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103위 성인들

성녀 김 바르바라(金 Barbara)

by 파스칼바이런 2012. 9. 27.

성녀 김 바르바라(金 Barbara)

 축일 9월 20일

 

성녀 김 바르바라(金 Barbara, 탁희성 비오 작)

 

 

신      분: 과부,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805-1839년

같은이름: 김 발바라, 김바르바라, 김발바라, 바르바라, 발바라

 

성녀 김 바르바라는 어느 시골의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순하고 또 신뢰심이 있던 이 소녀는 부모를 통하여 성교회를 알고 있던 중, 13세 때에 서울의 어느 부자 신자집의 하녀로 들어가서야 비로소 입교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열심히 성교회를 믿으며 동정 지키길 바라고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찾아와 딸에게 “훌륭한 자리가 나서 나는 벌써 승낙을 했으니 너도 시집갈 준비를 하라”고 하면서, 마치 결혼 상대가 신자 청년인 것 같이 꾸며 결혼하기를 강요하므로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남편 된 사람은 완고한 비신자였으므로 그 사이에 태어난 여러 자녀 중 딸 진주 하나만 영세시킬 수 있었다. 바르바라는 남편을 입교시키려고 15년 동안 온갖 방법을 다 썼지만 결국 실패하였다. 그러던 중에 남편을 여의고 조선에 새로 들어 온 서양신부로부터 성사를 받고 전보다 더 열심한 마음으로 기도와 선한 일에 전념하였다. 그녀는 교우들 사이에 바르바라 또는 진주 엄마로 널리 알려졌다.

 

1839년 3월경 그녀는 자신이 살던 집 주인과 함께 잡혀 포청으로 끌려갔다가 나중에는 형조로 옮겨졌다. 그 동안에 배교하라, 동교인을 대라는 명령을 거부하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여 사지가 부러져서 늘 고생했으며, 주리를 틀리고 곤장을 맞으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켰지만,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쇠약해진 몸이 열병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3개월을 고생하다가 옥 마룻바닥에 누워 35세의 일기로 옥사하였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 김 바르바라(1805-1839)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김 바르바라는 13세 경 상경하여 부유한 교우인 황 마리아의 집에 식모로 들어가 그 때부터 교리를 배워 열심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원래 수정(守貞)을 결심했으나 혼기에 이르러 부모의 강요로 외교인과 결혼하여 남매를 두었다. 결혼한 지 15년 만에 남편을 여의고 딸 하나만을 데리고 신앙생활에만 전념했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이 해 3월 김 바르바라는 몸 붙여 살던 집에서 집주인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가 거기서 심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용감히 신앙을 고백하였다. 3개월 간의 옥살이 끝에 5월 27일 굶주림, 기갈, 염병 등으로 옥사함으로써 순교했다. 그 때 나이는 35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