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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기도문

주요기도문 해설 - 02 주님의 기도

by 파스칼바이런 2012. 8. 27.

 

 

주님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기 때문에 "주님의 기도"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일러 주신 기도문이고 보니, 기도문 중에서 가장 완전하고 가장 뛰어난 기도문이다.  그래서 주요 기도문 제일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말씀으로 성경에서 뽑은 기도문이다.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께 가까이 가 청하기를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 같이 저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하였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줄 모르는 제자들에게 지금 우리가 바치고 있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는데, 이것은 마태오 복음 6장 9절에서 13절에 이르기까지 기록되어 있는 성경 말씀이다.

 

"주님의 기도"는 "사도 신경"과 더불어, 초대 교회 때부터 있었던 오래 된 기도문이며, 옛날에는 예비 신도들이 영세 직전에 "주님의 기도"를 외워 두었다가, 영세 전례 때에 비로소 하느님을 참 아버지로 부르는 "주님의 기도를 공공연하게 바쳤었다. 

 

그리고 그 때 신도들은 "주님의 기도"를 영성체 준비 기도로 바치기도 했었다.  그래서 오늘에도 미사 때 영성체하기 전에 "주님의 기도"를 사제와 함께 바친다.  "주님의 기도"는 또 어떤 경우에(예컨대, 연도문이나 모든 성인들의 호칭 기도 끝에서와 같이)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바치는 때가 있는데, 이것은 같은 정신과 같은 생각으로 같은 기도를 바치는 신도들의 일치를 의미한다.

 

"주님의 기도"의 구성을 보면, 하느님을 부르는 말과 그 다음 우리가 요구하는 일곱 가지 요청으로 되어 있다.  처음 세 가지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다음 네 가지는 우리 영혼과 육신을 위한 기도이다.  이것을 각각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가 사람과 이야기할 때 먼저 상대방을 부른 다음 다른 이야기를 하듯이, 이제 하느님과 이야기하고자 하니 먼저 하느님을 부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느님을 부르되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그 때 사람들의 특별한 관습이다.  하느님은 물론 안 계신 곳 없이 곳곳에 다 계시나, 하늘을 특별히 말하는 이유는, 그때 사람들은 하느님은 하늘에만 계시는 줄로 알았고, 또 하늘은 높은 곳이니, 높은 곳에 계시는 그 분은 세상의 모든 것보다 높으신 분이라는 것을 뜻할 뿐 아니라, 하늘은 장차 우리가 하느님을 영원히 뵈올 우리의 본고향인 천국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라 하지 않고 "우리 아버지"라고 한 것은, 그 때 유대 백성들이 자기 나라의 하느님만을 찾고 있었으므로, 이것을 반대해서 하느님은 어느 특정한 나라의 하느님만이 아니시고, 모든 사람들의 공공 아버지라는 뜻에서 "우리"라는 말을 썼다.  하느님께서는 태초에 우리 인간을 만드셨으니까, 우리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아버지와 같으시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다른 말로 "아버지"라고 부른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우리는 높은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조심성 있게 부른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면, 이에 따라 그의 이름도 존경을 받는다. 하느님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니까, 그분의 이름도 거룩하게 빛나야 함은 당연하다.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존경하고 찬미해서, 그 이름의 거룩하심이 모든 이에게 나타나도록 기도하는 구절이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의 나라"라고 하면, 우리는 세 가지 모양으로 알아듣는다.  첫째로 성인 성녀들이 복락을 누리는 천국(天國)을 말하고, 둘째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세우신 보이는 교회를 말하며, 셋째로는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보이지 않는 우리의 착한 마음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교회와 우리의 마음을 뜻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카 17, 21)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잡고, 모든 이가 아버지의 뜻대로 착한 마음으로 살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는 보이는 하느님의 나라, 즉 당신의 교회가 점점 자라서 하느님을 모르는 많은 이가 하느님의 나라인 교회를 알고, 뭇 백성이 하느님을 공경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가 이룩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오시며"라는 말의 뜻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대한다."  또는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의 집으로 간다."는 뜻이다.  혹은 "어디에 이르다", "미치다"라는 뜻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나라가 하늘로부터 이 세상에 미치도록 기도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먼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겠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고통을 당하셨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인간을 죄에서 살리고자 하심이 그 분의 뜻이었다. 십자가를 택하신 하느님의 뜻은 곧 "사랑"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신다.  지금 천국에서는 모든 성인 성녀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으므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천국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듯이,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도 오시어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신다.  다시 말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여러 가지의 죄악을 끊어 버리고 하느님을 참 아버지로 공경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니, 우리는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이제는 영혼과 육신 생활에 필요한 것을 빈다. "일용(日用)할 양식(糧食)"은 매일 우리가 쓰고 있는 식량을 말하는데, 이 말은 비단 매일 먹는 양식뿐 아니라 영혼 생명에 필요한 양식, 즉 우리 영혼에 필요한 하느님의 은혜와 영혼 생명을 길러 나가는 성체(聖體) 성사도 말한다. 이것 외에도 현세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  현세의 모든 생활필수품이 우리 힘으로만 마련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일용할"ㅡ이 말씀으로 우리는 하루 먹을 양식만을 찾을 것이지 10년, 20년 먹을 양식을 찾는 욕심쟁이는 되지 말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하고 살 것을 가르치신다. 그러니까 영혼, 육신의 생명을 위한 모든 것을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하면서 동시에 하느님께 기도로써 도움을 청해야 한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여기서는 우리가 범한 죄의 용서를 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그것은 남이 우리에게 범죄 했을 때 우리가 먼저 그를 용서해 주어야만 비로소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용서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고는 아무리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애원해 보았자 헛된 일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 못한 이를 용서해 준다는 조건하에서만,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해 주시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다른 말씀을 들어 보자.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 14-15). 얼마나 똑똑하게 말씀하셨던가!  특히 다음 말씀은, 우리 형제들 간에 화목하지 않고서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결코 받아들이시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하다.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마태 5, 23-24).

