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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성필 시인 / 장다리꽃 꽃밭에서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2. 4.
최성필 시인 / 장다리꽃 꽃밭에서?

최성필 시인 / 장다리꽃 꽃밭에서​

 

 

​소쩍새 부엉이 곱게 자고

꾀꼬리 딱따구리 온갖 산새

시끌벅적 놀고 있는 산기슭 아래

엉겅퀴 자주색 꽃 핀

풀잎 고운 푸른 언덕을 가진 산밭

장다리꽃 흐드러진 꽃밭에서

백설 같은 흰나비가

백설 같은 꽃잎들이

바람 속에 춤을 춘다

학처럼 춤을 춘다

반짝이는 날개 사뿐사뿐 춤추던 날

꽃봉오리 고운 볼 수줍던 날

전설 같은 어느 옛날 꿈을 꾸며

훨ㅡ 훨ㅡ

즐겁던 날 슬프던 날

날갯짓 사이사이

바람 되어 날아간다

훨ㅡ 훨

우리는 학이 된다

훨ㅡ 훨ㅡ

 

 


 

 

최성필 시인 / 갈매기

 

 

비 온다

최대한 날개를 퍼덕이지 않고 쫙 펴고

서서히 공중을 난다

그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삶에 지친 눈망울

그리고 찌든 날개

말끔히 씻는다

 

 


 

 

최성필 시인 / 사하라의 독수리

 

 

밤하늘 가득 쏟아지는

은하수도

 

한낮의 이글거리는

태양도

 

그가 있어 찬란하다

 

모래 폭풍을 즐기는

힘찬 그의 비행으로

 

그 사막은

 

격동하며

장엄하며

 

살아 있다

 

 


 

 

최성필 시인 / 고목

 

몸통 속이 썩어

동그랗게 패인 채

껍질만 남은 힘으로

푸른 잎사귀 흔들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래도 속을 보여줄 수 있어

위로 받을 수 있구나

 

 


 

 

최성필 시인 / 검정고무신 진짜 타이어표

 

 

한 십년 신으라고

아버지가 오일장에서 사다 주신

새로 나온

진짜 타이어표 검정 고무신

 

얼마나 크던지

발에 잘 걸리지도 않던

신어도

신어도

잘 닳지도 않던

정말

찔긴

 

고무신이 지겨워

어느 날

몰래 연필 깎는 칼로 찢었다

 

아버지는

송곳으로 뚫어

실로 더 단단히 꿰매 주셨다.

 


 

 

최성필 시인 / 솟대

 

 

떠나보내는

이별이 싫어

 

나무로

새 깎아

장대에 꽂아

길이 잘 보이는 담 모퉁이에 세웠다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고

 

어느 날

나도

누구를 두고 떠나보려고

 

솟대씨

잘 있으시오

 

떠나고 나면 내가 너무 보고 싶을 거라고

눈물지으며 그리워하겠노라고

말해주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9월호 발표

 

 


 

최성필 시인

경남 밀양 출생. 2015년 《포엠포엠》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2015년 시집 「다시 살고 싶은 날」 발간. 2015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2017년 포엠포엠 베스트 셀러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