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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103위 성인들

성녀 우술임 수산나(禹述任 Susanna)

by 파스칼바이런 2012. 10. 1.

성녀 우술임 수산나(禹述任 Susanna)

축일 9월 20일

 

 

 

신      분: 과부,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803-1846년

같은이름: 수잔나, 우 수산나, 우수산나

 

성녀 우술임 수산나는 경기도 양주에 살던 어느 양반집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열다섯 살 때에 인천에 살던 어느 신자에게 시집을 가서 남편의 권고로 입교하여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1828년에 한 번 잡혀 사형선고를 받을 뻔했으나, 마침 해산이 임박하였으므로 몇 주일 동안 갇힌 생활 끝에 풀려 나왔는데 이때 받은 형벌로 인한 상처 때문에 일평생을 고생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 후 남편을 여의고 서울로 올라온 수산나는 여러 교우 집으로 다니며 하인노릇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으나 덕행이 뛰어나 사람들의 눈을 끌게 되었다. 그녀는 기도에 전념하였으며, 천주를 사랑하는 뜻으로 천한 일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녀는 늘 “내 마음에 걸리는 것은 다만 순교할 기회를 놓친 것뿐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느님 섭리로 그 기회를 다시 얻게 되도록 기도하였다고 한다.

 

1846년 병오박해 때에 수산나는 여교우들과 함께 석정동의 김대건 신부 댁에서 생활하고 있다가 김 신부가 체포된 후 이 아가타(Agatha)의 집에 있다가 그녀와 함께 잡혔다. 포청에서 수산나는 치도곤, 태형, 주리 등의 혹형을 당하였지만 배교한다는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매질하라는 명령에 따라 수 없는 매를 맞고 결국 44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이때가 1846년 9월 20일이었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 우술임(禹述任) 수산나(1803-1846)

 

경기도 양주(楊州)에서 태어난 우술임 수산나는 15세 때 인천의 한 교우와 결혼하여 남편의 권면으로 입교했다. 1828년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을 뻔했으나 해산이 임박하여 2개월 간의 옥살이 끝에 풀려나왔는데, 그때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평생 육체적 고통을 받아야 했다. 그 후 남편을 여의고 1841년 상경하여 교우들의 집에서 몸붙여 살다가 역시 과부인 이간난(아가타)과 함께 살며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1846년 5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체포되고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김 신부의 집에 있던 여교우들은 이간난의 집을 거쳐 새 집으로 피신하였는데 이때 이간난도 여교우들을 따라 새 집으로 피신하였다. 결국 우술임만이 남아 혼자서 이간난의 집을 지키고 있다가 7월 11일에 체포되었다. 9월 20일 매를 맞아 반죽음이 된 몸으로 포청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때 성녀의 나이는 44세였다.

 

성녀 우술임 수산나(禹述任 Susanna, 탁희성 비오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