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21세기 한국 가톨릭교회의 과제(1)

by 파스칼바이런 2012. 11. 18.

 

 

 

 

변화하는 사회, 새로운 도전들:

 

21세기 한국 가톨릭교회의 과제 이 글은 1997년 6월 14일 있었던 한마음한몸운동 10주년 준비 학술 심포지엄(한마음한몸운동과 한국 교회)에서  “한국사회의 변동 전망과 가톨릭교회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것을 대폭 수정,  보완한 것이다. 당시 이 글을 읽고 토론해 주신 박복주 수녀님, 윤갑구 회장님, 김준일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Ⅰ. 머리말

 

 

성서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역할을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 5,13-14)으로 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리스도인과 그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사회적 역할은 이처럼 사회가 발전되어 나가야 할 바를 제시하는 ‘방향 제시의 기능’과 사회가 부패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사회 비판의 기능’으로 요약될 수 있다.

남미의 가톨릭 신학자인 구스타보 구티에레즈는 교회의 이 같은 역할을 ‘고발(denunciation)’과 ‘예보(annunciation)’ 로 개념화한 바 있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즈, '해방신학(Ⅱ)', 편집부 역 (서울: 한밭, 1984), 284-292쪽.

 

이처럼 그리스도인과 교회에게 ‘목적의식적인’ 사회적 개입과 참여는 당연한 의무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항상 사회가 발전되어 나가야 할 바에 대한 비전과 올바른 방향감각에 기초하여 그렇게 나아가고 있지 못하거나 그에 역행하고 있는 현 사회를 비판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자극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교회의 사회적 직무는 좀더 세분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의 볼티모어대교구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가운데 14개 항목으로 구성된 ‘좋은 본당의 기준들’을 제시했는데, 이 가운데 네 개의 기준은 명백히 교회의 사회적 참여와 봉사에 초점을 두고 있다. "Criteria for a Good Parish," Origins, Vol. 24, No. 3 (June 1994), pp. 33-36.

 

복음화:  좋은 본당은 복음을 전파하라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체험하며, 적극적인 복음화 프로그램으로 응답한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  가난한 자에 대한 교회의 우선적 선택에 발맞춰, 좋은 본당은 교회 안과 밖 모두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 활동을 특별히 집중시킬 것이다.

 

지역사회에 대한 참여(presence to neighborhood):  좋은 본당은 자신의 봉사 사명의 한 부분으로 인근 지역사회의 삶에 관계되어 있다. 에큐메니칼하게 혹은 시민적으로 다른 이들과 협력하여, 본당은 지역공동체의 다양한 사회적 욕구들을 충족시키는 데 기여한다.

 

여타의 봉사 직무:  교우들은 평등, 자유, 정의, 평화를 증진하는 직무들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할 것이다. 본당은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옹호하는 데 적극적일 것이며, 노인, 장애인 등 특별히 곤란을 겪는 이들을 돕는 적극적인 프로그램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교회는 사회 변동의 방향에 부합하는 선교 전략을 수립해야 하며, 이 시대의 ‘가난한 이들’이 누구인가를 식별하고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봉사해야 하고, 우리 사회 안에서 ‘특별히 곤란을 겪는 이들’이 누구인가를 식별하고 이들을 위한 효과적이고도 실행 가능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지역공동체의 다양한 사회적 욕구들을 충족시키는 데 기여해야 하며, 평등, 자유,  정의, 평화 등을 구현하기 위한 직무들에 참여해야 한다. 특히 교회는 여러 이유로 국가, 기업, 지역사회, 가족 등이 돌보지 않거나 돌보기 힘든 힘없고 소외된 이들, ‘사회문제’로 간주되는 ‘문제 집단 혹은 개인들’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과 배려를 기울여야 한다.

 

비록 국가와 기업이 보유한 자원의 양에는 미치지 못하나, 교회는 시민사회 안에서 가장 방대한 인적, 물적, 조직적 자원을 갖고 있는 조직들 가운데 하나이다. 교회의 보유 자원은 지난 수십 년간 계속된 급속한 교세 성장으로 크게 증가되었다. 교회는 국가와 기업, 시민 단체들, 대학, 언론 기관 등에 비해 전문성면에서 뒤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교회 안에는 인간의 삶을 다루어 온 기나긴 역사를 통해 축적한 넓고도 깊은 ‘역사적 지혜 내지 노하우’가 있다. 또한 교회는 인간 삶과 그것의 ‘총체적’ 변화를 지향하기 때문에 인간사회의 ‘모든’ 측면들에 관심을 갖고 개입한다. 교회의 활동 범위의 이 같은 광범함과 다기능성에 비견할 수 있는 현대의 사회조직은 국가밖에 없다.

 

한편 사회의 구조적 변동은 두 가지 방면에서 교회에 영향을 미친다. 한 면에서 사회의 구조적 변동은 교회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역할 기대를 낳는다. 여기에 반응하면서 교회의 대(對)사회적 관계가 재정립된다. 다른 면에서 사회의 구조적 변동은 그 변동의 직접적 영향권 내에 있는 신자들을 통해 교회 내에서 이미 진행되던 과정을 촉진 혹은 저해함으로써, 또한 그 과정을 새롭고 낯선 맥락 안에 위치 짓고 새롭게 방향 지움으로써, 교회 내적으로 대처해야 할 새로운 문제들을 발생시킨다. 이 문제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종종 기존의 사회적 개입 방식을 수정하게 된다.

 

다가올 21세기는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달, 사회변동 속도의 가속화와 시간성 주기의 단축, 물질적 풍요와 생태계의 변화로 인한 가치관의 변화(환경주의적 가치관의 강화, 복지 및 여가를 중시하는 가치관의 강화), 도구나 기계보다 인간 요소가 생산력에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되는 인간화, 정보화에 따른 집권화 및 분권화의 진전, 지구화에 따른 근대 민족국가의 약화 및 문화적 차원의 민족의 중요성 증대 등의 특징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있고, ‘기대와 불안의 공존’ 자체가 21세기의 또 다른 특징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배규한, ‘미래사회학’ (서울: 사회비평사, 1995), 95-101쪽.

 

미래의 이 같은 ‘불확실성’은 근본적으로 사회의 구조적 변동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행위 주체들의 ‘전략적인 선택’에 따라 변동이 내용과 방향이 매우 유동적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교회 역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 사회적 행위 주체들 중 하나임은 물론이다.

 

20세기의 막바지를 넘고 있는 한국 사회는 내외적으로 급격하고도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한국 사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 가톨릭교회 역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거나 변화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 한국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변화에 대한 압력은 한국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의한 것이거나, 한국 교회의 내적인 문제점들이 새롭게 드러남으로써 발생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오늘날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가? 한국 사회의 변화는 교회에 어떤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게 될 것인가? 그 과정에서 교회 내적으로는 어떤 새로운 문제들이 대두될 것이며, 교회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가? 이 글은 이 같은 질문들에 보다 적절하게 답하기 위한 예비적인 모색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