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21세기 한국 가톨릭교회의 과제(7)

by 파스칼바이런 2012. 11. 24.

 

 

5. 정보화와 지구화의 도전들

 

‘정보화(informatization)’는 “정보 유통량이 팽창함에 따라 이를 효율적으로 처리, 분배할 수 있는 기술이 고도화되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정보의 가치가 커지게 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배규한, 미래사회학, 114쪽.)

 

또 ‘정보사회’는 정보가 생산성 및 권력이 원천이 되는 사회이다. 따라서 정보사회는 핵심적인 정보가 사회 운영 원리의 중심을 구성하고, 단순한 물리적 강제력보다 정보의 효율적 활용을 통한 상징 구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조형제,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한완상 (편저), ‘한국사회학’ (서울: 민음사, 1996), 135-136쪽.)

 

한국의 정보화 수준은 분야별로 진전 속도가 서로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정보화의 기반 요소인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등의 정보 통신 기술과 정보통신산업 분야의 발전을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또한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국가 사회의 정보화 및 전산화 역시 사회 전 영역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하드웨어 분야에서 한국의 제조 기술과 품질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국제적인 수준에서 한국의 소프트웨어 개발 수준과 실적, 정보화 인력 수급 실태, 특허출원 건수와 기타 정보화 지표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의 구비 여부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정보화 수준이나 기술 수준은 아직도 선진국과는 커다란 격차가 있다고 한다. 한국전산원, 1994 국가 정보화 백서 (서울: 한국전산원, 1994), 10쪽.

 

1997년 현재에도 선진국과의 격차는 여전하지만, 정보화의 진전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97 국가 정보화 백서‘에 따르면, 1990년을 100으로 할 때 1988년에 70수준이던 정보화 지표는 1995년에는 무려 742로 늘어나, 1988년 이후 1995년까지 연평균 40.2%씩 성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주로 정부와 기업의 사무자동화, 무선호출기와 이동전화 등 이동 통신기기 이용, 인터넷 컴퓨터 통신 이용의 증가에 의한 것이다. ’한겨레신문‘ (1997/6/6).

 

어쨌든 오늘날 정보화는 우리의 삶의 환경을 급속도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그 여파는 사회구조와 일상생활 모두에 미치고 있다. 정보화로 인한 미래사회의 모습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의 상이한 전망들이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기계적인 일면적 관점보다는 딜레마의 형식으로, 전략적 선택의 문제로 제기할 때, 우리는 정보화와 관련된 문제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다.

 

이는 바로 정보사회의 쟁점들이 될 것이다. ① 정보의 상품적 성격이 강화되는 추세 속에서 ‘보편적 서비스’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② 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과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③ 정보 활용 능력의 차이는 정보 불평등을 확대할 것인가, 해소할 것인가? ④ 정치 체제상으로는 권위적 통제가 강화될 것인가, 민주적 참여가 확대될 것인가?

조형제,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133, 154-161쪽.

 

그러므로 ‘정보 민주화 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의 사회적 과제는 ① 사회 구성원들에게 보편적 서비스를 확대하고, ② 자유로운 정보 접근을 최대한 활용하되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적절히 보호하고, ③ 정보 활용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정보 불평등을 완화하고, ④ 정치 과정에 대한 민주적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될 것이다. (위의 글, 162쪽.)

 

따라서 교회의 대응은 정보화와 관련된 사회적 쟁점들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가운데, 정보사회에 대한 가톨릭의 윤리적 지침을 마련하는 것에서 우선적으로 개시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교회는 앞으로 ‘정보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정보화는 교회에도 다양한 변화의 압력과 도전들을 제기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문수, “정보사회의 윤리 문제와 신앙생활 양식,” ‘신학 사상’ 제23권 3호 (1995년 가을); “정보사회의 윤리적 쟁점에 관한 신학적 고찰,” 서강대학교 박사 학위논문 (1999), 192-202쪽.

 

교회 행정의 정보화, 방송 매체의 소유와 확대를 통한 초기적인 ‘전자교회’ 등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밖에 정보사회의 커다란 특징 가운데 하나가 정보의 대중화를 통해 탈중앙집중화를 촉진하는 것이므로, 중앙집권적인 권력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가톨릭교회는 분권화로의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정보화의 엄청난 ‘속도’ 역시 관료화의 정도가 심한 편인 가톨릭교회의 느린 변화에 도전으로 작용할 것이다. 교회는 ‘가상 공동체’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 관심사별, 기능별의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 과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지구화(globalization) 또한 현대 세계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 변동 가운데 하나이다. 지구화는 “지역적 사건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에 의해 꼴 지워지는 방식으로 원거리의 지역들(localities)을 연계시키는, 범세계적인 사회관계의 강화(intensification)”를 가리킨다.

Anthony Giddens, The Consequences of Modernity (Stanford, Cali.: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0), p. 64.

