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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나, 아직 안 죽었어!

by 파스칼바이런 2010. 5. 5.

나, 아직 안 죽었어!

 

 

오랜 기간 병상에 누워있던 한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병세는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의식도 가물가물해져갔고, 주변 사람들은 거의 임종이 가까워진 걸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상태가 꽤 지속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가족들이 큰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의식이 없는 걸로 여기고 어르신의 병상 머리맡에서, '향후의 일'에 대해 논의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머니는 누가 모시나, 사시던 집은 어떻게 처분하나, 아버지 장례는 화장으로 하나 매장으로 하나...

그런데 실상 의식이 가물가물하던 것으로 여겼던 아버지는 그 말을 나누던 순간 일시적으로 상황이 호전되어, 그 ‘해서는 안 될 말들’을 똑똑히 들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속으로 ‘녀석들, 내가 참 버릇들도 없군, 내가 교육을 잘못시켰지.’라며 꾹 눌러 참았는데, 계속 듣고 있자니 해도 해도 너무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아버지는 마지막 남은 모든 에너지를 다 모아,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리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크게 외쳤습니다.

 

"나, 아직 안 죽었어!"

 

보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 어떤 형태로든 생명이 붙어있는 한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추구하고 싶어 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다 사랑받고 싶어 하며 존중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호스피스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의식이 끊겨도, 생명이 끊어져도, 귀는 마지막까지 살아있습니다. 임종의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말씀을 들려드리십시오. 사랑한다고 말하십시오. 한평생 수고하셨다고 말하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저희는 가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지는 나무의 원줄기 붙어있음으로 인해 의미를 지닙니다.

잘려나간 그 순간부터 가지는 생명력을 잃을뿐더러 아무런 존재의 의미도 가치도 찾을 수 없습니다. 붙어있는 한 매년 싱싱할 포도송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잘려나가는 그 순간 1분이면 다 타고 사라질 불쏘시개에 불과합니다.

 

우리 인간 존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란 원줄기에 붙어있음으로 인해 우리 삶을 의미를 지닙니다. 제 색깔을 찾습니다. 예수님께 붙어있음으로 인해 우리 삶을 가치 있고, 고귀라고, 존엄하고, 빛납니다.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이란 너무도 든든한 지주에 끝까지 붙어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잠시나마 그분과 떨어져 있었다면 최대한 빨리 그분께로 돌아가 다시 붙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