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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및 지식>/◈ 음 악 관 련

찬가 [hymn, 讚歌]: 그리스도교 음악

by 파스칼바이런 2011. 10. 18.

찬가 [hymn, 讚歌]: 그리스도교 음악

 

 

hymn은 신이나 영웅 등에 대한 '찬미의 노래'라는 뜻의 hymnos에서 유래.

그리스도교 예배에 사용하는 노래.

 

독일에서는 Choral이라 하고 영국에서는 Hymn이라 하고, 프랑스에서는 Cantique라고도 하며, 우리가 성가라 하는 개념의 명칭.

 

 

대개 회중들이 모여 부르는 유절형식을 가진 박절적 노래로 성서 이외의 가사를 갖는다. 고대 수메르나 그리스 등에서 비롯된 다른 모든 문화권에도 이런 유형의 노래들이 있다.

 

그리스도교의 찬가는 히브리 사원에서 시편송을 부르던 관습에서 비롯되었다.

완전하게 보전된 최초의 가사는 그리스의 '포스 힐라리온'(Phos hilarion:19세기 미국의 시인 롱펠로가 〈가자, 즐거운 빛으로〉라는 제목으로 번역)으로, 그 기원은 200년경 또는 그 이전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찬가가 체계적으로 발전한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기원후 313년 이후의 일이었다.

가장 먼저 번성했던 시리아에서는 시편송을 모방해 성가를 부르던 그노시스주의자(이단시 된 그리스도교 초기의 한 분파) 및 마니교도(3~7세기 페르시아에서 교세를 펼침)의 관습이 전해졌고, 그것이 비잔틴 교회에 의해 수용되었다.

 

비잔틴 교회의 예배 의전에서는 라틴 예배에서보다 성가가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따라서 비잔틴 성가는 카논이나 콘타키온(→ 비잔틴 성가 )과 같은 복잡한 유형들로 발전했다. 4세기 메소포타미아의 부사제이자 시인, 성가 작가였던 성 에프라임은 '그리스도교 찬가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서방지역에서는 포이티에르의 성 힐라리우스가 360년경에 찬가 가사집을 만들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우스는 회중들이 부르는 시편송과 찬가를 모아 책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일면 정통 그리스도교와 이념적인 갈등을 보였던 아리아족의 성가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4행 연으로 된 약강 10음보 형식으로 된 이 초기 성가들은(이것들의 선율은 간단하고 민속적인 것으로 짐작됨) 당시 그리스도교권에 있던 라틴어 시에서 유래했다.

 

중세 말기에 이르면 훈련받은 합창단원들이 회중과 함께 성가를 불렀다.

새로 만들어진 선율은 장식이 더 많아졌고 기존의 것들도 종종 장식되었지만, 그 어느 경우라 하더라도 한 음에 붙는 가사의 음절 수는 대개 1개였다.

간혹 성가를 다성음악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이때는 대개 단성성가와 교대되었으며 특히 오르간 음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배 의전에 의한 회중 노래의 관습은 종교개혁 기간에 독일 루터교도들에 이르러서야 다시 나타난다. 독일 루터교 찬송가 선율인 초기 코랄 은 화성이 붙지 않았고 반주도 없었다(→ 색인:코랄).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성가대와 오르간, 회중들이 함께 또는 따로 연주하는, 화성 붙은 형태들도 사용하게 되었다. 어떤 것은 새로 작곡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단성성가나 자국어로 된 봉헌송, 세속노래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세속 서정시 역시 루터와 같은 시대 루터교도들의 찬송가 가사에 영향을 끼쳤다. 중요한 초기 모음집으로는 루터와 요한 발터의 찬송가집(1524), 게오르크 라우의 찬송가집(1544) 등을 들 수 있다.

17, 18세기 루터 교회의 경건파는 서정적·주관적인 성격의 노래를 새롭게 독일 찬송가집에 수용했다. 이중에는 루터교도들의 것도 있지만 모라비아 교회 같은 다른 교파의 노래도 포함되어 있었다(→ 색인:개신교).

