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와 윤리 원칙 8.>
이미 소개한 대로 미국 센트루이스 대학에 본부를 두고 있는 가톨릭 보건 협회에서 주도적 활동을 하고 있는 도미니꼬회의 저자들은 자신들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생명윤리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1. 바르고 확실한 양심 형성
생명윤리상의 판단을 하려는 사람에게 전제되는 것은 항상 양심 판단을 바르고 정확히 하려는 마음가짐이다. 그는 먼저 주어진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그 상황과 관련된 윤리 규범들(국법, 교회법, 자연도덕율....)을 파악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그는 바르고 확실한 양심 판단을 하고 그 판단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즉, 어느 상황에서 바르고 확실한 양심이 형성되었으나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금전적, 학문적 이기주의에 따라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자신의 양심적 판단의 결과에는 전적으로 책임지려는 성숙성 또는 요구된다.
2. 사전 동의
자신의 건강에 대한 기본적 필요와 책임은 각 개별 인격에게 있으므로 어떠한 육체적, 심리적 실험 및 치료 행위도 환자의 자유스런 동의 없이 실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환자가 동의할 능력이 없는 상태일 경우 그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가족 또는 법적 후견인은 가능한 한 환자의 원의를 합리적으로 추정하여 대신 동의를 할 수 있다.
이 원칙은 특히 의학 윤리 상의 판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료진과 환자와의 관계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며 의사 결정에 있어 환자 측의 자유와 의지, 자율성, 양심 형성, 판단을 도와주는 일이며 그로부터 의료진과 환자 및 그 가족들 간의 신뢰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환자 측이 자유롭고도 책임 있는 동의를 하도록 하자면 의료진은 치료(또는 실험)행위의 내용, 그로부터 예상되는 유익, 부수적인 위험, 또 다른 치료 방법 등에 대하여 참으로 친절하고 자세한 고지를 해 주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환자 측의 지식 정도, 이해도를 고려해야 한다. 의료진은 치료 방법에 대한 자신들의 판단에 대해 설득은 할 수 있되 할 수 있는 한 자유스런 동의를 할 수 있도록 위협, 억압, 강제, 유인 등은 당연히 피해야 한다. 또한 환자 측이 시간적 압박감을 느끼지 않도록 가능한 충분한 시간을 주도록 하며 나아가서 환자가 감정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동의를 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
물론 이 같은 친절과 배려는 쉽지 않다. 원칙과 현실의 괴리를 자주 체험하기 때문이다(의료진의 과로, 의료 사고, 브로커의 개입, 소송...).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사적 전문직에 종사하는 의료인들은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끊임없는 동정심과 사랑으로 이 원칙을 완전히 지키도록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사랑과 동정 없이 남의 고통에 익숙해져서는 이 원칙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이 같은 내용의 사전 동의는 많은 유익을 가져다준다. 의료진의 판단은 의학적 효과 및 경제적 이익의 발생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기 쉬우므로 환자의 다양한 상황(인간관계, 경제, 신분, 가족 상황)을 고려하지 못할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유스런 사전 동의를 얻기 위해 위와 같은 배려를 해줄 때 환자와 그 가족 들이 자신들의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 판단을 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환자들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의료진(일부!)과 이익 단체(의료기구회사, 제약회사, 병원....)간의 결탁으로부터 비롯되는 불이익(의약품 실험의 대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또한 이런 공적인 과정을 거칠 때 치료와 관련된 모든 사안들이 공개리에 진행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근거는 개인의 인격 존중에 있다. 자신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결정권은 존중하고 자율성을 제고해 주는 일은 인격 주의적 생명윤리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3. 윤리적 분별
생명윤리상의 결정에 있어서도 참으로 분별력 있는 양심의 결정을 해야 하되 그 근본적 기준은 하느님의 뜻과 인격의 존엄성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두 가지 기준에 본질적으로 반대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결정은 무엇이든 피해야 한다. 또한 이 두 가지 기준은 실천 할 수 없게 만드는 동기와 환경까지 피해야 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이 두 가지를 실천할 수 있는 가능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면 환자에게 위험한 수술을 권해야 하는 가톨릭 의료진은 먼저 자신에게 맡겨진 환자에 대한 하느님의 뜻과 인격적 존엄성을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환자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것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뜻이고 그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므로 그의 이 기본권에 반대될 수 있는 실험적 시술에 대한 유혹은 즉시 물리쳐야 할 뿐 아니라 실효성 없는 처치 및 과도한 진료는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의사는 자신의 판단이 경제적 이유, 명예의 제고 등 이기적 동기나 상황에서 이루어지지 않는지 항상 반성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그는 환자를 참으로 존중하려는 마음과 함께 가장 유익한 시술을 베풀게 되고 따라서 자신과 환자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4. 이중 결과의 원칙
우리는 지난 연재 23에서 자궁암에 걸린 임산부의 예를 보았다. 이 경우 산모를 살리기 위하여 자궁을 적출한다면 그 한 가지 행위를 통하여 두 가지 (이중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하나는 좋은 결과로서 산모를 살리는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나쁜 결과로서 산모를 살리는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나쁜 결과로서 자궁 안의 태아가 죽는 것이다. 이중 결과의 원칙은 이처럼 선한 결과를 의도하는 한 가지 행위를 통하여 악한 결과도 동시에 일어날 것이 예상될 때 적용하는 윤리 원칙이다.
