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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옥 시인 / 안타틸레에서 ㅡ 그의 초상 그는 바다를 등지고 앉아 있었다
초승달이 남겨 둔 빛의 조각을 손톱 끝에 매달고 있었다
모든 불빛이 물 위에서 일렁이자 작은 그림자로 부서지던 등
어디쯤에서는 별이었을지도 모를 그가 불 꺼진 등대가 되어 있었다
나는 말을 걸 수 없었다
순결한 기억을 지나는 침묵이 그의 고독을 안아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를 남겨 두고 돌아서서 걷는다
도시를 가르던 트램이 멈추고 차창 사이 투명하게 반짝이는 얼굴들
와이파이가 끊긴 신호음 사이 정지된 화면 속 목소리를 그려 본다
파장이 짧은 별은 멀고 너무 흐려서 보이지 않는데 진공으로 뻗어가는 서사, 어디에도 닿지 않은 등대의 불빛을 돌아보았다
누군가의 고독이 베어 문 상흔이 발 끝에 닿아
흩어진 빛의 소멸만이 남은 안타틸레의 밤
나는 고독의 위성이 되어 너에게서 멀어져 간다 -웹진 『시인광장』 2025년 9월호 발표
이형옥 시인 / 바람이 부는 건 그대 덕분입니다
갯냄새 가득 머금은 찬바람 흙먼지 가라앉을 새 없는 골목길을 서성인다
검푸른 파도 위에 쏟아낸 설움과 어깨 맞댄 채 떨었던 두려움의 시간을 버텨낸 물기 하나 남아있지 않은 바스락거리는 가슴을 품어줄
갓 지어낸 보리밥과 멀건 된장국에 김치가 전부인 초라한 밥상이라도 달빛이 내어준 길 위를 달려온 이들을 맞아주는 마음일 테니
남쪽 마을 작은 바다를 품은 듯 꾹꾹 눌러 담은 뜨듯한 밥 한 그릇에 울컥 눈물 나거든 낯선 골목길도 제 집인양 뛰노는 어린 아들의 웃음소리 담긴 비릿한 바람 탓이라 하자
(2023년 흥남철수거제평화문학상 공모전 우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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