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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 시인(신안) / 버려야 할 것 중에
나이 들수록 아집은 쌓여 세월의 무게보다 더 아프게 심연을 짓누릅니다
나는 허물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남의 허물만을 들추며 교만에 빠지지 않았는지 온전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도 삶이 허점투성인데 너무 허술하게 엮어왔던 것 같습니다.
하루, 한 달, 일 년 반성의 날들은 많았지만 다시는 그러하지 말아야지 돌이켜 후회하기도 하였지만 아무리 심하게 채찍을 휘둘러도 돌아서면 다시 또 반성해야 하고 후회되는 일 투성입니다
특히나 사람에 대한 실수는 심장이 쪼그라들 정도로 아파 내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부끄러움 때문에 잠 못 이루기도 합니다 비록 차가운 손이지만 먼저 내밀어 따뜻한 마음을 전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쉬이 손 내밀지 못한 경우 허다합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이해하고 용서하며 살아도 세월이라는 것 참 발 빠르게 지나가는데 잘 알면서도 버리지 못한 아집 때문에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간과하게 됩니다
새벽 찬바람에 에이는 심장이 아집은 버리라 말합니다 사람은 곱고 가녀린 꽃으로 여기라 합니다 서로의 시린 등 토닥이라 합니다
-시집 <달팽이 예찬> 에서
김현희 시인(신안) / 노을의 벽
당신을 만나고 나는 저녁 강가의 물억새처럼 흔들렸습니다 서녘하늘에 피어오르는 붉은 노을이 저녁바다에 잠식되듯 나는 당신의 바다에 침잠하고 말았습니다 술렁이던 파도는 당신의 뼈와 살로 점철되고 나른한 오후의 몸부림으로 인해 초저녁 상념이 유성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당신을 향한 숱한 언어들이 조합할 수 없는 유성의 잔해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고 나는 형용의 모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던 이성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심장의 박동마저 제 속도를 간과한 채 사유의 공간을 침탈당하고 말았습니다 당신을 향한 애절함으로 지새워야했던 불면의 애태움 헤아릴 수 없는 하얀 지면의 검은 속살들 노을의 벽에 갇혀 취객처럼 휘청거린 오후 당신을 만나고 나는 겨울바다처럼 뒤척였습니다
김현희 시인(신안) / 가슴을 비운다는 말
어느 한 사람을 가슴에 담는다는 건 가슴을 다 비워낸다는 말이다 그것은 풍요롭기도 하고 허허롭기도 하여 바람이 수시로 가슴을 채우다가 휑하니 지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기쁨과 슬픔과 삶 모두가 나와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김현희 시인(신안) / 산골 연가 순백의 세상에서는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오는 산짐승들의 발자국이 슬프다 목 놓아 울어대는 겨울새들의 떨리는 울대도 산짐승이 걸어간 자리만큼이나 슬프다 인적 없는 거리엔 은둔자처럼 숨어들어 사는 사람들이 저녁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지 굴뚝마다 화백색 연기가 폴폴 피어오른다 생솔가지에 불을 붙이는지 굴뚝 연기가 뻐끔뻐끔 딱 이웃집 복실이 오빠의 담배 피우는 모양새다 눈에 갇힌 동리 산골에서는 뻐끔거려도 멈추지 않는 굴뚝 연기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김현희 시인(신안) / 정다운 미래
어떤 색깔이 덧칠해지면 중화되는 바탕색처럼 그 자리서 마모되는 모래알처럼
고집스럽게 지킬 무엇 없이 시간의 파도에 닳고 닳아 낡은 사진첩 속 시련이 습기 빠진 바람의 수채화 되면 잔잔한 웃음의 별이 되듯이
상흔의 씨앗이 저만치 계절 들꽃으로 피어나면 투명한 거울 같은 연민으로 원색 잃은 삽화처럼 덧없는 노을빛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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