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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형옥 시인 / 안타틸레에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15.
이형옥 시인 / 안타틸레에서

이형옥 시인 / 안타틸레에서

ㅡ 그의 초상

그는 바다를 등지고 앉아 있었다

 

초승달이 남겨 둔 빛의 조각을 손톱 끝에

매달고 있었다

 

모든 불빛이 물 위에서 일렁이자

작은 그림자로 부서지던 등

 

어디쯤에서는 별이었을지도 모를 그가

불 꺼진 등대가 되어 있었다

 

나는 말을 걸 수 없었다

 

순결한 기억을 지나는 침묵이

그의 고독을 안아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를 남겨 두고 돌아서서 걷는다

 

도시를 가르던 트램이 멈추고

차창 사이 투명하게 반짝이는 얼굴들

 

와이파이가 끊긴 신호음 사이 정지된

화면 속 목소리를 그려 본다

 

파장이 짧은 별은

멀고

너무 흐려서 보이지 않는데

진공으로 뻗어가는 서사, 어디에도 닿지 않은

등대의 불빛을 돌아보았다

 

누군가의 고독이 베어 문 상흔이 발 끝에 닿아

 

흩어진 빛의 소멸만이 남은

안타틸레의 밤

 

나는 고독의 위성이 되어 너에게서 멀어져 간다

​​

-웹진 『시인광장』 2025년 9월호 발표

 

 


 

 

이형옥 시인 / 바람이 부는 건 그대 덕분입니다

 

 

갯냄새 가득 머금은 찬바람

흙먼지 가라앉을 새 없는

골목길을 서성인다

 

검푸른 파도 위에 쏟아낸 설움과

어깨 맞댄 채 떨었던 두려움의 시간을 버텨낸

물기 하나 남아있지 않은

바스락거리는 가슴을 품어줄

 

갓 지어낸 보리밥과

멀건 된장국에 김치가 전부인 초라한 밥상이라도

달빛이 내어준 길 위를 달려온 이들을 맞아주는 마음일 테니

 

남쪽 마을 작은 바다를 품은 듯

꾹꾹 눌러 담은 뜨듯한 밥 한 그릇에 울컥 눈물 나거든

낯선 골목길도 제 집인양 뛰노는

어린 아들의 웃음소리 담긴

비릿한 바람 탓이라 하자

 

(2023년 흥남철수거제평화문학상 공모전 우수작)

 

 


 

이형옥 시인

1979년 출생, 현재 충남 보령 거주. 2002년 원광대 졸업. 비바플루트앙상블 사무국장. 빛을 찾는 사람들 사진협회 회원. 현 고등수학 강사 & 입시 컨설턴트. 제19회 최치원신인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