 

칼뱅교도들은 스위스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프랑스·영국·스코틀랜드 지방에서 시편송 을 번역해서 즐겨 불렀다.

이들의 시편송은 규칙적인 박자를 갖고 있었고, 무반주 유니즌(제창)으로 불렀다. 영국 및 스코틀랜드의 프로테스탄트는 시편송만 허용했고, 특히 영국에서의 시편송은 프랑스·제네바의 시편송에서 가져온 가락에 가사를 붙여 불렀다.

따라서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시편송은 프랑스 시편송과 마찬가지로 규칙적 박자를 갖추었지만 프랑스어의 운율에 기초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가락이 상당히 복잡하다.

 

한편 영국 시편송은 프랑스 시편송과는 달리, 몇 개의 운율 유형만을 사용했고, 처음엔 개개의 가락에 특정한 시편 가사만을 붙여 부르다가, 나중엔 서로 다른 노래에 같은 가사를 사용하게 되었다.

 

흔히 사용하던 운율은 영국 발라드의 운율 형태와 같은 8, 6, 8, 6(각 행의 음절수)으로, 영국 찬송가의 전형적인 운율로 계속 사용되었다(→ 색인:시편영창). 영국 찬송가의 결정적인 전환은 17세기말 독립 교회파(조합교회주의) 찬송가 작가였던 아이작 와트에 의해 이루어졌다(〈찬송가와 종교 노래 Hymns and Spiritual songs〉 1705~19).

 

18세기 중반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가 주도한 복음주의 운동은 영국과 미국에서 찬송가 노래의 기반을 확고히 했다. 찰스 웨슬리의 수많은 시들은 실험적으로 만든 다양한 운율들을 사용했고, 존 웨슬리는 독일의 훌륭한 찬송가들을 다수 번역했다.

이 두 사람은 또한 여러 독일 선율들을 사용하기도 했고, 이들의 후기 찬송가들에는 헨델 양식으로 된 음악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영국교회가 찬송가의 노래 관습을 정식으로 인정한 것은 1820년에 이르서였고, 이것은 셰필드의 한 교회의 찬송가 노래 관습에서부터 계속된 사람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1833년에는 옥스퍼드 고(高)교회파(High Church:영국국교회 내의 일파로, 교회의 권위와 의식, 성찬 등을 중시) 운동이 일어, 찬송가의 작곡과 중세 찬송가의 번역, 단성성가 선율의 사용을 자극했다.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영국 찬송가집의 역사에서 보전된 최초의 것은 〈신구 찬송가들 Hymns Ancient and Modern〉(1861, 개정 최종판 1950)인데 이것은 양식이 엄격하고 영국 성공회의 〈기도문〉에서 가사를 그대로 가져왔으며, 한 선율에 한 가사씩만을 붙여 만들었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2가지 중요한 모음집이 나타났다.

〈야텐돈 힘널 Yattendon Hymnal〉(1899)은 영국 시인 로버트 브리지가, 〈영국 힘널 The English Hymnal〉(1906)은 퍼시 디어머와 작곡가 랠프 본 윌리엄스가 편집했다.

 

특히 〈영국 힘널〉에는 여러 시편송과 민요 선율들이 포함되어 있다.

주로 루터교의 모범에 따른 대륙의 찬송가에서는 그밖의 전통도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왈덴파 교회가 그 지방의 민요 및 오페라 양식들에 영향을 받아 회중 찬송가들을 사용했고, 16세기 반(反)종교개혁으로 인해 로마 가톨릭에서도 훌륭한 찬송가들의 작곡이 고무되었다.

 

19세기말에는 찬송가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나 영국에서 〈웨스트민스터 힘널 West minster Hymnal〉(1940)을 탄생시켰다.

