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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연복 시인 / 들꽃 소망 외 7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2. 1.
정연복 시인 / 들꽃 소망

정연복 시인 / 들꽃 소망

 

들꽃은

참 묘한 데가 있다

볼품없는 꽃 같으면서도

더없이 예쁘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아도

슬퍼하지 않고 제자리

제 모습을 딱 지키고 있다.

티내지 않고 피어나고

더 조용히 지면서

세상에 없는 듯이

있다가 가는 꽃.

저만치 손짓하는

죽음의 종착역에 닿기까지

지상에서 나도

한 송이 들꽃만 같기를!

 

 


 

 

정연복 시인 / 단풍잎 하나

 

 

수많은 단풍잎이

달려 있는

 

한 그루

나무도 아름답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 잎들 중의

 

어느 하나에

다정한 눈길을 주어보라.

 

그대여

문득 놀랍지 않은가

 

한 그루 나무에 못지않은

한 잎 단풍잎의 생의 무게.

 

아기 손보다도

작은 몸속

 

얼키설키 새겨진

숱한 생의 흔적.

 

 


 

 

정연복 시인 / 단풍과 나

 

 

차츰차츰 곱게

단풍 물드는 잎들을

 

멀뚱멀뚱

쳐다보지만 말자.

 

저 많은 잎들은 빠짐없이

생의 절정으로 가는데

 

나는 이게 뭐냐고

기죽고 슬퍼하지 말자.

 

한 하늘 하나의 태양 아래

또 같은 비바람 찬이슬 맞으며

 

지금껏 하루하루 살아온

나무와 나의 삶인 것을.

 

이제 고운 빛 띠어 가는

나무의 한 생이라면

 

내 가슴 내 영혼 또한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어 가리.

 

 


 

 

정연복 시인 / 단풍

 

 

하루의 태양이

연분홍 노을로 지듯

 

나뭇잎의 한 생은

빛 고운 단풍으로 마감된다.

 

한 번 지상에 오면

또 한 번은 돌아가야 하는

 

어김없는 생의 법칙에

고분고분 순종하며

 

나뭇잎은 생을 접으면서

눈물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의(壽衣)

단풍잎을 입고서

 

한줄기 휙 부는 바람에

가벼이 날리는

 

저 눈부신 종말

저 순한 끝맺음이여!

 

 


 

 

정연복 시인 / 들꽃1

 

밝음 가운데

환히 웃을 줄도 알고

어둠 속에

숨죽여 울 줄도 안다.

 

보드라운 햇살의 애무에

마냥 행복할 줄도 알고

찬이슬 묵묵히

온몸으로 받을 줄도 안다.

 

아무것도 모르고

힘도 없는 것 같으면서도

세상살이 희로애락

말없이 견디고 품을 줄도 안다.

 

 


 

 

정연복 시인 / 들꽃과 사람

 

하마터면 보지 못하고

지나갈 뻔한 들꽃아

좁쌀같이 작은 들꽃아

너는 어떻게 생겨나서

지금 여기에서 웃고 있는가.

나같이 작고 보잘것없는

들꽃 하나에 눈물짓는 사람아

마음 여린 사람아

너는 또 어떻게 생겨나서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가.

 


 

 

정연복 시인 / 서두름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을 보라

서두르는 기색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다.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구름을 보라

서두름 없이도

제 갈 길 다 흘러서 간다.

조바심하고 안달하면서

서두르지 말자

꽃같이 구름같이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자.

느긋한 마음 하나만

언제든지 지켜갈 수 있다면

나의 삶 나의 사랑은

두 배쯤은 더 좋아질 수 있으리.

 

 


 

 

정연복 시인 / 자존심을 굳게 세우는 시

 

길가의 작은

들꽃 한 송이를 보라

사람들의 눈에 겨우

띌까 말까 하면서도

기죽음이나

움츠림이 전혀 없다.

넓디넓은 세상에

꽃들 무수히 많이 있어도

나와 똑같은 모양과 빛깔의

꽃은 단 하나도 없다며

당당히 제자리 지키고

서 있는 들꽃 한 송이.

 

 


 

정연복(鄭然福) 시인

1957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신학대학 대학원 졸업. 번역가이며 시인. 자연 친화적이고 낭만적인 색채의 시를 즐겨 쓴다. 한국기독교 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