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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묵상글 모음

많이 주신 사람에게 많이 요구하신다.

by 파스칼바이런 2011. 11. 13.
많이 주신 사람에게 많이 요구하신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 많이 요구하신다.

 

루카복음 12,39-48

 

 

언젠가 임종하는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 호스피스 봉사자에게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임종하는 사람들 가운데 특히 사제나 수도자들이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평생을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봉사하며 산 사람들이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할까요? 자녀나 배우자도 없고 세상에 미련을 둘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일반 사람들보다 죽음을 더 두려워하는지요?

 

일반 사람들은 임종할 때 모습을 보면 대부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걱정하기보다 이승의 인연을 더 많이 걱정합니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자식 걱정, 배우자에 대한 염려, 영원한 이별에 대한 고통과 아쉬움이 한껏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신앙이 약할수록 죽음 이후의 세계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제나 수도자는 세상 것에 미련이 없기에, 오히려 곧 닥칠 죽음 저 너머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더 짙게 밀려오는 것이겠지요. 오늘 복음 말씀처럼 주님 뜻을 누구보다 많이 안다고 가르치며 살았지만 아는 만큼 살지 못하여 막상 주님 앞에 나서려는 순간 더 많이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지의 세계를 향한 죽음 앞에서 두려워할 수밖에 없고, 죽음의 언저리를 맴돌며 혼자서 힘겹게 고통을 이겨 내는 것입니다. 특별히 영적으로 민감하게 살았던 사람일수록 죽음을 앞두고 더 많은 유혹에 시달리고 더 많은 두려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실제로 성인들도 죽음 앞에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 하고 외치실 정도로 빈 하늘을 바라보시며 매우 고독한 상황을 표현하셨지요. 죽음은, 모든 사람이 그동안 입었던 옷을 벗고 벌거숭이로 주님을 만나야 하는 절대 고독의 순간입니다. 그 순간은 그가 입고 있던 옷이 고상할수록 벗어야 할 고통도 큽니다.

 

주님께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약하고 비굴하고 죄스러움을 안고 살기에 주님 가까이에서 그분의 자비에 기대어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제나 수도자, 교회에 열심인 봉사자들을 세상을 초탈한 사람으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약함을 통하여 일하시는 주님을 더 깊이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 / 매일미사 묵상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