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숙 시인 / 오동梧桐
오동꽃 피었다
여아 출산은 여자 탓이라 해산 간도 스스로 해야했던 기쁠 것도 장할 것도 없던 봄, 천지분간을 못하고 연보랏빛 나팔을 불어주던 오동만이 여자 편이었던 그 계절이다
여남은 해가 지나면 제구실을 할 거라는 믿음으로 갓난애 팔뚝만 한 여린 가지 하나 꾹 꽂아두고 읍으로 면으로 보따리 이고 다니던 그 계절이다
없는 집 허기만큼이나 쑥쑥 오동은 크고 계집애도 크고 혼인 말도 오갔다 베기를 기다린다는 걸 알기라도 하듯 그 집에서 살아있는 것들 중 가장 호기로운 나무 밑에서 바람은 또 얼마나 쉬어 갔는가
중신어미 다녀가고 온전치 못한 신랑감에 논 몇 마지기가 덤으로 온다던 그 밤 마당 언저리에 그림자 하나 대롱대롱 오동보다 더 뻣뻣하게 매달렸다
부모 앞서 간 야속한 년 오동나무관도 아깝다며 어미는 몇 번이나 불구덩이로 따라 들어가려 했다
다시 봄이다
외딴 농가 눈언저리가 짓무는 오지의 봄은 더 이상 어린애 울음소리 없고 오동나무 아래 죽 늘어앉은 할매들의 서사가 그저 담담하게 오동을 닮았을 뿐이다.
고경숙 시인 / 하마터면
휘파람 두 번 불면
나온다던 순이가 감감 무소식입니다
불안한 내 발장난에
개가 짖습니다
저 놈의 개 미쳤나 혼잣말에
예서제서 또 개가 짖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안 되겠다고
동네 어귀를 도망쳐 나오는데
이 집 저 집 불을 켭니다
또 개들이 짖습니다
왕왕 짖습니다
온 동네가 엉망진창입니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박춘석 시인 / 한 송이 외 1편 (0) | 2026.02.19 |
|---|---|
| 이현서 시인 / 빙하기 외 1편 (0) | 2026.02.19 |
| 한창옥 시인 / 경비실 아저씨 외 1편 (0) | 2026.02.19 |
| 지관순 시인 / 스프레차투라 외 1편 (0) | 2026.02.19 |
| 정다인 시인 / 겨울변주 외 2편 (0) | 2026.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