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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지영 시인 / 주름의 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20.
박지영 시인 / 주름의 힘

박지영 시인 / 주름의 힘

 

 

광주리에 담긴 사과 새들새들 곯았다

더 작아져 쪼글쪼글해진 사과는

굳은살처럼 각질이 두터워

칼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쪼글쪼글해진다는 것은

팽팽히 잡고 있던 끈 놓치지 않고 더 깊어져

제 속으로 들어가

밑바닥에 닿아 보겠다는 것 아닌가

 

사람도 오래되면 내장에 구김이 지고

눈동자에도 주름이 잡힌다지

그 주름의 힘으로

비록 말라비틀어져도

더 깊이 생의 바닥에 닿을 수 있다지

새금새금 단내를 짙게 풍긴다지

 

 


 

 

박지영 시인 / 간절함은 늙지 않는다

 

 

노숙을 하고 막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머리가 삐죽 솟아 있다

빵에 눈이 꽂혀 있다

간절한 눈빛에 이끌려 동전 몇 개 쥐어 주었다.

노인의 얼굴에 환하게 불이 켜졌다

 

빵이 아니라

따뜻한 커피를 사 들고 간다

손을 흔들며

뭐라 뭐라 하면서

 

-시집 <간절함은 늙지 않는다> 에서

 

 


 

박지영 시인

1956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 이화여대 불어교육과 졸업.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2년 《심상》을 통해 등단. 시집 『서랍 속의 여자』 『귀갑문 유리컵』 『검은 맛』 『사적인 너무나 사적인 순간들』 『간절함은 늙지 않는다』와 『눈빛』(사진 시집)과 평론집 『욕망의 꼬리는 길다』, 산문집 『꿈이 보내온 편지』가 있음. 대구문학상 금복문화상(문학 부문)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