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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21세기 한국 가톨릭교회의 과제(5)

by 파스칼바이런 2012. 11. 22.

 

 

1993년은 김영삼 정부가 이른바 ‘세계화’ 담론을 적극적으로 퍼뜨리면서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태도를 조장하는 한편, 경제의 대외 개방을 서두르기 시작한 때였다. 중산층 규모의 객관적인 증가와 중산층 의식의 주관적 확산이 세계화 및 신자유주의 담론에 설득력을 실어 주었지만, 이것이 다시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면서 장기적으로는 중산층의 존립기반마저 약화시키는 역설이 현실화된 것이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한국 사회가 1997년 말부터 IMF 관리 체제로 편입되면서 시장 개방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더욱 가속화되고, 그에 따라 대규모 실업 사태와 함께 부유층-빈곤층 사이의 사회적 양극화가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고실업 상황의 장기화와 고용 구조의 불안정성 심화 1998년 7월 현재 임금 근로자의 52.9%를 차지했던 상용직의 비율은 1년 후인 1999년 7월에는 47.8%로 급락한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임시직은 32.9%에서 33.3%으로, 일용직은 14.2%에서 18.9%로 증가하여, 불안정한 취업 형태가 전체의 과반수를 점하는 상황으로 역전되었다. (‘한겨레신문’ (1999/9/20).

 

모두가 동시적으로 진행되면서, 신(新)빈곤 현상과 사회적 양극화는 하나의 구조적 추세로 굳어지고 있다. 소비성향의 강화와 소비 주의의 확산, 신자유주의적 의식의 증가는 사회적 기대 수준의 상승을 초래하는 반면, 그와 동시에 진행되는 부유층의 과시적 소비 풍조, 빈부 격차의 심화는 사회 전반에서 사회적 좌절과 상대적 박탈감의 증가를 낳게 된다. 또 상대적 박탈감의 증가는 연쇄적으로 사회적 불안을 심화시킨다. 교회는 이 같은 사태를 예상하고, 건전한 소비자 윤리의 정립 및 확산, 부유층의 과소비 풍조 비판, 불균형한 소득분배 구조의 개선 등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한국 교회는 이 기회에 사회 발전에 관한 그리스도교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효율과 경쟁력’을 숭배하는 시장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삶의 질, 연대, 공존’을 지향하는 사회 발전 모델은 어떤 것이 될 것인가? 전체 교회 차원에서 이 같은 고민을 심화시키고 해답을 모색하려는 노력을 조직화해야 한다. (강인철, “IMF 구조조정과 한국 가톨릭교회의 대응 방안: 평가와 전망,” ‘가톨릭사회과학연구’ 제10집 (1999년 1월), 157쪽.)

 

또한 현재의 사회, 경제 상황을 교회 내적인 과정과 연관지어 보면, 특히 빈곤층 및 여성에 대한 배려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신자 구성의 중산층화와 그에 따른 빈민층의 소외 문제이다. 천주교 신자들은 압도적으로 중산층과 상류층 인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종교 집단들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다.

 

우선 통계청에서 발간한 1993년도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른 전 국민의 학력 분포와 천주교 신자 집단의 그것을 비교해 보면, 양 집단간의 현저한 격차가 드러난다. 총인구와 가톨릭 인구 전체를 비교해 볼 때, 가톨릭 신자의 경우 중졸 이하의 저학력층(26.1%)은 총인구(52.6%)에 비해 절반 이하인 반면, 대졸 이상의 고학력층은 거의 두 배에 달한다. (통계청, ‘한국의 사회지표’ (서울: 통계청, 1993); 가톨릭 신앙생활 연구소, ‘한국천주교 평신도의 신앙생활 실태’ (서울: 가톨릭 신앙생활 연구소, 1994) 참조.

 

직업 분포 면에서 볼 때,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가톨릭 인구의 직업 분포는 총인구의 그것에 비해 생산직 종사자의 비중은 3분의 1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인 반면, 사무 기술 및 전문 관리직의 비중은 두 배 이상이다. 농어업 종사자의 비중 역시 현저하게 적다. 천주교 신자의 경우 중산층으로의 주관적 계층 귀속 의식도 총인구에 비해 현저히 높다.

 

총인구의 경우 스스로 상류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체의 1.2%, 중류층이 49.8%, 하류층이 48.1%인 반면, 천주교 신자 중 상류층 귀속 의식을 가진 사람은 2.4%, 중류층이 65.0%, 하류층이 32.5%로 나타난다. (가톨릭 정의 평화 연구소, ‘한국가톨릭교회와 소외층, 그리고 사회운동’ (광주: 빛고을출판사, 1990), 201쪽.)

