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속의 하느님] 십자가를 끌어안은 사랑
글: 최호영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에서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세 명의 남자(꼽추 콰시모도, 대주교 프롤로, 근위대장 페뷔스)가 그녀의 아름다움을 경탄하는 노래 ‘Belle(아름다워라)’를 부른다.
아름다워라, 이 말은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그녀가 춤을 출 때, 자신의 몸을 드러내 보일 때, 꼭 날아오르려고 날개를 펴는 한 마리 새 같습니다(콰시모도).
아름다워라, 영원불멸의 주님에게서 내 눈을 돌리려고 악마가 그녀의 모습으로 나타난 걸까.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려는 누가 내 안에 이런 육체의 욕망을 불어넣었나(프롤로).
아름다워라, 그녀의 몸짓이 무지갯빛 치마 속에서 경이와 신비를 보여줄 때 … 아무리 소금기둥이 된다 해도 어느 남자가 그녀에게서 눈을 돌릴 수 있단 말인가(페뷔스).
그러면서 세 남자는 함께 노래한다.
그녀에게 첫 번째 돌을 던질 사람이 누구인가요? 그 사람은 이 땅에 살 자격이 없습니다. 오! 단 한번이라도 내 손가락이 에스메랄다의 머릿결을 스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빅토르 위고(프랑스의 시인, 극작가, 소설가, 1802-1885년)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Notre Dame de Paris)”는 15세기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을 중심으로 한 파리의 시대상을 통하여 인간의 여러 속성을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음악화한 뮤지컬 속에 등장하는 세 남자! 추한 몰골의 꼽추로 태어나 집시들에게 ‘바보들의 교황’이라 불린 콰시모도, 대성당의 대주교로서 충분한 권력을 소유했던 프롤로, 그리고 탁월한 외모에 이미 다른 여인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나아가 근위대장으로서 힘을 지녔던 페뷔스!
세 남자가 한 집시 여인을 향한 흠모의 정으로 “단 한 번만이라도 그녀의 머릿결을 스치길” 바라며 부르는 이 노래를 통하여, 다양한 인간 속성이 각자 자기 방식대로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추구한다는 삶의 원리가 표현된다.
성모 마리아와 콰시모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수많은 군중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깔고, 또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고는 이렇게 외쳤다.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마태 21,9)
그러나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은 예수님에게서 자신들이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자 결국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소리쳤다. 군사들은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숨을 거두셨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모두 흩어져 도망갔다.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고 사랑하시는 제자만 남아있었다.
당신 아들의 주검을 가슴으로 부둥켜안은 어머니 마리아는 한없는 고통으로 흐느끼셨을 것이다. 차라리 아들의 죽음을 대신하고픈 마음이 간절하셨을 것이다. 성모님의 고통을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렇게 표현한다.
아드님 매달리신 십자가 곁에서 성모 비통하게 눈물 흘리시며 서계시도다. 그분의 애절하고, 비참하고, 고통에 찬 마음을 칼이 꿰뚫었도다. 외아드님의 그 복되신 어머니, 그 얼마나 슬퍼 절망하셨는가? 신실하신 어머니, 고개 떨구신 아드님의 고통을 보시며 그 얼마나 근심에 차 괴로워하시는가?(Stabat mater)
에스메랄다의 사랑을 배신하고 돌아선 페뷔스, 원하던 사랑을 얻지 못하여 음모로 대응했던 프롤로의 계략은 결국 에스메랄다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단 한 번만이라도 머릿결을 스치길 원했던 사람 가운데 오직 추하고 보잘것없는 꼽추 콰시모도만이 남아 싸늘해진 그녀를 끌어안고 절규한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은 땅속에서 발견하겠지, 온 우주에 전하려고 서로 꼭 껴안고 있는 우리 둘의 뼛조각들을. 신이 그토록 추하게 만든 콰시모도가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그녀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갈 수 있도록.
내 몸을 먹어라, 내 피를 마셔라, 몽포꽁의 독수리들아! 시간을 넘어 죽음이 우리 두 사람을 맺어줄 수 있도록 나의 영혼이 이 땅의 고통으로부터 멀리 날아갈 수 있게 해줘. 나의 사랑이 섞여지게 해줘. 우주의 빛에….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 노래를 불러줘요, 나의 에스메랄다. 저 멀리 더욱 멀리. 당신을 위해 죽는 것은 죽는 게 아니예요.
춤을 추어요, 나의 에스메랄다. 노래를 불러줘요, 나의 에스메랄다. 당신과 함께 떠나게 해줘요. 당신을 위해 죽는 것은 죽는 게 아니예요.
주님의 수난과 죽음, 십자가의 신비를 묵상하는 사순시기에 교회는 성모님과 함께 이렇게 기도한다.
제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지게 하시고, 제가 수난의 몫과 그 상처를 되새기게 하소서. 저를 상처로서 새겨지게 하시고, 이 십자가와 성자의 피로 취하게 하소서. …… 저를 십자가로 지켜지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감싸지게 하시고, 은총으로 돌보아지게 하소서.
최호영 사도요한 - 신부. 가톨릭대학교 음악과 교수.
[경향잡지, 2011년 3월호]
|
'<가톨릭 관련> > ◆ 교회음악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악 속의 하느님] 아름답도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여 (0) | 2011.10.23 |
---|---|
[음악 속의 하느님] 세상에서 가장 짧은 명곡 (0) | 2011.10.23 |
[음악 속의 하느님] 가브리엘 포레 ‘장 라신느의 찬가’ (0) | 2011.10.23 |
전례의 성사성을 지향하는 그레고리오 성가 (0) | 2011.10.23 |
[음악 속의 하느님] 기~쁨~이 넘쳐 뛸~때 (0) | 2011.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