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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103위 성인들

성 유대철 베드로(劉大喆 Peter)

by 파스칼바이런 2012. 10. 1.

성 유대철 베드로(劉大喆 Peter)

축일 9월 20일

 

 

 

신      분: 소년,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826-1839년

같은이름: 베드루스, 유 베드로, 유베드로, 페드로, 페트로, 페트루스, 피터

 

성 유대철 베드로(Petrus)는 역관 유진길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장남이다. 그런데 이 집안은 이상하게도 부자는 열심히 천주교를 믿는 반면, 모녀는 믿기는커녕 이를 반대하여 가정에 불화가 그칠 날이 없었고 신자들을 욕하기까지 하였다. 어머니가 "어째서 너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일을 고집하느냐?"라고 말씀하시면, 베드로는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복종하겠으나 하늘의 임금, 만물의 주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온순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어머니의 눈이 어두움을 한탄하면서도 어머니께 대하여는 언제나 지극한 효성을 보여주었다.

 

박해가 일어나자 그의 마음속에는 순교하고자 하는 열렬한 욕망이 일어났다. 당시 옥에 갇혀있던 부친과 여러 신자들의 본보기는 그의 마음에 불을 질러 놓았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체포된 후 하느님께 대한 열광적인 사랑에 끌려 1839년 7월경 관헌들에게 자수하였다. 재판관은 그의 집안 내력을 자세히 물어보고 신자의 자식임을 알게 되자 옥에 가두고, 배교한다는 말을 하게 하려고 어르고 엄포하고 고문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다 사용하였다. 그리고 옥사장이 혹형을 대철에게 가하여 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사방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서도 이 용감한 어린이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루는 어떤 포졸이 구리로 된 담뱃대 통으로 그의 허벅지를 들이박아 살점을 한 점 떼어내면서 소리쳤다. "이래도 천주교를 버리지 않겠느냐?" "그러면요, 이쯤으로 배교할 줄 아세요?" 그러자 포졸들은 벌겋게 달군 숯 덩어리를 집어 들고 입을 벌리라고 하였다. 대철이 "예" 하고 입을 크게 벌리니 포졸들은 놀라서 물러나고 말았다. 다른 교우들이 그에게 "너는 아마 많은 괴로움을 당한 줄로 생각하겠지만 큰 형벌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고 말했다. 대철은 "저도 잘 알아요. 이건 쌀 한 말에 대해서 한 알 같은 것이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 후 고문을 당한 끝에 까무러친 그를 데려와서 다른 죄수들이 정신이 들게 하려고 허둥지둥할 때 그가 한 첫마디는 "너무 수고를 하지 마세요. 이런 것으로 해서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해 형리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유 베드로는 문초받기를 1회, 고문 14회, 태형 6백대 이상과 치도곤 45대 이상을 맞았지만 항상 기쁜 얼굴로 지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기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관헌들은 어린 그를 공공연히 죽이면 군중이 반발할까 두려워서 1839년 10월 31일 형리가 옥 안으로 들어가 상처뿐인 이 가련한 작은 몸뚱이를 움켜쥐고 목에 노끈을 잡아매어 죽였다. 이때 베드로의 나이는 겨우 14살이었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우)와 성 유대철 베드로(Petrus) (김태 작)

 

성 유대철 베드로(1827-1839, 소년, 기해박해 때 교수)

 

유진길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난 유대철(劉大喆)은 어려서 아버지의 모범을 따라 입교한 후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다. 천주교를 미워하는 어머니와 누나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으나 그 때마다 항상 어머니와 누나의 회개를 위해 기도했다. 1839년 기해박해로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어 감동적인 순교를 하자 유대철은 순교를 결심하고 자헌했다. 포청에서 13세의 어린 나이로는 견디기 힘든 형벌과 고문을 받았다.

 

허벅지의 살을 뜯어내며 "이래도 천주교를 믿겠느냐?"하고 으름장을 놓는 형리에게 "믿고 말고요. 그렇게 한다고 제가 하느님을 버릴 줄 아세요?" 하고 대답하자 화가 난 형리는 다시 시뻘겋게 단 숯덩이를 입에 넣으려하니 "자요" 하고 입을 크게 벌려 형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포청에서 총 14회의 신문을 받고 100여 대의 매와 40여 대의 치도곤을 맞아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유대철은 항상 만족스럽고 평화롭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 형리들은 유대철을 배교시킬 수 없게 되자 10월 31일 포청옥에서 몰래 목을 졸라 죽였다. 그는 103위 성인 중 가장 어린 순교자이다.

 

- 성 유진길(劉進吉) 아우구스티노는 부친.

 


 

 

성 유대철 베드로(劉大喆 Petrus, 탁희성 비오 작)

 

성 유대철 베드로

 

한 소년이 포도청을 찾아와 "나도 천주교인이오. 자수하러 왔습니다"고 관원들에게 말하였다. 눈이 휘둥그래진 관원들은 어린아이가 찾아와 하는 이 말에 어이가 없었다. 이 소년이 역관 유진길(아우구스티노)의 아들인 유대철(베드로)이다.

 

서울에 태어난 유대철은 어려서 아버지의 모범을 따라 입교한 뒤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와 누나는 천주교를 믿는 것을 반대하며 베드로를 괴롭혔고, 그 때마다 베드로는 어머니와 누나의 회계를 위해 기도했다.