1960년대말에 미사 집전 중의 회중 노래가 부활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찬송가 작곡을 자극했고, 또한 가톨릭 전통 이외의 유산들로부터 여러 찬송가들을 채택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찬송가는 근대음악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한국 최초의 찬송가는 감리교회 로스 와일러와 존스가 공동 편집한 〈찬미가〉로서 악보 없이 가사만을 적었으며, 1894년 언더우드가 악보가 들어 있는 〈찬양가〉를 편집·간행했다.

1905년 윤치호가 편집한 〈찬미가〉는 한국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최초의 찬송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후 1983년 75그리스도교 교파가 공동작업한 총 558장의 〈통일찬송가〉가 간행되어 한국 찬송가 사용의 일치를 보게 되었다.

 


 

● 코랄 [chorale]

독일 루터 교회에서 사용하는 찬송가에 대한 영어식 용어

 

코랄은 종교개혁 초기부터 프로테스탄트교 예배에서 회중들에 의해 불렸으며, 독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보통 제창으로 불렀다.

초기 다성 코랄도 있었으나 합창단은 선율만을 연주했고 오르간이 코랄의 나머지 전체 성부를 연주했다. 이후의 코랄 편곡들에서는 처음에는 테너 성부에 있던 선율이 차츰 소프라노 성부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인다.

 

루터 교회의 코랄 가사는 라틴어로 된 단성성가를 다른 지방어로 옮긴 경우가 많았다. 흔히 세속 노래에서 선율을 빌려왔으며 구조는 단순했다.

루터 자신이 만든 코랄들은 이후의 보다 세련된 코랄보다 불규칙했다.

최초의 코랄집은 루터가 서문을 쓰고 요한 발터가 음악을 만든 〈교회 성가 소곡집 Geystliches GesangkBuchleyn〉(1524)이다.

이 책이 나온 이후 코랄은 기법적으로 발전을 이루고 많은 다른 곡집들이 출판되었다.

한편 루터가 가사를 썼음이 확실하고 음악도 직접 썼거나 다른 곡을 편곡한 것으로 여겨지는 코랄로는 〈내주는 강한 성이니 Ein' feste Burg〉·〈하늘 높은 곳에서 Vom Himmel hoch〉가 있다.

 

16세기의 대표적인 코랄 작곡가는 미하엘 바이세, 유명한 〈깨어나라 Wachet auf!〉를 쓴 필리프 니콜라이, 멜히오르 불피우스가 있다.

17세기에는 요한 헤르만 샤인과 요한 크뤼거가 활발한 활동을 했다.

1644년에 크뤼거는 코랄 선집 〈Praxis Pietatis Melica〉의 초판을 편찬·출판했다.

요한 에카르트와 미하엘 프레토리우스는 보다 복잡한 코랄곡들을 썼다.

에카르트의 코랄곡은 실제로는 짧은 길이의 모테트였으며, 프레토리우스는 이전의 코랄 원전인 〈Musae Sioniae〉(1610)를 체계적인 다성양식으로 편곡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코랄은 J. S.바흐의 수난곡과 칸타타 작품들에서 풍부하게 화성화되며, 이들 작품에서는 또한 회중이 합창단과 함께 연주하도록 되어 있다.

바흐 코랄들은 엄격하게 볼 때 기존의 유명한 코랄들을 편곡한 것이고, 바흐가 직접 쓴 새로운 코랄은 없다.

근대에 코랄은 보통 전래 종교 가사에 의한 다성 악곡을 뜻한다.

선율은 찬송가와 같이 전통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특별히 가사에 맞게 새로 작곡된 것도 있고, 전통 선율에 전통 가사를 붙일 수도 있었다.

 

● 비잔틴 성가 [Byzantine chant, ― 聖歌]

비잔틴 제국(330~1453)부터 16세기까지 그리스 정교회 교회의 단성성가(單聲聖歌).

