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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시인 / 버들 귀
님이여 건너지 마라
시끄러운 꿈 한 켤레 건지며 밤새 신기료장수처럼 우는 귀
강은 귓속으로 흘러든다
흰 머리카락 오천 丈 엉킨 목젖이 아, 흐, 백 촉 더 붓도록 부르지 못해
산발한 버들가지 들어 물낯을 친다 오라 오라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 2007. 실천문학사
조정 시인 / 달 같은 할머니
할무니 애렜을 때도 달이 저라고 컸어요? 아먼 시방허고 똑 같었재 할무니는 추석에 뭐 했어요? 우리 아바님 지달렸재 할무니도 아부지 있어요? 그라재 아배 없이 난 사람이 있다냐 으디서 지다렸어요? 동네 앞에 사에이치 비석 있지야 전에는 거그 큰 소낭구가 있었는디 거그서 지랄렷재 할무니 혼자요? 아니 우리 성허고 동상허고 항꾼에 지달리재 아바님은 저녁에 해가 지우러야 오싱께 혼자 지달리먼 무서와 그때는 할무니도 똑 너같이 생겠어야 할무니가 나랑 똑같었어요? 그라재 할매도 너같이 열 살일 적 있었고 열한 살일 적도 있었니라 와~ 최고 이상허네 이상헌 거이 아니라 사람은 다 애기로 나서 할아부지 할무니가 되는 거시여 그럼 나아중에 할무니가 돼요? 안 그라믄 좋재 좀도 좋재 그란디 누구나 다 그리 된단다 악아 할무니는 추석날 되먼 머 했어요? 우리 아바님은 먼 데 장사 다니신께 집이를 잘 못 오세 글다가 추석 되먼 우리 댕기도 끊고 저구릿감도 끊어서 가꼬 오셌재 우리 아바님이 사온 국사로 엄니가 밤새와 추석빔 맹글어 주먼 그 옷 입고 달맞이허고 강강술래도 뛰고 그랬재 그때는 할무니도 여기 팔뚝 살이 흘렁흘렁 안 했어요? 다리도요? 아이고 이노무 새깽에 그때는 할매 살도 희고 탄탄했재 너마니로 진짜로 할무니가 열 살일 때가 있었다고? 아먼 진짜재 할무니 그란디 왜 달은 안 늘그고 계속 그때랑 지금이랑 똑 같어요? 금메마다 달은 안 늘근디 어찌 사람은 이라고 못 쓰게 되끄나이 할무니 못 쓰게 안 되얐어요 달같이 이뻐요 참말로요
-시집 <그라시재라>, 이소노미아, 2022
조정 시인 / 울 애기 누가 데리고 있을까
인공 펜 든 사람들 도망칠 때 우리 뒷집 떼보네도 식구대로 산으로 갔어야 음력으로 정월잉께 말도 모다게 추왔것냐 안
그날 밤에 빈집서 애기 우는 소리가 징했니라 그때는 해 지먼 문 밖 걸음을 못 항께 으짤 방법도 없재 징상시럽게 애기가 울어서 식구대로 잠을 못 자는디 새복 되서사 잠잠해지등만
아침 일찌거니 우리 아바님이 시푸라니 얼어서 숨만 붙은 애기를 보듬아다 따순 아랜묵에 뉘페농께 금방 얼룩덜룩하니 살이 부커 올르드니 깩 소리도 못 내고 그냥 죽어불드라야
백일도 안 된 애기 거름배미에 띵게놓고 간 거시여 어매가 들쳐 업은 것을 사나그들이 뺏어 내부렀을 테재
그란디 진달래 피기 전에 언제언제 밤중에 떼보네 각시가 가만히 왔드락해야 고짱네로 와서 혹간 누가 즈그 애기 데꼬 있능가 묻드라여 (*)
조정 시인 / 여우와 당골 - 저 산에 암자가 있다
