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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묵상글 모음

스승 요한 세례자

by 파스칼바이런 2011. 12. 16.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 / 매일미사 묵상글>

스승 요한 세례자

 

 

우리는 동의보감의 위대함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1995년 11월 14일 장쩌민 국가 주석이 우리나라를 국빈으로 방문해서 국회에서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우리 양국은 2천 년 전부터 서로 왕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유교는 중국의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 17세기에 편집된 동의보감도 우리 양국 교류사에서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동의보감은 중국에서까지 20여 차례 간행되었으며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 꼭 이 책을 챙겨가곤 하였다고 합니다.

 

경의대 한방병원 진료부장 류봉하 교수는 “동의보감이란 책은 우리 한방에서 절대적인 책입니다. 현대 진료에 있어서도 동의보감이 기본적인 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 치료방식도 동의보감을 중심으로 해서 어떤 부분은 보강을 해서 치료하는 실정입니다.”라고 말하며 500년 전에 쓰인 이 의서가 현대의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님을 인정합니다.

 

사람들은 이 책을 저술한 의성이라 불리는 허준이 있기까지 반드시 훌륭한 스승이 함께 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근거는 없기는 하지만, 중인에 불과했던 허준이 유의태라는 당대 최고 명의의 제자가 되어 밀양 얼음골이라고 하는 동굴에서 자신의 몸을 해부하여 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옵니다. (참조: 유인촌의 역사 스페셜)

 

당시 유교사상에서 사람의 몸을 해부한다는 것은 배운 사람으로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여 스승이 자신의 몸을 제자를 위해 내어주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현실적이지 못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렇더라도 그런 이야기가 만들어져 전해지는 것은, 어쩌면, 사람들이 ‘무릇 스승이란 살신성인하여 제자를 키워야 함’을 바라는 심정이 표현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다운 스승은 제자가 자신을 밟고서라도 더 올라가고 더 완전하게 되는 것을 바라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이 바로 그러한 스승입니다.

요한은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서 참으로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있는 메시아시냐고 물어보게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기적들을 보여주시며 의심하지 않고 믿는 자는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사실 겉만 보면 예수님께서 믿음이 약해 당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러 제자들을 보낸 요한을 책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어떤 기적도 하지 않으셨고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때 이미 그 분을 알아보시고 하느님의 어린 양이 온다고 증언한 사람입니다.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증언할 수 있겠습니까? 요한은 기적을 보고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을 보내는 것은 그들이 아직도 감옥에 갇혀있는 자신에게 매달려 있으며 그리스도께로 가지 않으려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은 점점 작아져야 하고 조금 있으면 별이 태양 빛에 사라지듯 사라져야 하는데 아직도 참 스승이요 신랑에게 가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그렇게 그들을 보낸 것입니다.

 

졸지에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를 완전히 믿지 않는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었지만 요한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의 제자들이 그리스도께로 가서 더 완전해지기만을 바랐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며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다른 곳에서는 누구에게서라도 스승이란 말을 듣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만이 참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제자로 삼아 가르치되 당신께 오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뜻입니다.

 

미켈란젤로에게는 보톨도 지오바니라는 스승이 있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14세 때 그의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보톨도는 그의 천재적인 능력을 보고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위대한 조각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제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더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 너는 네 기술로써 무엇을 위해서 쓸 것인가 먼저 분명히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를 술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곳에는 관능적인 조각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성당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곳에는 그리스도와 마리아, 천사와 성인들의 조각들이 있었습니다.

“너는 술집의 쾌락을 위한 조각들을 보았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조각들도 보았다. 너는 무엇을 위한 조각을 하고 싶으냐?”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세 번씩이나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느님을 위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조각을 하고 싶습니다.”

 

표지판은 목적지를 가리키는 역할이지 그것 자체가 최종 목적지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스승도 더 완전함으로 이끌어야지 제자를 자신에게 머물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제도 신자들이 자신을 뛰어넘어 더 하느님께 가까이 갈 때 가장 기뻐해야합니다. 그것이 오늘 스승 요한 세례자의 모범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도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에 어느 누군가의 스승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모범을 넘어서 그리스도께로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요한의 모범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수원교구 오산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