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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설 시인 / 재에서 재로
꿈에 당신이 찾아온 어제는 둘이 서먹하니 마루에 앉아 있습니다
빈 쟁반의 보름달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당신이 내 옆에 가까이 있어 본 지도 하도 오래되었는데, 내가 부른 것도 아닌데
나는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늘엔 미워 불러볼 이름 하나 없이 맑고 잡초 자란 마당가에 우리 둘이 소복하니 무덤처럼 앉아 말없이 백 년 동안 한 얘길 하고 또 하며
당신이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지러지는 달의 얼굴이 소금처럼 소슬하고 짠 빛으로 와서 우리의 식은 재를 만져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가벼이 고운 가루인 줄 몰랐을 때도 있었습니다
조용히 산이 마루로 다가와 당신을 보자기에 싸듯 덮어 달쪽으로 데려가도록
나는 꿈에도 오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용서가 그런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이윤설 시인 / 풀밭 위의 식사
런닝셔츠 목살이 싯붉은 사장이 삼겹살을 올렸다 불판은 비좁고 우리는 잔디에 엉덩이를 찔려 움찔움찔 젓가락을 들었다 놓는 동안 노을에 잔뜩 들러붙은 겹겹의 구름이 유원지 놀이터 너머로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었다. 자 많이들 들자구, 고기는 충분하니까, 아버지처럼 자상한 목소리의 한쪽으로 너무 기울은 시소 그림자 양갈래 머리를 쫑쫑 땋은 계집애 하나가 반달타이어에 시소를 쿵쿵 찧다 말다 우리 쪽을 빤히 보다 말다 피습피습 습기 먹은 탄이 바람 빠지는 소리 불이 약한가 불구멍을 좀 열어놓지 종이컵에 따라놓은 첫잔의 건배는 거품이 껴져가고 불완전 연소된 연기 속에서 매캐하게 상을 찌푸리며 고깃점을 뒤집다, 이렇게 모이니 한가족 같지 않아? 자꾸자꾸 불 밑을 살피는 이마에 땀이 흐르는 사장의 벌건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며 둘러앉은 우리는한가족같이 말이 없었다 퇴근이 늦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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