우리는 살다 보면 이러한 가치의 충돌 때문에 고민하는 때가 자주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선한 결과를 의도하여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하나 부수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나쁜 결과 때문에 그 행동을 해야 할지 망설일 때는 다음 몇 가지 조건이 채워질 경우 그 행위를 해도 좋다.
첫째, 직접적으로 의도한 목표가 본질적으로 비윤리적이지 않아야 하고 하려는 행위 그 자체는 좋거나 윤리적으로 중성적이어야 한다(시도하려는 행위 자체가 벌써 악한 행위라면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나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둘째, 행위자의 의도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나쁜 결과는 가능한 한 피하려는 뜻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쁜 결과도 동시에 일어날 것이 간접적으로 예상되는 것은 괜찮다.
셋째, 의도한 좋은 결과는 예상되는 나쁜 결과보다 더 크게나 같아야 한다. (예상되는 나쁜 결과가 선보다 더 크면 안 된다).
넷째, 의도한 좋은 결과는 나쁜 결과와 동시에 일어나거나 적어도 즉각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즉 나쁜 결과 후에 좋은 결과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좋은 결과가 나쁜 결과 덕분에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이중 결과의 원칙을 적용할 때 의사는 태아가 죽는 것이 예상되더라도 암에 걸린 자궁을 적출 해내는 수술을 할 수 있다. 그는 산모를 살리는 좋은 결과를 직접적으로 의도했고 자궁 안에 태아가 죽는 것은 죽이려는 의도 없이 간접적으로 예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연재 26에서 제시한 예(소프라노 음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소년을 거세하던 관행)의 경우는 위와 다르다.
거세 행위 이후 일어나는 여러 가지 비정상적 결과 중 하나가 소프라노 음성의 보존이다. 소프라노 음성 그 자체가 곧 좋은 합창은 아니다. 그것을 이용하여 많은 연습을 한 다음 그 결과 비로소 좋은 음악의 창조에 기여할 수 있고 나아가 많아서도 합창단에 남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결과는 거세 행위의 나쁜 결과(남성과 지정상적 목소리)를 통하여 한참 후에 (동시가 아니라)일어난 것이다.
거세 행위는 좋은 합창과 생계유지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비정상적 목소리의 창출이라는 나쁜 수단을 통하여 얻어내기 위한 행위이다. 따라서 과거의 교회 합창단에서 행했던 거세 행위는 본인의 동의가 있었다 해도 악한 행위임에 틀림없다(악한 행위를 할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당사자가 동의를 하는 것도 죄악이다).
그러나 암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를 거세했다고 하면 그러한 거세 행위는 그것 자체로 치료 행위요 그 치료 행위와 동시에 치유라는 좋은 결과가 함께 일어나기 시작한다. 따라서 그 거세 행위는 윤리적으로 가능한 것이다. 위 두 거세 행위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치료 행위로서의 거세는 치유라는 선만 의도되었고 거세 행위의 비정상적 결과들은 오직 간접적으로 허용만 되었다.
