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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한성근 시인 / 한걸음 뒤에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15.
한성근 시인 / 한걸음 뒤에서

한성근 시인 / 한걸음 뒤에서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의

한순간

한 줌 흙이 되는

발가벗은

비밀에 숨어들어

포기를 거부하고

차갑게 일어서는

한결같은 생각

삶에 대한 빛으로

겹겹이 염원하던

아픔의 기억

잠재우는 걸음으로

흐르는 세월

앞서거니 뒤서거니

몸을 낮추며

돌아서면

흔들리는 유정한 마음

 

-시집 『부모님 전상서』에서

 

 


 

 

한성근 시인 / 한 번쯤 마주치고 싶은 기억 속에서

 

 

 하늘 끝을 팽팽히 휘어 당겨 세상 밖으로 풀어헤친 모든 여정에 귀를 띄워 연결시킨다 해도

 실금같이 배어든 아픔까지 끌어내리진 못할 것 같아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을 옭아맨 채

 거슬러 올라가 한 번쯤 마주치고 싶은 기억 속에서

 띄엄띄엄 밀려온 야윈 어둠 앞에 닿을 즈음 아무렇게나 떠나가버린 것들 볶아치듯 버르집는다

 맨손 짚고 일어섰던 방목의 한때로 돌아간 듯하여

 지르밟은 길이 보이지 않아 어쩌다가 깨달은

 미동조차 않던 발걸음 단명하게 추슬러 그때 쉽사리 곁을 내주지 않았더라면

 여러 번 기다리지 않아도 돌아서고 말았을까

 아귀찬 모습 더할 나위 없이 떠올리다가 험준한 단애 위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애씌운 눈망울로

 회한을 에두른 쓰디쓴 마음 모른 척할 순 없어

 미혹에 빠져 어림잡은 미망을 걷어내며

 마지못해 도착한 슬픔의 무게 감당할 수 있었을는지 심통한 세월을 둘러맨 또 다른 나를 본다

 

-웹진 『시인광장』 2025년 8월호 발표

 

 


 

한성근 시인

전남 보성에서 출생. 2018년 《인간과 문학》으로 등단. 시집 『발자국』 『부모님 전 상서』 『바람의 길』 『채워지지 않는 시간』 『또 하나의 그리움』 등. 더좋은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