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와 생명 윤리 소병욱 신부 (대구효성가톨릭대 총장)
생명윤리(철학)는 197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철학 측에서는 인간 생명에 대한 과학의 개입에 거의 무관심하였다. 철학자들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19~20세기에 일어난 과학의 발전에 무제한적인 신뢰를 보내면서 그가 일으키고 있는 윤리적 문제 또는 미래에 범할 윤리적 오류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과 제한도 없이 인간의 육체적 고통 문제 모두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면서 생명에 대한 온갖 개입에 눈감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가톨릭교회만이 인류의 생존과 그 미래를 염려하며 과학 및 의학 관련 윤리 가치와 윤리 규범에 관심을 가지도록 세인의 양심을 끊임없이 일깨워 왔다. 이 사실은 가톨릭교회가 특히 지난 반세기 동안 수많은 생명, 의료 관련 윤리 문제에 관한 공식 문헌들을 내놓은 것을 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교회가 일찍이 다루어 온 이러한 문제들을 교회 바깥의 어느 철학 강의에서도, 어떤 의학 교실에서도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교회의 생명윤리(신학)는 생명의 단계적 성장, 병, 치유, 죽음 등 생명현상에 대한 과학적 간섭의 윤리성을 신앙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예를 들면 토마스 전통의 도미니꼬의 회원인 프륌머의 [윤리신학]에서는 [육체의 상해]에 관한 기술을 [정의의 상해]라는 주제 안의 소주제를 다루면서, 자기 육체의 상해, 악인의 상해, 침입자의 상해, 결투, 전쟁, 무죄한 자의 살인, 두개골 절개, 낙태 등을 다루고 있으며, 그 반면 알퐁소 전통의 [윤리신학]은 위프뤔머의 교과서와 비슷한 소주제들을 [5계명]안에 분류 시킨다. 이런 식의 분류 및 접근 방법은 최고 교도권이(특히 비오 12세) 생명윤리 관련 주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2차 바티칸 공의회 직전까지도 그대로 이어오고 있어서 생명 및 의료 윤리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언제나 살인 금지의 주제로 다루어져 왔었고 그 결론들은 주로 고해 사제들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전통적 윤리신학 교과서의 위와 같은 상황에서 불구하고 이미 19세기부터 가톨릭 윤리 신학자들 중에는 윤리 각론으로서의 생명-의료 윤리 관련 주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룬 이들이 많아서 그 저서들만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50권이 넘는다. 이런 저서들의 제목은 [윤리신학과 의학], [사목 의학], [윤리와 의학, 보건과의 관계], [고해신부들을 위한 사목 의학]등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기억될 만한 저서는 안 또 넬 리의 위 [고해신부들을 위한 사목 의학] 전4권이다. 그는 사제요 자연과학 교수로서 1905년에 이 저서를 출판하여 1932년까지 5판을 거듭하였다. 이미 90년 전에 만들어진 이 책에서 우리가 놀랄 만한 것은 서문 중 발견되는 깊은 현실성이다 : {현세기 에는 경험과학들, 특히 의학, 외과학, 생리학, 해부학 등은 전혀 새로운 사실들이 많이 발견 해내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윤리신학은 확실한 원칙들을 기초로 하여 위 과학적 발견과 관련된 태도를 확정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은 충분한 생리학적 지식 없이는 올바른 접근도 해결도 있을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
인간의 여타 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경험과학의 발전은 매우 중요하고도 많은 의문들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윤리학은 다루어야 할 많은 실제적 문제들을 마주하고 있다. 과거에는 생리학이나 해부학적 지식이 없더라도 여러 의문들이 다양하게 해결되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것이 더욱 어렵게 되었다. 왜냐하면 과학의 새로운 발전이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그것들이 참으로 새롭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미 90년 전에 과학의 새로운 발전 때문에 윤리의 대응이 필요하다면 오늘날에는 어떠하겠는가.