 

그러나 근대 그리스에서는 시기에 관계없이 그리스 정교회의 음악 모두를 비잔틴 성가라고 한다. 비잔틴 음악은 동로마 제국의 그리스어 사용 지역에서의 그리스도교 전파와 관련이 있으나 대부분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초기 그리스도교 예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성가 ).

여러 유형의 성가들이 주목을 끌었는데 그 가운데 트로파리온 ·콘타키온 ·카논 이 있다. 비잔틴 성가는 고대 그리스, 비잔티움의 음악과 관련이 없다.

 

비잔틴의 네우마 기보법에 관한 기록은 10세기가 되어서야 처음 나타나며, 그 이전에는 알렉산드리아·이집트 등지에서 온 그리스의 문법학자들이 만든 강세 표시를 기초로 한 '에크포네티크 기보법'을 썼다.

이 기보법은 목소리의 상행 또는 하행 움직임의 대강의 방향만 표시한 것이다. 부호에 따라 일정한 방식으로 성가를 읊조리는 이 기보법은 수세기 동안 구전으로 습득되었다.

 

초기(팔레오-비잔틴, 10~12세기) 비잔틴의 네우마 기보법은 에크포네티크 기보법보다 좀더 구체적이었지만 리듬과 음정을 표기하는 데 정확성이 부족했다.

이것은 중기 비잔틴 기보법(12세기말에 발전)에서야 개선되었고 지금도 그 원리를 그리스 음악에 사용하고 있다.

네우마 부호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 기보법은 서유럽의 네우마와는 달리 음높이를 지정하지 않고 대신 앞선 음과의 음정 관계를 나타낸다.

시작음의 음높이와 길이는 마르티리아이('증거')라고 부르는 부호로 나타냈는데, 이것은 잘 알려진 선율을 축약하여 첫 음정을 나타내는 방식이었다.

 

몇 가지 전형적인 특징들 때문에 16~19세기초 필사본에 나타난 기보법은 보통 네오 비잔틴 기보법이라 불린다.

19세기초에 와서 마디토스의 대주교 크리산토스는 전통적 기보법이 너무 복잡하다고 생각하여 이를 간단하게 만들었고, 이는 인쇄를 통해 전파되어 오늘날까지 그리스 정교회의 모든 예배 음악 악보에서 쓰이고 있다.

여러 선율형이 있는데 작곡가는 대개 전통적인 선율에 가사를 붙이고 이것을 가사에 맞도록 변형시켰다. 어떤 선율형들은 성가의 처음에만 사용되고 어떤 것들은 끝부분에만 사용되며 또 다른 것들은 양쪽에 두루 사용된다.

전환 악구도 있는데 전통적인 악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새로 작곡해서 쓰는 경우도 있다. 선법의 틀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음조를 쓰는 몇몇 선율형은 에코스라고 불린다. 에코스들은 각기 독자적인 선율형을 갖고 있지만, 이따금 1개의 선율형이 2개 이상의 에코스에 걸쳐 있을 때도 있다.

 

가사와 음악이 모두 들어 있는 예배서에는 헤이몰로기온(카논 찬미가에서 뽑은 연(聯)들에 붙인 선율), 스티케라리온(교회력의 각 절기마다 고유하게 사용하는 찬미가 가사 및 선율), 살티콘과 아스마티콘(프콘타카온을 비롯한 일부 성가에 붙인 독창과 합창을 각각 말함) 등이 있다.

아콜루티아이(또는 Anthologion 명시선 名詩選)에는 저녁기도, 아침기도, 진혼기도, 3개의 예배의전(성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 예배, 성 바실리우스 예배, 사전에 축성한 성체로 드리는 봉헌) 때 부르는 일상부 성가와 그밖에 예배의 사이를 연결하며 단음절 또는 의미 없는 음절에 맞추어 부르는 임의로 택할 수 있는 몇몇 성가들이 있다.

