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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옥 시인 / 다인실 생활
뭐시기 아부지, 뭐시기 아부지, 어둠 사이로 밤을 깨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뭐시기 아부지, 콜록콜록 화장실에 가요. 응 그래 알았소. 으으차차 드르르 드르륵 사르르 잠든 밤을 깨운다. 뭐시기 아부지 나 물 좀요. 응 응, 그래 여기 있소. 뭐시기 아부지 나 화장실요. 뭐시기 아부지 나 물요. 으응, 알았소. 뭐시기 아부지 이름 사이로 조는 어둠이 하얗게 지나간다. 뭐시기 엄마는 세월을 물고 뭐시기 아부지는 쩔쩔맨다.
서정옥 시인 / 골단감‧1
아랫장날 새벽부터 줄지어 늘어진 다홍빛 단감 노을빛에 곱게 물들어 윤기가 난다
한여름 뙤약볕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이 견뎌내더니
갈바람이 연지로 분을 발라 화사한 얼굴 수줍은 열아홉 처녀처럼 온 장안 곱게 물들어 향기로 단침 솔솔 부른다
서정옥 시인 / 골단감‧2
찬바람 부는 겨울이면 아버지께서는 감나무 밑동에 북을 돋우며 향내 나는 밑거름을 둥그렇게 넣어 두셨다
이듬해 추수 때면 멀리 삼촌도 인사를 하고 이웃사촌도 손을 보태어 수확 나누는 기쁨 서글한 배가 되었다
맘대로 검은 선을 그려 입 쩍 벌어진 녀석들 강한 단맛에 놀란 토끼마냥 벌이 침을 두고 달아났다
서정옥 시인 / 내 귀는 소라 껍질
밴댕이 소갈딱지 하지옹심콩감자 부지런한 개미 허리 깨알보다 더 작은 밀알 씨
더욱 작은 소리는 피아노 피아니시모 피아니시시모 피아니시시시시모 피아니시시시시시시모
더욱더 작은 소리는 연약한 여인의 한숨소리 빛보다 빠른 바람소리 작은 소리 귀 기울이면 더욱더 크게 들려오지 않나요?
서정옥 시인 / 메밀꽃이 일렁이는 언덕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메밀꽃이 하얗게 일렁인다. 안개비 걷히면 꽃구름도 정답게 하얀 양탄자를 펴고, 도란도란 하얀 이 드러내고 웃는 꽃들이 손짓한다.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는 이웃처럼 수다를 떨며. 구름언덕 정적을 깨우는 수다스런 친밀함을 준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기다란 그네가 햇살을 불러온다.
한낮 햇살이 안개비를 데려가니 하얀 이 더욱 빛난다. 하얀 메밀꽃밭 위로 꽃구름이 구름마차를 불러오고, 한라산 중턱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메밀꽃밭에 출렁인다.
-웹진 『시인광장』 2024년 5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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