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묵상글 모음

사랑과 실천

by 파스칼바이런 2011. 12. 15.

사랑과 실천

 

 

인도의 성자인 선다싱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 분에 대한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눈이 잔뜩 덮인 히말라야 산 건너편에 있는 사원에 가기 위하여 어느 나그네가 추운 겨울날 눈보라를 헤치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눈 속에 쓰러져 동사 직전에 있었습니다. 그때 이 사람은 어물어물하다가는 자기도 얼어 죽겠다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쳐 갔습니다.

 

얼마 후 그 길을 또 한 사람의 나그네가 가다가 거의 얼어 죽게 된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사람을 내가 구해야 되겠구나.'하고 생각하고는 그를 업고서 땀을 뻘뻘 흘리며 산 너머 사원까지 갔습니다. 그 사람은 힘이 들어 땀이 났습니다.

 

그런데 가다 보니 길가에 얼어 죽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기보다 먼저 가면서 지나쳤던 사람이 얼어서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만 살겠다고 혼자 지나쳐 간 사람은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그를 업고 가던 사람은 그를 업었던 탓으로 힘을 쏟아 그 자신의 체온을 높이고, 그로 인해 등에 업힌 사람까지 살려내어 결국 두 사람의 주고받은 체온 덕택에 둘 다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혼자서는 따듯할 수 없다.'는 말이 생각나는 예화입니다.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자기도 따뜻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교구 심포지엄 때 선교에 대해서 사례 발표를 했던 그 자매님을 저희 본당으로 모셔서 대림 피정 강의를 들었습니다. 너무도 감동적인 사례들을 많이도 말씀하셔서 저희 신자들 모두 감동하였고 선교의 의지를 새로 다졌습니다. 사제인 저까지도 부끄럽게 만드는 이야기들도 많았습니다. 이 분은 삶 안에서 만나는 모두가 선교 대상이었고 또 수많은 사람들을 실제로 하느님께 데려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저는 '마치 성모님이 성령님으로 가득 차서 태중의 아드님과 함께 엘리사벳에게 성령의 불을 옮겨붙여주셨던 것처럼, 저 자매님도 성령님으로 활활 타 만나는 사람마다 성령의 불을 붙이시고 다니는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매님은 그 이전에도 열심한 적이 거의 없었고, 근래에는 또 10년 동안 냉담하다가 성당을 제대로 다니게 된 것이 7년밖에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외국에 나가 있으면서 우연찮게 성경을 필사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성령의 불이 붙었던 것입니다.

 

그 분은 성경을 붓으로 필사하셨는데, 다 하시고 나셔서 단 두 단어만 머리에 남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실천'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듣기는 했는데, '실천'까지 사랑과 동등한 한 단어로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실천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갖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사랑 자체가 아는 것으로만, 혹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도 실천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했습니다.

 

어느 임금이 백성들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현자에게 물었습니다.

현자는 한 마디로 말했습니다.

"백성들이 서로 사랑하며 살면 됩니다."

 

"그것은 어린 애들도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어른이 되어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의 작은 아들이나,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이나 아는 것은 많았지만 실천은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들이 그들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짧은 신앙생활을 했지만 교구 전체 사제들과 수녀님들 앞에서 신자 대표로 당당히 선교에 대해 강의를 하게 된 그 자매는 - 마치 일곱 마귀가 들렸던 막달레나가 회개하여 제자들이 도망갈 때도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결국 영적으로는 그들을 앞질러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하게 된 여인이 되었던 것처럼 - 아는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한 설교가가 여러 번 강의를 해야 하는데도 같은 강의만 계속 반복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지루해하며 그 연유를 묻자 그 분은 “첫 번째 한 강의를 실천하지 않기에 다음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지금 내가 알면서도 실천하고 있지 못한 것부터 실천하기 시작합시다.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서도 또 새로운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그 새로운 것을 알아가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죄만 더 쌓는 일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수원교구 오산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