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문지아 시인 / 가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16.
문지아 시인 / 가위

문지아 시인 / 가위

 

 

입을 벌리는 건 어긋나기 위함

눈꺼풀을 날처럼 세운다

귀소본능 강한 차량을 뚫고

길이 잘리도록 구애한다

운전대 이탈한 오른손 주먹을 꽉 쥔 채

저릿한 저녁이 어서 퇴장해 주기를

사방에 울려 퍼지는 경적처럼

익사하지 않도록 도로 위 자동차 바퀴는

조금씩 발을 밀어낸다

 

잃었던 사람을 다시 사랑해도 될까

창밖으로 동전을 던져 앞면이면 하고

뒷면이면 하지 않는다

문틈에 낀 채 꼿꼿이 서버린 동전

날 선 촉은 갱지 위를 사각거리며

피 흘리는 꼬리를 목격했다고 적는다

적출한 흔적이 얻는 새로운 의미처럼

실착하듯 짓눌려 찌부러진 개미가

치사량을 잉크처럼 쏟는 겨울

 

-계간 『시인정신』 2025년 봄호 발표

 

 


 

 

문지아 시인 / 수세권이라는 말

 

 

 나는 외딴섬에서 왔어. 감기는 전 지구적이라 기침은 홀쩍거리다 터진 게 아니라고 여권에 적어 대학원에 알렸던 겨울. 포스트잇처럼 붙여 놓았던 얼굴이 클릭 한 번에 전속력으로 떨어져 나갔지. 길 양쪽으로 가로수의 음모 陰毛사이 하천에 잠겨 한국어로 울고 있는 것을 당신은 알았을까. 기숙사 창문이 펑펑 깨질 것 같을 때마다 우리는 은빛의 총과 칼을 녹여냈어. 움라우트 발음에 팔려 뿌리와 힘줄이 크레셴도를 띄도록 마구 붙이기도 했지. 당신은 뒤셀도르프 사람 같이 휙 몸을 돌렸어. 마법을 담가놓은 빗장뼈 속 사각형의 방이 주저앉았고 월드컵에서 일본이 독일을 상대로 역전승을 했다고 떠들썩댔던 그때 말이야. 1층 베란다에 앉아 이변 같은 환절기와 계약했더라면 뷰 대신 기침을 달고 살았겠지. 아무리 수세권이 나의 생가라지만, 아 혼쾌히 빠뜨렸던 말.

 

 


 

문지아 시인

1973년 제주 출생. 연세대학교 대학원 독어독문학 석사. 2020년 《문예감성》 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 2023년 《시를 사랑하는사람들》 신인상으로 등단. <문학공간> 신인문학상. 원로시인 고(故) 문충성 시인의 차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