 

하느님께 기도하고자 할 때, 형제들과 마음 상한 일이 생각나면, 먼저 가서 화해를 하고, 기도하란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형제와 우리의 이웃들과 먼저 화목하지 않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은 진정한 기도의 태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유혹(誘惑)"이란 말은 유인(誘引)이란 말과도 같은 의미를 가지는데, 남을 꾀어서 나쁜 길로 인도한다는 말이다.  여기의 유혹은 시련, 고통, 어려움을 다 포함한다. 이 기도문은 얼핏 보기에 하느님께서 마치 우리를 유혹하시는 분같이 생각되나, 그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결코 우리를 나쁜 것에로 이끌지 않으신다.  우리를 유혹하는 물건은 세상의 체면, 욕정으로 기울어지는 육신과 악마들이다.

 

이것들이 우리를 유혹할 때, 하느님께서는 다만 그것을 그냥 내 버려두실 뿐이다.  왜 버려두시느냐 하면, 우리가 이 유혹과 싸워서 공로(功勞)를 세울 수 있도록 하시고자 함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결코 우리가 이겨 낼 수 없는, 말하자면 우리에게 벅찬 유혹을 허락하시지는 않으신다. 그러므로 유혹에 떨어져 죄를 짓는 것은, 오직 우리가 그것을 물리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우리가 유혹을 당할 때, 그것을 따르지 않고 물리치면 죄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공이 된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도무지 죄악의 유혹조차 당하지 않도록 기도하기보다, 우리가 당하는 유혹을 물리칠 하느님의 은혜를 빈다. 즉 유혹에 떨어져 범죄 하지 않고, 이것을 극복해서 공로를 세우는 힘을 주시도록 빈다.

 

악에서 구하소서

 

악(惡)은 항상 우리 언저리에 있는 모든 흉측한 죄악을 일컫는다. 불행히도 우리의 부주의와 태만으로 우리가 이런 악에 떨어졌을 때, 거기에서 건져 주실 것을 빌면서 "주님의 기도"를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