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민족 통일과 교회의 재통합
향후 한국 사회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민족이 통일되는 상황일 것이다. 특히 갑자기 남북한간에 긴장이 고조되거나, 북한 정권의 급작스런 쇠퇴 내지 붕괴로 인한 흡수 통일이 진행될 경우 한반도 전체가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한반도에 급속한 방식이든 점진적인 방식이든 민족 통일로의 진전은 한국 사회 전반에 엄청난 변화의 원천이 될 것이고, 교회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민족의 통일은 단순한 정치적 통일을 넘어서는 것으로, 경제적 통일, 생활공간의 통합, 문화적 동질성의 회복에 의해 비로소 완료되는 것이다. 동시에 민족의 통일은 민족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통일이 민족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사회 발전 도모하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남북 양측은 서로가 상대방의 체제에 적응할 수 있는 ‘경제적 유연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 둘째, 남북한에서 서로를 적대시하는 냉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정치적 관용성’을 증진시켜야 한다. 셋째, 남북한의 문화적 통합은 가장 먼저 시작될 수 있으면서도 가장 늦게까지 이루기 어려운 부문이 될 것이므로, ‘문화 다원주의적’ 태도를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이 시급히 개시되어야 한다. 넷째, 사회적 통일은 제일성(unity)을 의미한다기보다 사회 각 분야의 ‘다양성(diversity)’을 인정하는 가운데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뜻하므로, 남북한 간의 이질적 구조를 서로 인정하고 합의된 미래상에 따라 차이를 점진적으로 보완해 나감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사회구조를 창출해 내야 한다. 배규한, ‘미래사회학’, 281-282, 290-296, 310-312쪽.
한편 독일 통일과 한국을 비교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독일의 통일이 한국의 통일 운동에 주는 교훈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채구묵, “한국 통일을 위한 독일통일의 교훈,” ‘한국 사회’ 제30집 (1996년 겨울).
첫째, 남북한에 민주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사를 역동적으로 수렴하고 국민 의사를 통일 정책에 더 많이 반영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남북한에서의 민주 정부의 수립은 적절한 통일 정책의 수립과 실천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남북한에서 민주 정부에 의해 통일을 진정으로 원하는, 신 사고를 가진 지도자가 집권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남북한간에 통일을 위한 대화가 상호간의 신뢰와 양보, 타협에 의해 진지하게 이루어질 것이며, 평화적 통일을 위한 결론도 손쉽게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경제력의 강화와 우수한 사회보장제도를 실현하는 것이다. 강한 경제력은 외부의 장애요인을 제거하고 막대한 통일 비용에도 불구하고 통일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함으로써 한국인들로 하여금 적절한 통일 정책을 수립, 추진할 수 있도록 하고, 잘 조직화된 사회보장제도는 북한의 민중운동에 동기부여를 제공하고 남북한 사이의 경제적 제도의 차이를 좁혀 줌으로써 통일을 위한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 줄 것이다. 셋째, 사회화 과정의 개혁이다.
남북한 주민들 사이에 증오심과 불신의 감정을 증가시켜 온 종전의 정치적 사회화 과정을, 서로 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사회주의 및 자본주의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사회화 과정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적 사회화는 양측 한국인들로 하여금 상호간의 불신과 증오의 감정을 줄이고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도록 해 줄 것이며, 이는 결국 정부로 하여금 통일 업무를 성실하고도 진지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될 것이다.
여기서 제기된 민주 정부의 수립, 경제력의 강화와 우수한 사회보장제도의 실현, 사회화 과정의 개혁은 의당 한국 교회의 임무 중에 포함되어야 하며, 이미 상당 부분을 실행에 옮기고 있기도 하다. 교회는 이밖에 통일과 관련된 환경 변화에 대한 정확한 예측, 통일 문제에 대한 교회 입장의 정립, 전쟁 방지 및 평화 증진을 위한 노력, 통일에 대비한 실제적인 준비작업의 진행 등에 시급히 착수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교회는 분단된 교회의 재일치, 북한 교회의 재흥(再興)과 같은 문제도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마도 민족의 재통합과 교회의 재통합이 역동적인 상호 연관관계 속에 놓여 있다고 보고, 두 가지 목표 간에 균형을 유지하면서 두 영역 모두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려는 입장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이때 아울러 북한 교회와의 평등한 협력을 강조하고 상대적으로 소규모이고 자생력이 약한 북한 교회를 남한 교회가 지원하는 ‘협력 주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북한 당국에 대해 그들의 통치권이라는 기존 현실을 인정하고 민족 통일의 과정에서 부단히 접촉하고 대화해야 할 파트너로 인정하는 ‘평화통일’ 혹은 ‘점진적 통일’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또한 필요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강인철, “종교와 통일운동: 한국 천주교의 사례,” ‘종교문화연구’ 창간호 (1999), 36-39쪽 참조.
