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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서영 시인 / 반려식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14.
장서영 시인 / 반려식물

장서영 시인 / 반려식물

 

 

 보험과 설계를 분리한다 보험은 반려식물에게 맡기고

 설계는 내가 펼친다.

 키 큰 아이오니움이 변죽을 울리고 라울 다육이의 자태가 청정을 내민다

 베란다의 이력

 나와의 밀담과 달달한 향기를 내뿜는 계산법

 쉽게 설득당할 것만 같다

 

 다육이들이 빼곡히 앉아 회의한다 아니 햇빛을 놓고 열띤 경쟁을 한다

 색깔은 다채롭게, 잎에 대한 보장은 포괄적으로

 

 직사광선의 유혹과 매혹을 뿌리치지 못하면 반려를 향한 밀착을 멈춘다

 관계를 맺으려면 조절이 필요하다

 오전이나 늦은 오후에 창문을 열어 바람의 살결에 슬쩍 눈길을 내밀게 해야 한다

 치명적인 손실은 설계자의 몫이다

 뿌리가 썩으면 반려의 뿌리도 썩는다

 

 사후 관리를 잘하면 상생이 넘친다

 식물도 나도 당신도 다년생이 된다

 

 간절함을 밀고 당기는 식물과 나의 다정한 계약

 햇볕을 낱낱이 덮어주며 특별한 꽃을 피우라고

 아이오니움에게 지지대를 건네고 눈높이를 맞춘다

 

 


 

 

장서영 시인 / 함박눈의 시그널

 

 

어떤 과잉이 춤을 춘다

덮어버릴 듯 쏟아지는 폭설처럼

저 호들갑스런 자세들

 

쏟아진다와 덮어버린다는 비슷한 목적을 갖고 있다

나뭇가지에 엄살이 하얗게 얼어붙어

어찌 보면 농밀하고

어찌 보면 폐쇄적인 유대감

 

외투를 입고

기울어진 날씨가 의상이 되어

밖으로 나오라고 외친다

 

밀폐와 은폐를 반복하는 일상 속으로

궂은 눈이 너무 많이 내렸지만

나는 가만히 파묻히기로 한다

한꺼번에 쏟아진 눈을 맞으면 무덤 같다

밖으로 나와도 여전히 위리안치가 된다

 

눈이 녹기 시작하면 온갖 질문이 흘러내릴 거다

녹아내리는 것들은 그 어떤 상징도 아니니

하얗게 엉겨 붙던 외로움쯤으로 해석하면 그만이다

나는 또다시1인칭 시점으로 젖어 들었다

눈길 위에 눈길 조금씩 내려놓으며

아무도 몰래 외출을 잠근다

 

―시집 『시럽과 각설탕 사이』 시인동네, 2024.

 

 


 

장서영 시인

전북 남원 출생. 경희사이버대학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2020년 《열린시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