 

초기 작곡가들은 시인이기도 했는데 성 로마노스 멜로도스(6세기초 활동)는 가수이자 콘타키온을 만든 사람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네스(645경~749)는 카논을 작곡했으며 특히 옥토에코스 체계를 분류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체계는 시리아에서 1세기 먼저 기록되었다.

여승(女僧)이었던 카시아(9세기 활동)는 여러 찬미가들을 작곡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밖에 이오안네스 쿠쿠젤레스, 이오안네스 글라디스, 크세노스 코로니스(13세기말~14세기 중반) 등이 있다.

 

시편영창 [psalmody, 詩篇詠唱]

예배에서의 시편영창.

 

성서시대 유대 종교의식에서 전문 가수들이 〈시편〉을 영창했으며 회중은 가수가 〈시편〉을 영창하는 도중에 짧은 후렴을 집어넣기도 했다.

독창자와 합창단이 교대로 부르는 것을 응창 이라고 한다.

성가대를 둘로 나누어 시편의 일정한 행 또는 반행을 교대로 부르는 교창 도 있다. 후렴을 부르는 사람들이나 교대 가수 없이 영창하기도(직접영창)하며 초대 교회에서는 동방과 서방을 가릴 것 없이 이러한 시편영창법들을 채택했다.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의 시편영창으로부터 고전 그레고리오 성가, 비잔틴 성가, 암브로시오 성가를 비롯한 다른 그리스도교 성가들이 발전했다.

 

16세기 개혁주의 교회들에서는 회중 영창이 다시 도입되었다.

1700년경까지 루터교를 제외한 모든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비성서적인 가사의 찬송가를 배제했다. 운문체로 번역한 〈시편〉 가사에 작곡한(또는 차용한) 곡조를 붙여 회중찬송가로 만들었다.

운문체 〈시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칼뱅의 지시에 따라 L. 부르주아가 수집한 곡조에 C. 마로와 T. 베자가 번역한 시편 가사를 붙인 제네바 시편집이다.

제네바 시편집은 1566년 네덜란드어로 번역되어 1540년의 네덜란드 시편집을 대체했다. 1562, 1564, 1621, 1671, 1696년에 영국 시편집이 나왔다.

'잉글랜드 분리파'를 위한 시편집(1612)은 1620년 필그림 파더즈에 의해 미국에 전해졌고, 1640년 신대륙에서 인쇄된 최초의 책 〈베이 시편집 Bay Psalm Book〉이 출판되었다.

 

● 동형진행

(일정한 선율, 화성의 음형을 다른 음높이에서 반복하는 것)

 

음악의 재료를 한데 묶어주고 발전시키는 데 사용된다.

최초의 음형이 음정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반복되는 것을 '진정'(real) 동형진행, 반대로 곡의 초성에 맞추어 반음 관계를 조절하는 것을 '조성적'(tonal) 동형진행이라 한다.

 

중세 음악과 문학에서 이미 똑같은 용어로 알렐루야와 복음서 낭송 사이에 회중이 부르던 라틴어 예배가사 및 거기에 붙인 음악을 나타냈는데, 이것을 근대 동형진행과 구별하여 세쿠엔티아(sequentia)라 부른다.

세쿠엔티아는 8세기경 트로푸스 에서 처음 시작하여 유빌루스(jubilus : 알렐루야 끝음절의 화려한 장식음 처리 부분)로 발전했다.

 

세쿠엔티아는 그레고리오 성가에 사용한 곡들에서 그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세쿠엔티아로부터 영향을 받은 세속음악 형식으로 에스탕피(춤곡)와 레 (lai)가 있다(→ 색인 : 레).

본래 유빌루스에 덧붙여진 트로푸스 선율은 보통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두 합창단이 교대로 반복해 불렀다(예를 들어 aa, bb, cc……).