1950년대 미국에서는 켈리(Gerald Moral Problems)이란 저서를 통하여 현대적 의학 윤리 분야의 개척자가 된다. 그 후 미국 교회 내에서는 70년대 이후 머코믹(R. McCormick), 칼라한(D. Callahan) 등이 각각 생명 - 의료 윤리 관계의 선구자적 저술가들이 된다. 그러나 유럽 교회에서는 70년대까지도 윤리 철학적 방법론에 의한 생명윤리보다 윤리신학의 일부이자 사목활동의 보조 수단으로서, 또한 의료 분야에 집중적 관심을 보인 생명 의료 윤리에 비해 신앙인의 육체 생활 전반에 걸친 윤리 생활 안내서로서 [육체 생활의 윤리] (Morale della vita fisica) 란 제목을 단 저서들이 우선적으로 출판되고 있었다. (예, E. Chiavacci, L. Ciccone)
다만 로마에서 활동하던 헤링(B. Haring)의 [의학 윤리] (Medical Ethics) 가 1972년도에 출판되었으나 저자 스스로 밝히듯 저서가 이루어진 배경은 유럽이라기보다 미국이었다.
그의 메시지는 많은 경우 인간 생명을 억압한 나치즘의 죄악의 기술 문명에 대한 고발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의 관심은 생명의 시작, 삶의 도정 및 생명의 종말에 이르는 거의 모둔 분야에 걸쳐 있다. 즉 인공수정, 치료적 낙태와 불임수술, 유전병 전수의 위험이 있을 경우의 산아조절, 무통분만, 인체 실험, 지체 절단, 의료 윤리와 의료권, 조직과 장기의 적출 및 이식, 회생술의 종교적, 윤리적 문제 등이다.
그 후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을 공의회 문헌의 차원으로 강조, 선포하였다:{또 온갖 종류의 살인, 집단 학살, 낙태, 안락사, 고의적인 자살과 같이 생명 자체를 거역하는 모든 행위와 지체의 상해, 육체와 정신의 고문, 심리적 탄압과 같이 인간의 완전성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와 ……. 그것을 불의를 당하는 사람보다 불의를 자행하는 사람을 더럽히는 행위로서 창조주께 대한 극도의 모독이다}(사목헌장 27항).
비오 12세 이후 최고 교도권의 생명 의료 윤리 관련 문헌은 그의 재임 당시에 비해 눈에 띠게 줄었으나 현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경우 현대의 생명과학과 의학의 또 다른 발전에 따른 윤리적 문제들의 확산으로 인해 비교적 많은 문헌들이 나오고 있다. 바오로 6세는 낙태, 산아조절, 인구문제, 가톨릭계 병원에서의 불임수술 문제 등에 관한 가르침을 발표하였고 요한바오로 2세는 신앙교리성의 선언들과 함께 다양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낙태, 의사의 양심 문제, 태아 성감별 문제, 의학의 실천과 연구, 의사의 직무, 생명과학 및 유전공학 문제, 조작의 문제, 교회와 병자, 기아에 대한 투쟁과 생명권, 안락사 문제, 인간 생명의 기원과 출산 문제, 성윤리 문제이다.
요한바오로 2세는 금년 3월25일 생명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종합적으로 재천명하는 회칙 [생명의 복음] (Evangelium Vitae) 반포하였다.
이어서 교황은 인간 생명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 전체를 요약하면서 생명의 선성, 하느님의 선물 및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표지로서의 인간 생명, 영원한 생명에로 불림 받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존중과 사랑, 그에 대한 인간의 책임 등을 다룬다. 회칙은 제3장에서 생명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는 곧 사랑의 표현이요, 그 사랑의 선물은 곧 생명에 관한 당신의 요청, 곧 계명임을 밝힌다.
생명 존중은 계명은 생명의 성성, 생명의 주권자에 대한 인식으로 나타나며 그 인식의 실천면에서 사형, 낙태, 배아에 대한 인위적 개입, 안락사, 자살에 대한 고찰이 이어진다.