 

1839년 박해가 시작되면서 만은 교우들이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순교하였다. 이러한 감동 어린 순교는 어린 유대철의 마음에 순교하고자 하는 열망을 심어주었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체포되어 심한 형벌을 받고 있을 때 자신도 천주교인이라면서 관헌에게 자수하러 온 것이다.

 

포청에서는 베드로한테 배교한다는 말을 들으려고, 어르고 엄포하고 고문하는 등 여러 방법을 시도하였다. 어느 날 포졸이 구리로 된 담뱃대로 그의 허벅지 살을 때어내면서 소리쳤다. "이래도 천주교를 믿겠느냐?" 그러자 베드로는 "그럼요. 이것쯤으로 제가 하느님을 버릴 줄 아세요?" 하고 대답했다. 몹시 화가 난 포졸은 다시 시뻘겋게 단 숯덩이를 입에 넣으려 하자 베드로는 "자요" 하고 입을 크게 벌려 그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 뒤 베드로는 심한 고문을 당해 까무러쳐 옥으로 끌려왔다. 옥에 갇혀있던 교우들이 베드로를 정신들게 하려고 허둥지둥할 때 그는, "너무 수고들 하지 마세요. 이런 것으로 죽지는 않을 거에요" 하면서 오히려 교우들을 위로했다.

 

유 베드로는 포청에서 모두 열네 번 신문을 받고 백여 대의 매와 사십여대의 치도곤을 맞아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항상 평화롭고 시쁜 표정을 지었다. 포청에서는 어린 그를 공공연히 죽이면 군중이 반발할 것을 두려워하여 1839년 10월 21일 형리가 옥안으로 들어가 목을 졸라 죽였다. 이때 베드로의 나이는 겨우 열세살이었다. 그는 103위 성인 가운데 가장 어린 순교자로 기록되었다.

 

[경향잡지, 1996년 10월호]

 


 

 

 

[가톨릭 성물이야기] 서울 청담동본당 ‘성 유대철 베드로’ 부조석상

한 손에 책, 한 손에 칼 들고 하늘의 별을 따르다

  

공예가 고 이순석 선생 후기작

배경은 한국 103위 성인 상징

 

"장소와 사용되는 도구의 본질과 아름다움이 신자들의 신심을 북돋아 주며 미사의 성스러움을 드러내야 한다"(미사경본의 총지침 257항)

 

성물은 신상 자체를 섬길 목적으로 생겨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앙의 다양한 진리를 깨닫고 묵상하도록 정신과 마음을 들어 높이려는 의도에서 생겨났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형상을 통해서 하느님의 풍요로움을 체험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물은 실용을 넘어 종교적 체험으로 이끄는 예술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또한 작가가 지닌 각기 다른 시각과 체험을 통해 표현되는 성물은 신앙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그런 점에서 공예가 고(故) 이순석(바오로·1905~1986) 선생의 성미술 작품들은 신앙의 대상으로 기능을 다하면서도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조화돼 있다.

 

이순석 선생은 자신이 다니던 본당마다 작품을 남겼다. 서울 중림동과 후암동, 청담동성당에서는 아직도 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가톨릭성물이야기'에서는 청담동성당의 '성 유대철 베드로' 부조석상을 소개한다.

 

작품은 한 손에는 '천주'라는 글자가 보이는 책을 들고 다른 손에는 성인의 순교를 상징하는 칼을 들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 아래에 보이는 별을 따르고 있는 형상이다. 배경에는 한국교회 103위 순교성인들을 상징하는 103송이의 무궁화와 휘광이 새겨져 있다.

 

작가가 순교성인 중 가장 어린 성인인 유대철 베드로를 석상의 주제로 삼은 것은 본당 주보성인이기 때문이다. 청담동본당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지역에서 가장 활력 있고 중심으로 위치할 성당이 되기 위해 성 유대철 베드로를 주보성인으로 택했다. 이 선생은 어린 성인의 모습이 새겨진 거대한 돌을 성당 마당에 세워 성당에 오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풍요로워 질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순석 선생의 후기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이 부조석상 작품에는 또 특별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작품에 사용된 돌이 작품을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 1982년 성전증축공사를 하면서 터에서 나온 돌을 사용했다. 환경에 조화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이선생의 작품관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톨릭신문, 2009년 4월 12일, 이지연 기자]

 


 

 

 

성화해설

한국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 신부인 김대건은 순교한 천주교 103위 성인들 중 한 명으로, 그는 붉은색 관복을 차려 입은 남종삼, 도령 복장의 류대철과 함께 소박한 흰 옷에 갓을 쓰고 두 손 모아 기도 드리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배경의 흰 바탕 중앙에는 엷은 회색톤으로 처리됨으로써 세 명 성인들의 모습이 은은하게 돋보이도록 연출하였고, 내면화되고 진지한 얼굴 표정에서는 성인의 완고한 신앙적 결의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한국의 동양화가인 월전 장우성은 대담하면서도 섬세하고 생동감 넘치는 붓터치로 한국화의 전통을 현대적 감각과 독창적인 화풍으로 구사하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가 화폭에 담은 성인들의 모습에서는 전통적인 동양화 특유의 사실적인 섬세함과 기품이 돋보인다(박혜원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