세쿠엔티아와 알렐루야 선율에 붙여진 가사는 본래 산문이었고, 세쿠엔티아를 나타낸 중세 라틴어 프로사(prosa : 산문)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9세기경 세쿠엔티아는 일정한 음악 형식과 이것의 영향을 반영한 시 형식을 갖추게 되었는데, 그것은 대개 시작과 끝 구절이 있고 그의 일정한 운율을 갖는 다양한 길이의 2행연구들이 배열되었고(x aa bb cc……y), 음악은 가사의 각 음절에 1음씩 붙여졌다.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예배 의전에서 4개의 세쿠엔티아만을 제외하고 금지했다.

 

● 영가 [spiritual, 靈歌]

(영어로 된 종교적·민속적 성격의 찬미가)

 

북아메리카 백인과 흑인의 민속음악의 일종이다.

백인영가에는 전도 집회 및 신앙 부흥을 위한 모임에서 부르던 노래 등 여러 찬송가들이 포함된다.

시편의 구절을 한 줄 한 줄 따라 부르던 관습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러한 관습은 적어도 17세기 중반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회중들은 대개 글을 읽을 수 없었으므로 선창자가 시편송의 가사를 먼저 한 줄씩 읊으면 회중은 동일한 가사를 친숙한 선율에 실어 노래 불렀고, 이 둘이 계속 교대되었다. 느린 곡조에 경과음이나 돈꾸밈음, 그밖의 장식음들로 장식되었으며, 가수마다 자신에게 맞는 음높이에서 고유한 즉흥 장식을 해나갔다(이러한 양식은 20세기에 와서도 흑인과 백인 교회 중 일부 지역에서 계속되었음).

 

백인영가의 첫번째 원천이 시편송과 관련되는데 비해, 2번째 원천은 찬송가를 부르던 노래 관습과 연관된다.

찬송가는 감리교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 같은 18세기의 종교적인 반대자들이 도입했는데 이들은 세속 민요 같은 기존의 곡조에 새로 만든 찬송가 가사를 붙였다. 복음주의파들의 이러한 찬송가들 중 대부분이 구전으로 전해졌다.

 

18세기 말엽에서 19세기 중반까지에는 신앙 부흥 운동이 여기저기서 일어났고 그결과 야영 집회나 전도 집회가 유행했으며 여기서 사람들은 열기에 가득 차서 집단 노래를 불렀다.

어떤 식으로 불렀는지는 완전히 알 수 없지만, 화성이 붙지 않았고, 특히 남성 고음 성부가 먼저 노래를 시작하고 여성 성부와 남성 저음 성부(베이스)가 옥타브 위나 아래에서(혹은 편한 음정으로) 중복해서 불렀던 것으로 짐작된다.

위에서 설명한 시편창처럼 부름과 응답의 방식으로 불렀으며 선율은 장식음으로 장식했다. 가사는 시구와 후렴구로 이루어졌으며 후렴구는 노래마다 같았다.

 

뿐만 아니라 민속 전통에서 선율을 가져왔기 때문에 새로운 노래도 어렵지 않게 즉흥연주를 할 수 있었다. 약속된 땅으로 돌아가는 내용이나 사탄의 패배, 죄를 극복하는 내용 등이 주제에 포함되었고, 전형적인 반복구로는 '흐르는 요단 강', '글로리아 할렐루야' 등이 있었다.

기존의 민속 전통에서 가져온 찬송가도 많이 불렸고, 대부분 구전되다가 후일 셰이프 노트 기보법(shape-note notation:미국 개신교의 선교 과정에서 사용하던 비정통적인 기보법)에 의해 민속 찬송가집에 기보되었다.

 

19세기에 신앙부흥운동과 관련된 영가와 그밖의 여러 민속찬송가들은 표준화된 유럽 찬송가 양식들이 들어오자 도시 교회에서 그 인기가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구전의 전통이 지속된 몇몇 지역들과 셰이프노트 찬송가집 을 사용하던 사람들에 의해 계속해서 사용되었다.