또한 이 경우는 인격 전체의 선(치유)을 위하여 신체의 일부가 손상당할 수 있다는 전체성의 원칙에도 부합되고 있다. 그러나 첫 번째 경우 행위자는 거세라는 악을 비록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의도했다고 하더라도 간접적으로 허용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의도한 것이다. 이 이중 결과의 원칙은 한 가지 행위 안에 가치와 비가치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거나 그 두 가지 결과를 동시에 빚어 낼 것이 예상될 때의 윤리적 해결책 중 하나이다. 어떤 이들은 보다 작은 악이 포함된 행위는 보다 큰 선을 실현할 경우 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위는 작으나마 악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작은 비가치가 포함되어 있는 선한 행위} 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역시 이러한 이론을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그것을 거부하면 윤리적 안전 주의, 윤리적 결벽, 엄격 주의에 빠져서 비록 나쁜 결과를 낼 수 있는 선한 행위를 거의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며 따라서 의무의 불이행, 궐함의 죄, 또는 책임의 거부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성 토마스도 말하지 않았다가 {너무 문지르면 피가 나는 법} 이라고 본질적으로 비윤리적인 행위는 인간 행위 전체의 기본적 방향을 악하게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아 그것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해 두고 하는 말이다.
이중 결과의 원칙은 이와 같이 윤리적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로 19세기의 윤리학자들이 정립한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살펴볼 때 이 원칙에는 문제점 또한 없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해 둔다.
5. 정당한 협조의 원칙
우리는 지난 연재 23에서 스스로는 낙태 수술에 동의하지 않으나 근무하는 병원에서 수술 팀의 일원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의사의 예를 들어보았다. 이 의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이러한 경우 우리는 정당한 협조의 원칙을 가지고 양심의 판단을 하고 그 판단에 따르는 행위를 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타인의 행위가 비윤리적일 때 그 행위들에 직접 협조하거나 그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다른 일에 협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악에의 협조는 우선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본질적 협조로서의 악행에 직접 참여하거나 악행을 권고, 보조해 주며 상담을 해주는 일이다. 즉 의도적으로 나쁜 목적을 가지고 협조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질료적 협조로서 나쁜 의도는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악행에 협조하는 것이다.
질료적 협조는 그 양상에 따라 직접적인 질료적 협조와 간접적인 질료적 협조로 나눌 수 있다. 직접적인 질료적 협조는 본질적인 협조와 거의 비슷한 정도의 협조이다. 즉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하는 수없이, 용기 있게 거부하지 못하고) 직접적으로 협조하는 것으로서 그것과 비슷하다. 위에서 말한 의사의 경우는 여기에 해당한다. 개인적으로 낙태에 동의하지 않으나 수술 팀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본질적인 악행 협조와 비슷한 것이다.
간접적으로 질료적 협조 역시 그것이 악에의 협조인 이상 최대한 피해야 하나 여기에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협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건하에서는 정당할 뿐 아니라 가끔은 필수적으로 해야만 할 경우도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협조마저 하지 않을 경우 더 큰 선을 실천하지 못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지난주 연재 참조). 그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협조가 간접적일 수록 정당화되기 쉽다. 예를 들면 모르핀을 생산하는 사람은 누가 그것을 마약으로 이용하더라도 그에 대한 책임은 없다. 왜냐하면 그의 의도를 진통등 의학적 사용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르핀을 판매하는 이는 오용, 남용에 더욱 가까이 협조하기 쉬우므로 생산 근로자 보다 더욱 많은 주의를 기울여서 법규정을 지켜야 한다. 구입자가 오용할 경우 판매자가 윤리적, 법적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둘째, 악에 협조함으로써 얻게 된 그 악의 정도를 능가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낙태 수술 전문 병원에서 청소를 하는 부인이 그 직업 외에 다른 직업을 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자신과 가족의 생계가 그 자신에게 달려 있을 경우, 그 부인 스스로는 낙태에 동의 하지 않고 하는 수 없이(직업상)낙태 수술 뒤처리를 한다면 그 정도의 협조는 인정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협조가 본질적인 협조가 아닐 뿐 아니라 그녀의 질료적 협조는 간접적 협조이며, 실직은 자신과 가족들에게 중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셋째, 공동체와 관련된 일에 있어서 가장 멀고도 간접적인 질료적 협조는 해야만 하는 경우들이 있다. 따라서 그것을 하지 않으면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죄를 범하게 된다. 선행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한 가지 행동이 보다 작은 악을 빚는 결과도 만들어 내지만 더 크고 좋은 목적으로 수행될 때 그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이중 결과의 원칙과 위 정당한 협조의 원칙은 서로 연관됨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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