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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여국현 시인 / 죽은 매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7.
여국현 시인 / 죽은 매미

여국현 시인 / 죽은 매미

 

 

가을 아침 천변

화려했던 봄 벚꽃 다 떨구고 선

생채기 가득하고 유주* 굵은 벚나무에

여름 매미가 앉아있다

다가가 보니

나무를 꼭 붙들고 죽은 매미

누렇게 바랜 각질의 형상에서 삐져나온 가는 발들이

나무를 놓지 못하고

이승을 놓지 못하고

 

어찌 왔는데

어찌 갔을까

 

차마 떠나지 못하는 지난여름 네 절정의 노래가

마른 영혼의 각질 속에 찌르찌르 울리고 있구나

 

* 유주: 나무가 상처 난 곳을 스스로 치유하느라 가슴처럼 볼록 솟아난 흔적.

 

 


 

 

여국현 시인 / 꽃 피는 순서

 

천변 벚나무

꽃 피는 순서가 있어

 

계단 올라 오른쪽 나무들이

먼저 나란히 환하게 꽃을 피우고

왼편 나무들 그 뒤를 이어 움이 트지

 

나무들은 뿌리로 대화하다지

계단 오른편 제일 큰 나무 가장 깊게 뻗은 뿌리가

땅 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봄과 가장 먼저 만나는 거야

그리고는 옆 나무 뿌리를 툭툭 건드리는 거지

 

이봐 때가 됐어

 

그 소리에 나무들은 하나씩 제 뿌리 흔들어

제 옆 나무 툭툭 쳐 깨우고 차례차례 기지개를 켜지

 

천변 벚꽃들이 홀로 피지 않는 까닭이지

온 세상 봄이 홀로 오지 않는 까닭이지

 

 


 

여국현 시인

1965년 강원도 영월 출생. 방송대 영문학과 졸업. 중앙대서 영문학 박사 학위 받음. 2018년 『푸른사상』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새벽에 깨어』 『들리나요』. 소설 번역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 『크리스마스 캐럴』 등, 『하이퍼텍스트 2.0』 외 다수의 이론서를 공역. 현재 상지대 겸임교수 거쳐 중앙대, 방송대에서 강의. 한국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