19세기에는 영가의 일종인 가스펠이 생겨났다.

정통 유럽 음악의 영향을 받은 가스펠은 선율과 가사를 새롭게 작곡했고, 기악 반주가 따랐으며 민속 찬송가와는 달리 화성이 붙었다.

 

한편 흑인영가는 주로 시골의 백인민속 찬송가가 변형된 형태였다(흑인은 백인과 함께 같은 신앙 부흥 야영집회에 참석했으며 흑인의 연주 양식은 백인 연주 양식에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영향을 받기도 했음).

따라서 흑인영가 중에는 백인민속 음악의 전통 속에서 만들어진 노래들이 많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미국 백인들의 세속 노래나 영국의 민속음악 선율과 많이 닮았다(→ 색인 : 미국 흑인).

그러나 흑인영가는 5음음계와 장조 음계로 된 선율들을 많이 빌려왔던 점이라든지 보컬의 성질이나 보컬 효과, 리듬 반주의 유형 등에서 백인영가와 뚜렷이 구분된다.

 

흑인영가는 또한 찬송가로서뿐만 아니라 노동요로도 불렸고 가사의 내용은 흔히 노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반영했다.

흑인영가는 음악적으로 볼 때 아프리카의 민속 음악적 요소와 백인의 민속 음악적 요소가 한데 섞인 것이며 이 두 요소는 또다시 서로 영향을 끼쳤다.

부름과 응답의 방식이나 음계, 특정 음의 유동적 억양 등이 그 예가 된다. 아프리카 음악의 영향은 아프리카 특유의 노래 양식 및 복잡한 복리듬적 타악기 반주, 다성적인 합창 양식 등에서 볼 수 있고 원을 이루면서 소리치던(영가를 부를 때는 종교 춤이 따랐고 또한 타악기로 리듬을 쳤음) 아프리카 선조들의 관습까지도 나타났다.

 

남북전쟁 뒤에 흑인영가는 북부인들에 의해 '발견'되어 화성을 붙인 상태로 새롭게 발전했으며 직업 합창단이 불렀는가 하면, 한편으로 시골과 특정 교파에서는 옛 전통 양식 그대로 보전하기도 했다.

근대 흑인 가스펠 송은 백인 가스펠 송과 마찬가지로 영가에서 발전한 형태이며 반주가 따른다.

흑인 가스펠 송은 세속 흑인음악과 깊이 관련되었으며(영가가 노동요와 블루스에 밀접하게 관련된 것처럼) 흔히 재즈의 리듬과 재즈 악기, 전통적인 손뼉 반주 및 춤이 포함된다.

가스펠 송은 대개 새롭게 작곡되었지만 대중적인 곡조가 재즈에서 즉흥연주의 기초로 쓰인 것처럼 그 선율은 교회 예배에서 즉흥 연주의 기초로 사용되었다.

 

● 유사선율 [tune family, 類似旋律]

선율적 일치성, 특히 선율적 윤곽, 중요한 음정들, 그리고 지배적인 상승음들에 의해 상호연관되는 선율들의 무리지음. 한 무리 안의 선율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리듬유형, 선법, 가사가 있을 수 있다.

 

 유사선율들은 구전되는 동안 변주와 모방으로 변화된 하나의 선율에서 발전된 것이다. 이것과 밀접하게 연관된 개념 중 특히 유럽의 민속음악에 적용된 개념으로 '떠돌이 선율'(wandering melodies)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는 유사한 선율들을 일컫는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유사선율을 추적하여 그 근원을 밝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어떤 경우에 유사한 선율들은 유사한 음악양식들을 갖는 문화권 안에서 독자적으로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작품 안에서의 유사선율의 예는 버트런드 브론슨의 〈노래로서의 발라드 The Ballad As Song〉(1969)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선율적 일치성, 특히 선율적 윤곽, 중요한 음정들, 그리고 지배적인 상승음들에 의해 상호연관되는 선율들의 무리지음. 한 무리 안의 선율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리듬유형, 선법, 가사가 있을 수 있다.

