자궁 민들레 홀씨처럼 해산을 꿈 꾼다
산 중턱에서 도란도란 건져먹는 콩나물 해장국 속에도 단풍이 아른거린다 꽈리처럼 부풀어 오른 생채기를 드러내고도 부끄럽지 않은 나이 예순 정다운 입담들 속으로 마이산이 끼어 든다
헤진 운동화 사이로 고개 내민 어머니 엄지발가락
가을 옷 입은 마이산이 무척 궁금한가 보다 헉헉 거리며 나무 계단을 오르는데 종종 걸음으로
그림자 하나 따라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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