씨앗 주머니 품고 와서 당골은 벽을 세웠다 연서戀書처럼 뜬 안개의 문, 가을 옻나무 빨강의 문, 오월의 견장 푸른 하늘의 문, 까마귀 솟구치는 문, 금빛 털 두른 여우의 문을 짰다 여우와 당골이 다투며 사로잡히며 둔갑하며 짜는 문이 소용없는 숨 붙이는 없어 누구나 문 바깥으로 머리를 두었다 둔갑을 속히 배워 알이 되고 애벌레가 되고 성충이 되는 먼지를 곤충 이라 불렀다 기름진 땅은 새붉어 기는 것 나는 것 파고들며 알을 낳는 것들로 고물거렸고 제 이름으로 그림자 삼은 문들을 열고 나갔다 깃털 덮은 물고기가 뼛속을 비우고 짝짓기 마친 성기를 잘라내며 솟구쳐 나는 새야! 소리쳤으나 날 때도 똥을 누어 무게를 비우는 새들이 홀연 떨어졌다 더 날고 싶지 않아 더 날고 싶지 않은 새의 홀연을 돌려받은 당골이 울었다 새가 지은 한두개 모음이 품에 남았다
무르고 낮은 논둑에 앉으면 물그림자의 얼굴에 범람하는 것들 논을 다스리는 당골이 물 씨앗을 많이도 낳아두셨으니 하루가 저무는 곳으로 가는 우렁이는 어디에 멈추는 거기까지가 만리다 만리는 멀기도 해라
여우털 한 올 살라 앞길을 묻지 않는다 우렁이의 길은 우렁이의 깨알같은 알이 여물어 풀려 나오는 길이다 거머리 춤꾼의 흡혈관이 내 광대뼈 흐르는 동선 따라 사운거렸다 피 빠는 기술로 거머리는 나를 못 따라온다 끊임없이 먹고 마셔도 배부르지 않아 땅에서 흡판을 떼지 못했다 누구를 구원할 뜻도 없이 예수의 보폭으로 물위를 달리는 소금쟁이가 짝짓는 장구애비의 지푸라기만 한 열기를 밟고 갔다 먹고 먹히고 밟히고 짝짓는 일이 통한은 아니라했는데 기는 듯 나는 듯 헤엄치던 물방개가 제풀에 뒤집어졌다 별들이 물에 내려오면 나는 씨앗 주머니를 챙겨 어느 별에 숨었다
죽은 자들의 문을 도굴하러 간 여우는 오래 돌아오지 않았다 멀기도 했다 죽음은 죽은 자들은 돌아오고 싶지 않은 문의 폐허를 잠갔다 여기 왜 왔을까 별이 없고 오방이 없고 미움이 없고 시간이 없고 애틋하게 매듭진 기운이 흩어지고 회한 한 자락 문틈에 끼어있지 않은 허방에, 꿈에서는 만날 수 있는지 물을 수도 없는 빈 곳에 하잘것없어지는 자유를 알고도 다시 나는 새는 없었다 도래는 새가 땅에 떨어진다는 말, 돌아가 물을 건넌다는 말 홀연 떨어져 죽으려 했으나 내 속은 여우로 꽉 차있었다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했다 그리운 숲이 이만 가줘야겠어 사무치는 음계 밖으로
우렁 껍질이 깨지고 물그림자가 부서졌다 물 안에 그늘졌던 그게 뭐라고 서운했다
조정 시인 / 자식은 맘대로 못해 어야마시 내가 오늘 돈 내고도 못 볼 굿을 봤네 홍재했네이 혼자 꼬순 웃음 웃지 말고 토로 해보소 굿이라먼 쌈굿도 좋다는 우리 도출네 보타지것네 교동리 고주사 안 있소 그집 둘째가 징하게 부잡한 놈이어라 그것이 또 학교서 난리를 쳤능갑씁디다 그 애기가 우리 조카허고 한 학년이여 머시마가 느자구가 없다등만 가방도 없이 학교 오는 일이 비일비재허다여 금메 말이오 그놈이 오늘 퇴학을 당해부렀다요 오메 으째야쓰꼬 매를 들어서라도 갈쳐야재 만리창창한 애기를 퇴학이 먼 말이당가 담배 피다 걸려서 교무실로 끼께 갔는디 선생이 나무란다고 의자를 치께 들고 교무실 유리창을 뚜드러 부수고 아조 학교를 저서부렀능갑써요 오메 어짜꼬 뭔 일이다냐 그노무 자석 폴쎄 날 샜구만 구져도 그라고 구지당가? 