교회의 재통합 문제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통일은 본연의 종교적 영역에도 새로운 상황을 조성할 것이 분명한데, 그 중에서도 다음의 세 가지를 우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통일 이후의 그리스도교는 남한교회의 주도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교세와 자원의 극단적인 불균형으로 인해, 북한 교회가 통일 이후 남한 교회와 완전히 대등한 지도력을 행사하기란 불가능하다.
둘째, 통일은 남한 교회와 남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엄청난 비용 지출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남한의 충분치 못한 경제력과 낮은 복지 수준으로 인해 민간 부문의 역할이 더욱 크게 요구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할 지출의 대부분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복지비용일 것이고, 종교시설의 건립과 인원의 충원에도 상당한 비용이 요구될 것이다.
셋째, 통일은 사회 각 방면에서 발생되는 갖가지 후유증과 문화적 혼란으로 인해 꽤 오랜 기간 동안 그리스도교 인구의 팽창을 결과할 것이다. 특히 북한 주민들은 광범한 잠재적 신자군을 형성할 것이다. 따라서 통일과 관련하여 우리 교회에 제기되는 과제들로서, 우선, 교회는 가급적 신자 대다수가 지지할 수 있는 동질적인 통일 방안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또한 북한 교회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이해와 관용의 자세를 갖고, 연약한 북한 교회가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한의 신자들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납득시키고, 통일의 과정과 이후에 요구될 엄청난 지출을 감내할 자세를 갖추도록 계속적인 계몽과 교육 활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Ⅲ. 맺음말
우리 사회는 1980년대 말을 계기로 고령화 사회, 정보사회, 소비사회, 지구촌 사회 등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 글에서 분석된 이외의 대부분의 구조적 변동 추세들도 이 무렵부터 그 흐름이 빨라졌다. 바로 이 무렵부터 우리 사회의 제도화된 주요 종교들의 성장세가 눈에 띠게 둔화 내지 정체 상태로 빠져든다는 점, 그리고 같은 시기에 다양한 내용과 형태를 지닌 이른바 ‘신종교 운동들’이 대두하고 전통적인 민간신앙들이 재 활성화되고 그 쪽으로 많은 이들이 몰리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우선, 지난 10년 간(1985~1995년)의 ‘인구 및 주택 센서스’는 이 기간 동안 총인구 중 종교 인구 비율이 약 10%나 증가했음을 보여주는 데 비해, 주요 제도 종교들의 신자수 성장률은 1980년대 말부터 급격히 둔화되고 있음을 각 교단의 통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경향을 종합하면, 최근의 종교 인구 동향은 “‘종교 인구의 증가’와 ‘제도종교인구의 증가’의 동시적 진행”이라는 종전의 추세가 “‘종교 인구 증가’와 ‘제도 종교 인구 감소’의 동시적 진행”이라는 새로운 추세로 이행하는 국면에 처해 있다는 판단이 가능해진다.
이 같은 현상이 생겨나는 원인은 다양할 것이고 앞으로 연구를 통해 그 내용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중산층을 포함한 전 계층에서 ‘종교적 관심과 심성’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제도 종교들은 사회 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기민하고도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 무관심하거나 무력하다는 점이다.