 

1992년에 서울대 인구 및 발전 문제 연구소에서 실시한 전국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천주교 신자는 객관적 계급 지위 면에서 76.1%가 중산층 이상인 데 비해, 개신교 신자는 66.6%, 불교 신자는 50.7%에 불과하다. (서우석, “중산층 대형 교회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93), 27쪽. )

 

그러므로 “가난한 자에 대한 교회의 우선적 선택에 발맞춰, 교회 안과 밖 모두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 활동을 특별히 집중”시키지 않는다면, 또한 본당의 의사 결정구조에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약자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우리 교회는 조만간 사회적 엘리트층만으로 구성된 ‘계급 교회’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교회는 한국 사회 안에서도 ‘가난한 이들의 보호자요 대변자’로서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구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급격하게 심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그 와중에 중산층이 해체되고 있다면, 중산층의 생활 규범 및 체험이 더 이상 우리 사회의 표준적 수렴 지대로서 기능하지 못하면서 일상적 체험 자체의 계층적 양극화가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여 중산층의 생활 체험에 부합하는 영성이 지배하던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영성의 계층적 양극화(내지 복잡화)’라는 현상이 점차 두드러지게 될 것이다. 가난한 이들과 부유한 이들의 영성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그리고 이런 차이의 파괴적 가능성은 무엇인지를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한편 이와는 약간 다른 각도에서 ‘교회의 중산층화’ 문제를 살펴볼 수도 있다. 가톨릭 신자의 계층적 구성이 중간층 및 상류층 중심으로 변모해 간다는 의미에서의 ‘교회의 중산층화’는 고학력의 중산층 평신자들이 교회의 부의 원천으로서 교회의 신축을 비롯해 교육, 복지, 언론, 의료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방대한 투자를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들의 민주화 지지 성향과 지적, 사회적 영향력으로 인해 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을 높은 수준에서 유지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한국 교회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도 강하다.

 

그러나 교회 당국이 사회 민주화나 교회 쇄신에 대한 중산층 평신자들의 바램을 외면하고 이들의 영향력과 부에 기초하여 제도적-외형적 확장을 지향하는 ‘내부적 투자’에만 골몰할 경우, 장기적으로 이들은 교회의 바람직한 운영 방향을 둘러싸고 강력한 비판 세력으로 등장하거나 기존 교회 지도층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부분적으로 철회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교회의 중산층화는 교회 내부의 갈등을 점진적으로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또 다른 내부 문제는 경제활동 참가율 및 취업인구의 증가를 여성이 주도하고 있고, 기술계 인력과 사무직 부문을 중심으로 노동력의 여성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여성의 취업 유형은 결혼 후 첫아기의 출산을 전후하여 결혼 전부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계획하는 자녀수만큼의 출산을 완료할 때까지 재취업을 보류하다가 계획하는 수의 출산을 완료한 후 선택적으로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는 패턴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취업동기는 금전적 목적에 집중되어 있다. 1994년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재생산시기에 속한 여성의 경우 단기간에 걸쳐 이러한 시기를 완료하고 취업의 기회를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계획된 수의 자녀의 출산을 완료한 가정의 경우, 미취학 연령 아동의 유무에 관계없이 부인의 교육 수준 및 남편의 직업적 지위가 높을수록 취업을 삼가는 경향이 나타나는 반면, 사별, 이혼, 별거 상태에 있는 결손 가정의 부인의 경우 부인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경제활동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시부모와 동거하는 기혼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취업하는 비율이 높은데, 이는 시부모와 며느리의 관계가 일방적인 세대간의 봉양이라는 규범적인 관계라기보다 시부모 부양과 자녀 양육을 위한 가사노동의 요구 사이의 교환관계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현송, “가족의 생애 주기와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한국 사회 제30집 (1996년 겨울).

 

앞으로 교회 내의 여성 신자들의 경제활동 참가가 증가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전의 여성 사목은 사실상 ‘전업 가정주부’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어 직장 여성들의 입지를 거의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의 추세는 ‘신자 구성의 여성 중심성’이 심화되고 있다. 신자 구성의 여성화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증가 현상이 동시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새로 취업한 여성의 소극화 내지 ‘교회 이탈(church dropout)’이 신자 구성의 여성화와 병존할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따라서 전업 주부 뿐 아니라 경제활동을 원하거나 준비하는 여성 신자들을 돕고, 취업 이후에도 신앙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탁아, 육아 부문에서 교회에 대한 역할 기대가 높아지는 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직장에서의 노동과 가사노동을 병행해야 하는 취업 주부들의 이중 노동의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도록 남성들에 대한 교육과 계몽 활동을 전개하여 취업 여성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는 일 등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