 

유사선율들은 구전되는 동안 변주와 모방으로 변화된 하나의 선율에서 발전된 것이다. 이것과 밀접하게 연관된 개념 중 특히 유럽의 민속음악에 적용된 개념으로 '떠돌이 선율'(wandering melodies)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는 유사한 선율들을 일컫는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유사선율을 추적하여 그 근원을 밝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어떤 경우에 유사한 선율들은 유사한 음악양식들을 갖는 문화권 안에서 독자적으로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작품 안에서의 유사선율의 예는 버트런드 브론슨의 〈노래로서의 발라드 The Ballad As Song〉(1969)에서 찾아볼 수 있다.

 

● 테데움라우다무스 [Te Deum laudamus]

(Te Deum이라고도 함. 성부 하느님과 성자 그리스도에 대한 라틴 찬송가.)

 

전통적으로 축제 때 불렀다. 전설에 따르면 이 성가는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세례를 받을 때 성 암브로시우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교창하면서 즉흥적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5세기초 레메지아나의 주교 니케타스가 이 노래를 지었다는 설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이 노래의 현재 형태는 성부를 찬양하는 부분과 성자를 찬양하는 부분의 분량이 똑같고, 반절에서는 성령을 찬양하며 마지막에 탄원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4세기에 있었던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아리우스 논쟁의 일부와 역사적으로 맞아떨어진다.

이 노래의 상당 부분은 전통적인 신조로 이루어져 있고, 대부분의 찬송가들과는 달리 산문으로 되어 있다.

 

이 노래의 운율은 그레고리우스 이전 시대와 그레고리우스 시대의 여러 양식들에서 유래한다. 영국의 작곡가들인 헨리 H. 퍼셀, 랠프 본 윌리엄스, 벤저민 브리튼 뿐만 아니라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엑토르 베를리오즈, 졸탄 코다이, 안톤 브루크너, 안토닌 드보르자크 등은 이것을 다성음악으로 편곡했다. 다음은 테 데움 라우다무스의 내용이다.

 

"당신은 하느님, 우리는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당신은 주님, 우리는 당신을 소리높여 찬양하나이다/당신은 영원하신 아버지, 모든 피조물이 당신을 경배하나이다/모든 천사, 하늘의 모든 권세들/케루빔과 세라핌은 당신을 향하여 영원토록 찬양하나이다/거룩, 거룩, 거룩, 권능과 능력의 주 하느님이시여/하늘과 땅에 당신의 영광이 가득하나이다/영광스러운 사도들이 당신을 찬양하나이다/고결한 예언자들이 당신을 찬양하나이다/흰 옷을 입은 순교자들이 당신을 찬양하나이다/온 세계의 거룩한 교회가/무한광대하신 권능의 아버지/모든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당신의 참된 외아들/우리의 중재자시요 인도자이신 성령을 찬미하나이다./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당신은 아버지의 영원한 아들/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려 몸소 인간이 되시고자/동정녀의 품안을 꺼리지 않으셨나이다/죽음의 독침을 이기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 천국을 열어주셨나이다/지금은 하느님의 오른편, 영광 안에 계시어도/심판하러 오시리라 우리는 믿나이다/보배로운 피로써 구속받은 당신의 종들, 우리를 구하시기 비옵나니/우리도 성인들과 함께 영원토록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주여,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당신의 기업을 축복하소서/그 백성 당신이 다스리시고, 영원까지 그들을 이끌어주소서/날마다 우리는 당신을 찬양하나이다/우리는 영원토록 당신의 이름을 기리오리다/주여, 오늘날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지켜주소서/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불쌍히 여기소서/우리는 당신을 의지하오니,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소서/주여, 우리의 희망은 당신 안에 있사오니,/우리의 희망은 헛되지 않을 것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