고주사가 용코로 걸려 부렀네 엥가니 내젓고 살드만 지 자석한테 용코로 걸려 부럿어 자네는 뭔 일로 학교 갔다가 유리창 뚜드러 뿌순 것을 봤능가? 아니어라 사고 친 놈은 니미 이런 노무 학교 안 댕긴다고 으디로 나가불고 즈가부지가 학교 불려가서 뿌서진 유리창값 기물값 다 물어주고 오다가 아들놈허고 국민학교 교문에서 짜빡 마주쳐분 거시재 오메오메 고주사 성질에 다리 몽댕이 분질렀을 거인디 자네는 노무 새끼 맞는 거시 재미져서 고라고 웃었능가? 오메 누가 맞어라 고주사 두재 그놈 밸놈입디다 즈가부지 얼굴을 딱 보드니 두말도 않고 돌아서 학교 운동장으로 째는디 비호 같드만 으지케 고라고 재바르까 고주사가 촟아가다가다 분은 나고 새끼는 안 잽힝께 악을 쓰는 거여 머시라등가? 저놈 잡어라아 동네사람들아~ 저놈 잡어 죽이먼 논 닷 마지기 이전해줌세~ 워메 차말로 염병허네 먼 일이라냐 지멋대로 시상 젓고 살든 사람이 훌떡훌떡 뛰다 죽것구만 아조 눈뜨고는 못 볼 귀경이었당께 배창시 뒤집어진 중 알았어라 자석 맘대로 못 하재 자석 맘대로 못 해 하이튼 부자간에 그 큰 운동장서 담박꿀을 치는디 저마다 첨에는 이것이 웃을 일잉가 어짱가 노무 자석 일이라도 성가세 죽겄다가 고주사가 악을 씀서 고랑지 불붙은 뿌사리마니로 뛴께 배창시 잡고 웃었당께 학교 앞 문방구 박샌 말이 걸작이여 아재! 논 닷 마지기는 탐나요마는 사람 잡고 패가망신 허깜시 뜻을 못 받들어 아심찬하요~
조정 시인 / 춘분의 갈채 우듬지로 물 올리기 바쁜 근무시간이라 신갈나무 오리나무도 한눈 팔지 않을 때 벌레의 군대, 나뭇잎의 결사대를 조직한다 너도밤나무 충영들아 참나무 충영들아 죽은 소나무의 말굽버섯들아 마법사의 제자들아 껍질을 깨고 나오라 마른 가지마다 새의 혀처럼 켜지는 연둣빛 불꽃들아 오라 숲이 되려고 태어나는 풀 나무 새 꽃의 넘쳐흐르는 힘 북돋우며 정오가 박수를 쳤다 녹색의 장수가 나가신다 으다다다다다 황도(黃道) 0도의 깍듯한 무릎이 지축을 찍는 순간 봄아, 죽기로 이 산을 살려보자! -시집 『마법사의 제자들아 껍질을 깨고 나오라』에서
조정 시인 / 칠량으로 지는 해
목선을 마당 앞까지 밀어놓고 칠량만은 잠이 들었다 빈틈없이 꽃피어 배롱나무가 이생을 환하게 벗어난 후였다 묵은 장처럼 찰랑한 햇살 속에 물레는 돌고 흙덩이를 말아 올리며 사내는 돌아보지 않았다 잔 흙은 떨어져 사내의 발등에 떨어지기도 하고 안 떨어지기도 하는데 나는 거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 버린 사내도 없기는 한가지였다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니 덫에 든 쥐도 움직이지 않았다 늙은 갯벌이 슬그머니 바다를 당겨 덮는 기척에 등 뒤가 서늘하였다 저 큰 물레를 누가 돌리고 있었나 배가 부를 대로 부른 옹기 한 잎 물레에서 툭 떨어져 바다를 넘어갔다
-격월간 [시와창작] 2006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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