 

우리의 세계 인식의 지구화에 주목할 경우, 지구화는 “지구 전체를 가로질러 영역들 및 지역들의 사회활동의 매우 높은 정도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인식이라는 면에서, 그리고 지구 자체와 관련된 의식의 성장이라는 면에서, 세계가 하나의 장소가 되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Roland Robertson, "The Sacred and the World System," P. E. Hammond (ed.), The Sacred in a Secular Ag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5), p. 348.

 

한편 경제, 정치, 문화, 종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는 ‘지구화의 양면성’에 주목할 경우, 지구화는 “지배와 불균형, 그에 대한 저항을 낳기도 하면서, 세계를 확장시키고 압축시켜 나가는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과정”이 될 것이다. 지구화는 모든 경계와 장벽을 허물고 ‘단일한 시장, 정치체제, 문화’를 산출하는 일방적인 동질화 과정인 것만은 아니다. 지구화는 다른 측면들, 즉 이질화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측면들을 갖고 있다.

 

지구화는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영역에서 지배와 위계적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재생산함으로써 내적인 불균형성과 모순을 증가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구화의 진전에 따라 심각하게 불평등한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지구화는 그것이 낳는 대대적인 불평등과 좌절에 대항하는 다양한 저항의 움직임을 동시적으로 조장하기도 한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문명’, 나종일, 백영경 역 (서울: 창작과비평사, 1993).

 

또한 지구화에 대한 각 지역, 국가, 사회들의 반응이 똑같은 것도 아니다. 지구화 자체는 독자적인 동력에 의해 구조적인 수준에서 계속되더라도, 이에 대한 각 사회, 사회집단들의 선택은 상이하게 나타날 것이다. 이 같은 다양한 반응에 의해 지구화의 구체적 ‘형태’는 결정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Roland Robertson, "Mapping the Global Condition: Globalization as the Central Conception," Mike Featherstone (ed.), Global Culture: Nationalism, Globalization and Modernity (London: SAGE Publications, 1990), p. 27.

 

따라서 지구화는 ‘보편화(universalization)’의 경향뿐 아니라, ‘국지화 혹은 지방화(localization)’의 경향 또한 발전시킨다. 심지어 지구화는 다양한 반(反)지구화 혹은 탈(脫)지구화를 추구하는 다양한 반응들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그 결과 지구화는 동질화-이질화, 통합-해체 등의 이분법적 도식으로는 포착되기 어려운 다양성과 모순, 복합성을 산출한다.

Mike Featherstone (ed.), Global Culture: Nationalism, Globalization and Modernity (London: SAGE Publications, 1990, p. 2.

 

지구화가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에 미치고 있거나 앞으로 미치게 될 영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변화들을 예견할 수 있다. 첫째, 세속화-탈세속화, 종교의 탈정치화-재정치화의 동시적 진행, 둘째, 전지구적 종교운동의 대두, 셋째, 비그리스도교적 종교들의 세계화와 남반구-북반구 간 그리스도교 상황의 역전, 넷째, 종교와 민(종)족주의와의 결합 및 종교간 갈등의 국지적 심화 등이 그것이다.

강인철, “지구화와 종교 변동의 전망,” ‘신학사상’ 제23권 1호 (1995년 봄), 83-91쪽.

 

지구화, 지방화와 더불어 세계 질서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도 전반적으로 증대되는 가운데, 한국 가톨릭교회에 대해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제기될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의 사목은 한국이라는 ‘사회’, 보다 정확히는 ‘민족사회’를 대상으로 해 왔으며, 지구화로 지칭되는 최근의 변화들은 이 같은 문제 상황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볼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면에서 기존의 사목 방식에 중대한 도전으로 작용할 것이다.

 

첫째, 지역주의의 강화에 ‘지역적으로’ 대처하는 한편, 세계 전체 수준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세계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가 제기됨에 따라 그리스도교 교회는 지역 교회들 간의 유기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으로, 다양한 쟁점들, 유동적인 문제의 범위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 유형을 모색해야 한다.

 

둘째, 부국과 빈국 간, 부국과 빈국 내의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심화됨에 따라 전 세계적 수준에서 경제 문제의 완화 내지 해결을 위해 초(超)지역 교회적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커진다.

 

셋째, 탈냉전에도 불구하고 세계 체제의 주변부에서 국지적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 그리고 이 분쟁이 급속도로 광역화될 가능성이 더욱 커짐에 따라, 세계적 범위에서 전쟁의 위협을 줄이고 이미 진행 중인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도모하며, 평화를 국제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요구된다.

 

넷째, 커뮤니케이션과 수송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된 위기의식이 널리 확산될 것이며, 많은 주변부지역에서 전통적 문화와 가치들을 복권시키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어, 지역 교회들의 토착 문화와의 관계 설정 문제, 타종교들과의 건전한 관계를 정립하는 과제가 새로운 차원에서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다.

 

다섯째, 환경 위기는 오늘날의 경제, 정치군사적 문제, 문화적 생활양식과 사고방식 모두가 응축된 문제이므로, ‘지속 가능한 지구 사회(sustainable global society)’를 만드는 데 교회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에이즈, 마약, 이민, 난민 문제 등 ‘국제적인’ 공동 노력을 요구하는 쟁점들도 대응 여하에 따라 교회의 장래를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