회칙에 결론 부분에서 교황은 새로운 생명 문화를 형성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복음화의 전망에서 강조한다. 복음화라는 복합적 활동을 통해서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고, 전례와 우리들의 일상 사안에서 그것을 거행하며 생명을 고양하고 지지하는 활동과 구조를 통하여 생명의 복음에 헌신해야 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최고 교도권의 생명윤리 관련 가르침들을 보면 그 내용에 있어서 생명윤리 전 분야에 걸쳐 실로 다양하게 언급되고 있다. 미국 가톨릭 보건 협회가 펴낸 [가톨릭 의학 윤리의 원천]은 교도권이 다룬 생명윤리 관계 주제들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1) 생명의 시작과 관련된 문제들 : 낙태, 인공수정, 산아조절, 배아 연구, 가족계획, 체외수정, 대리모, 불임수술.
2) 생명의 보존과 관련된 문제들 : 에이즈, 의사 - 환자의 신뢰 문제, 보건행정, 의료직의 사명, 의료보험, 간호, 장기 기증과 이식, 진통, 의약 문제, 의료 대책, 보건권, 장애아, 보건행정.
3) 생명의 종말에 관련된 문제들 : 노인 문제, 시신 해부, 뇌사, 안락사, 연명 의료 문제, 생명 유지 기기의 철거 문제.
4) 각종 윤리 원칙에 관련된 문제들 : 이중효과의 원칙, 고지후 승낙의 원칙, 환자의 진의 표명 문제, 통상 수단과 특수 수단, 전체성의 원칙, 진실 밝히기. ( * 윤리 원칙에 관해서는 후에 따로 설명될 것이다)
5) 성, 결혼, 가정의 문제.
이를 볼 때 교도권의 관심은 생명 및 의료 윤리의 전 분야에 걸쳐 망라되고 있다. 오늘날 교회가 주고 있는 이러한 가르침들은 실상 초세기부터 시작된 교회 전 역사의 일관된 관심이었다. 인간 생명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그 인간관과 더불어 전 세기에 걸쳐 여러 가지 모습으로 끊임없이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톨릭교회는 왜 거의 독보적으로 생명 및 의학 윤리에 관심을 가져왔는가?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옹호 해온 교회의 가르침이 그 기본 근거가 아닐 수 없다. 과학은 교회의 그늘 아래 지속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중세기의 대학들은 교회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고, 신학자들은 곧 과학자들이었다.
이러한 맥락 안에서 가톨릭 신학은 생명과학, 의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인간 생명에 대한 이성적이고도 철학적인 반성의 합법성과 필요성을 깨닫고 그 연구 결과를 신학과 윤리에 연계시킬 줄 알았다. 인간 생명은 무엇보다 먼저 이성을 사용하는 만인들이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자연적 가치이다. 거기에다 은총은 인간존재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든다. 이성의 가치, 이성적 윤리, 자연법 윤리의 정당성을 교회 전통은 항상 높이 평가해 왔다.
예를 들어 낙태의 부당성을 비그리스도인도 깊이 수긍할 수 있는 이성적, 자연과학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자연과 초자연, 이성과 계시, 신학과 철학의 공통적 기원은 하느님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교회는 그 교도권과 의학 윤리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생명윤리를 가르쳐 왔다. 그리스도교는 그 시초부터 순수 초월주의와 이적 주의를 스스로 멀리하면서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고무하고 신앙과 과학의 일치를 도모해 왔다. 교회는 언제나 치유에 있어 제2의 원인을 인정하여 왔다. 인간이 하는 치료 행위는 하느님이 하시는 치유(치유의 1차적 원인)의 제2의 원인이다.
하느님의 직접적 행위인 기적(하느님의 치유)은 가능한 일일 뿐 아니라 실재적인 것으로 교회는 항상 인정해 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의사의 치료 행위를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제2의 원인으로 고무해 왔던 것이다. 이처럼 생명윤리는 그 테마의 본성상 신학적 지평 뿐 아니라 과학적 - 철학적 이성적 지평에서의 서술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교회 역사는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1995년 8월20일 가톨릭 신문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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