또한, ‘종교적 관심과 심성’의 대중적 확산이라는 최근의 현상은 구체적으로 종신고용, 연공서열제의 쇠퇴로 인한 경쟁 압력의 고조와 개인의 미래에 대한 불안 증대, 산업 구조 조정 및 고도화로 인한 실업자의 증가, 사회 변화의 무서운 속도, 탈냉전 이후의 모호하면서도 야수적인 세계 질서, 경제 체제의 양극화와 사회복지 이데올로기의 쇠퇴, 지구화로 인한 문화적 정체성 위기, 환경 위기로 상징되는 지구 종말에 대한 의식의 고조…등 최근의 급격한 사회구조적 변동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현재와 미래 상황의 불확실성이 극도로 심화된 데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현대인들은 생로병사나 빈곤, 불평등과 같은 인류의 오래된 숙제들만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여러 문제들에도 동시에 직면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빠른 사회 변화에 적응하려다 보니 그에 뒤따르는 긴장과 스트레스가 엄청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 오로지 적응의 압력 속에서 과거나 미래를 성찰 해볼 마음의 여유를 잃은 채 ‘영원한 현재’에 갇혀 있음으로 해서, 그리고 사회가 너무 복잡해지고 다원화됨으로 해서, 자신의 미래가 도대체 어디로 갈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를 예측하기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의 제도화’가 20세기말의 시대적 특징이라면 이는 곧 인간 예측 능력의 약화를 의미하고, 이는 다시 예측 능력을 핵심적 정당성 근거로 삼는 근대적 과학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초래하거나 이른바 ‘신과학’의 등장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보화나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매일 낯선 문화, 낮선 사람들을 접촉하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 우리는 누구인지가 점점 헷갈리게 되기도 한다. 이른바 ‘정체성(identity)’의 문제에 대해 이제 더 이상 자명한 대답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효율성과 경쟁력 논리가 지배하면서 심한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매순간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도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 줄 가족 공동체나 지역 공동체는 빠른 속도로 해체되어 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마도 현대인의 가장 큰 불행은 ‘성장’과 ‘발전’의 역설적인 결과로 인해서 인간 자신조차 신뢰할 수 없게 되어 간다는 사실일 것이다. 심각한 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가 인류가 살아갈 터전으로 적합하지 못하게 되어 가고, 가공할 무기체계의 존재 때문에 ‘집단적 죽음’에 대한 공포와 함께 한순간에 인류가 원시시대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도 확산되고 있다.
‘복제 인간’이나 ‘대체 인간’의 출현 가능성에 대한 불안도 인간 자신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한 요인일 것이다. 그리고 인간 자체에 대한 이 같은 불신은 다시금 절대적 존재나 원리에 대한 인간적 의존을 강화하거나, 혹은 과거에는 알려지지 않은 인간의 놀라운 잠재력이나 그것의 결실로서의 “신 인간”에 대한 기대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바로 이 같은 일련의 변화들이 이른바 ‘탈세속화’, ‘신비적인 것의 추구’ 등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그리고 나아가 전 세계적인 종교 붐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를 포함한 주요 제도 종교들은 이미 기존 사회질서를 변혁하기보다 그에 안주, 타협하고 그로부터 제공되는 특권을 누리는 데 익숙해져 있어 사회 변화에 따른 종교적 혁신을 이루는 데 무관심과 무력증을 드러내고 있을 뿐 아니라, 조직의 관료화와 비대화로 인해 그 같은 상황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또 그 결과 주요 제도 종교들은 신자들에게 충분한 소속감을 제공하지도 못하고, 신자들의 종교적 욕구는 만족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냉담자와 교회 이탈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한국 가톨릭교회는 ‘세계의 재성화(再聖化)’라는 역사적 순풍에서 불구하고 외롭고 황폐한 섬으로 남게 될 것인가? 우리는 이런 절박한 의문을 품고 21세기의 문턱을 넘고 있다.
<강인철, 가톨릭 사회과학 연구 제 11집(1999년 9월)> |
'<가톨릭 관련> > ◆ 신 앙 관 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톨릭교회의 제사 논쟁 (0) | 2012.11.28 |
---|---|
가톨릭교회와 생명 윤리 (0) | 2012.11.27 |
21세기 한국 가톨릭교회의 과제(8) (0) | 2012.11.25 |
21세기 한국 가톨릭교회의 과제(7) (0) | 2012.11.24 |
21세기 한국 가톨릭교회의 과제(6) (0) | 2012.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