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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전순영 시인 / 폐수의 강 2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19.
전순영 시인 / 폐수의 강 2

전순영 시인 / 폐수의 강 2

-한판 승부

 

 

물도 넘어가지 않는다

검불같이 시든 이 몸, 누가 수혈이 되어줄까

죽음아 오려거든 오너라

언젠가는 나를 이기고 말 너 아니더냐

너와 내가 한번 겨뤄서

내가 이기면 나는 뿌리 깊은 샘을 팔 것이요 너는

친근한 나의 벗이 되리니

네 이름만 들어도 몸이 오싹 힘이 쭉 빠지던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차라리 너에게 나를 내어줄께

해아래 숨 쉬는 것은 다 네 먹이가 아니더냐

오늘도 나는 너와 한판 승부를

 

 


 

 

전순영 시인 / 폐수의 강 4

-새벽 세 시

 

 

몸에 걸친 내의를 꼭 비틀어 짜면

물이 주르르 쏟아질

허한에 젖은 몸

방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93.1에서 슈베르트가 운다

미샤마이스키 첼로 줄 위에 매달려 떨며 흐느끼는

슈베르트

내 안으로 천천히 노 저어 온다

나는 강물 되어 철썩 철썩 그를 끓어 안고

내가 우는

 

 


 

 

전순영 시인 / 폐수의 강 41

-鳴砂山 낙타

 

 

손님을 등에 지고 모래 산 오른다

여름이면 햇덩이 포개어 지고 오르면

질펀하게 고여 오는 땀 방죽

겨울이면 얼음덩이 끓어 안고 오르면

팅팅 부어오른 동상 발바닥 무게도

함께 오른다

한 발 올라서면 두 발이 빠지는

모래 산...

해가 지면 팔 다리 구부려 몸 낮출 때

하루가 내리고 나면

내 등위에는

내일이란 명사산이 다시 올라앉는다

 

 


 

전순영(全順永) 시인

전남 나주 출생. 1999년 《현대시학》를 통해 등단. 시집 『목이 마른 나의 샘물에게』 『시간을 갉아먹는 누에』 『누가 이 바람을 막을 수 있을까』 『숨』 등. 에세이집 『너에게 물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