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생명윤리와 윤리원칙(4)

by 파스칼바이런 2012. 12. 7.

 

 

 

 

<생명윤리와 윤리 원칙 5.>

 

15년 전,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전을 처음 보았을 때 그 규모의 웅장함은 물론이고 성당 기둥과 벽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보고 정신을 빼앗길 지경이었다.

 

전장 2백30m에다 6만 명이 일시에 서 있을 수 있는 넓이라니 거짓말 같다.

 

해마다 10월이면 이 성당에서 교황청립의 여러 대학들을 위한 개강 미사가 교황님 주례로 열린다. 대성당의 위용과 더불어 유학중 교황님 미사는 처음이라 시종 설레는 마음으로 참례했다.

 

합창단의 멋진 화음에 그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분명 고음의 아름다운 소프라노 소리는 들리는데 여성은 아무도 없다. 변성기 이전의 어린 소년들이 여성들 보다 더욱 고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연령도, 키도, 들쭉날쭉, 할아버지 아저씨, 소년들로 이루어진 남성 합창단이 멋진 혼성 사성부 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남성들만의 합창단을 유지하기 위해 어린 소년들의 소프라노 목소리를 오래도록 보존시키려 변성기가 오기 전 일찌감치 그들을 거세시켰다

 

고 한다. 교회의 이러한 관행을 우리는 윤리적으로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소년 본인은 물론 가족의 동의를 받았다면?

 

과거의 전통적 윤리학(윤리신학, 윤리 철학)에서는 여러 종류의 윤리 원칙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윤리적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들, 두 가지 이상 가치들의 경쟁 때문에 확실한 윤리적 판단을 하기 힘든 경우에는 흔히 윤리 원칙들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공식들을 이용하는 식이었다. 그것은 각 개별 경우의 윤리 문제의 법적 해결에 윤리학적 관심을 쏟았던 당시의 경향(결의론)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칙들에는 이중 결과의 원칙, 전체성의 원칙, 예외의 원칙, 법문관해의 원칙, 작은 악의 원칙, 더 큰 선의 원칙 등이 있었고 이 원칙들에 준하여 여러 가지 구분 원칙들이 성행하였으니 예를 들면 직접 - 간접, 본의적 - 비본의적, 능동적 - 수동적, 유책 - 무책, 통상  -  특수, 유익 - 무익 등의 구분이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윤리적으로 합법적이냐 비합법적이냐의 구분을 능사로 삼았던 결의론적 사고는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 대신 참된 그리스도적 이상에 입각한 윤리적  삶의 전망과 그 소개에 중점을 두는 윤리신학의 경향이 등장함으로써 각종 윤리 원칙들은 그 중요성을 차츰 잃어 가서 오늘날 어떤 윤리신학 교과서도 그것들을 해설하고 그 적용 사례들을 소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생명 윤리의 학문적인 등장과 함께 윤리 원칙들은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되었다. 생명윤리를 생명 존중에 관한 정신문화적 계몽운동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에 반대하는 여러 생명윤리 연구소들은 생명윤리의 학문적 정립을 위하여 윤리 원칙들에 새로운 눈길을 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위와 같은 전통적인 윤리신학의 원칙들에 대한 고답적 답습에 머무른 것은 물론 아니다.

 

만인 공유의 이성에 입각한 세계 윤리로서의 생명윤리, 현대화 같은 종교적, 사상적 다원 사회에서 만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생명윤리의 학문적 기초에 고심하던 이들은 과거의 대표적 의학 윤리 원칙중 하나인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부터 시작하여 현대의 각종 의학 윤리 헌장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학 윤리의 원칙들을 되새겨 보면서, 생명윤리는 오늘의 새로운 생명윤리의 문제들을 전통적 윤리 원칙들에 적용하여 학문적 기초를 구축하는 작업이 아니라 생명윤리의 대상, 영역에 이르기 까지 전혀 새로운 해석에 기초한 원칙들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생명윤리와 윤리 원칙 6.>

 

윤리 원칙들을 기초로 하여 생명윤리의 학문적 체계를 정립하려던 이들 중 어떤 이들은 윤리적 사고의 4단계를 설정하여 자기네 생명윤리의 학문적 체계로 삼았다. 즉 한 개인과 단체의 구체적인 윤리적 판단과 그에 따른 행동은 그전 단계인 윤리 원칙에 준하여 이루어지며,  윤리 원칙들이 실질적으로 구체화 된 것이며, 이 원칙들은 첫 단계인 두 가지 윤리 이론, 즉 목적주의와 허무주의 중 하나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환자와 보호자에게 병세를 솔직히 말해 주어 그들의 자발적 협조와 동의를 구하는 의료진의 구체적인 행동은 환자에게 진실을 말하고 정직과 신의를 지키라는 윤리 규칙에 준한 행동이며, 이 규칙은 사전 동의  및  자율성의 보장이라는 보다 구체화이며, 이 윤리 원칙은 또한 절대 가치(예: 자유, 진실 등)의 의무적 준수를 강조하는 의무 주의 이론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체계에 근거하여 그들은 생명 의료 윤리의 원칙들을 자율성의 원칙, 무해성의 원칙, 선행의 원칙 및 정의의 원칙이라는 4개의 기본 원칙으로 나누고 그 안에 몇 가지 구체적 원칙과 규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사전 동의(고지된 승낙)의 원칙을 자율성 원칙의 가장 중대한 표현으로 보아 개인 자율성의 제고와 관련된 사전 동의의 기능과 그 정당성을 다양하게 밝히고 있다. 무해성의 원칙을 통해서 그들은 고의적 위해를 가하지 말 것은 물론 위해나 악을 예방하는 그 기능을 설명하면서 이중효과의 원칙(*후에 따로 설명 될 것임)을 여기에 포함, 설명하고 있다. 선행의 원칙은 친절, 사랑, 자비의 개념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의무적인 성격의 원칙으로 소개된다. 경비와 유익의 문제와 의료진에 의한 선의 개입문제를 자율성 원리와 관련 지워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정의의 원칙이 설명되면서 그것을 주로 분배정의의 틀안에서 고려하면서  주로 의료분배문제를 다룬다. 그들은 위4가지 원칙 외에 가장 중요한 의학윤리의 주제 중 하나인 의료인과 환자와의 관계를 다루면서 그 안에서 필요한 정직, 신의, 충실의 윤리원칙들을 설명하고 있다.

 

또 다른 저자는 윤리원칙들을 자신의 인격주의에 기초한 4개의 원칙으로 뭉뚱그려 표현하고 있다 : 생명의 근본 가치, 인간의 자유와 책임, 전체성의 원칙, 인간의 사회성과 보조성의 원칙이 그것이다. 그는 생명의 근본 가치에 언급하면서 인간의 육체적 생명은 인격과 분리된  실재가 아니라 인격 자체의 기본적 가치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기본 가치보다 더 상위의 가치는 인격의 전체적이고도 영적인 선이므로 이 선이 육체적 생명의 희생을 동반해야만 실현될 경우에는 본인의 자유로운 결단과  봉헌으로 그 육체적 생명이 희생될 수 있음을 말한다. 육체적 생명은 최고 가치 중 하나이나 그것이 절대 가치는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육체적 생명보다 더 큰 가치들, 순교, 이웃사랑 등을 위해서는 그것이 희생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원칙을 설명하는 그는 생명 윤리의 범위를 인간의 생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온 식물적, 동물적 생명에로 확대시키고 있다. 이러한 생명들도 그 고유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우주 안의 다양한 생명들의 조화가 인간의 건강과 생존에 연관되어 있는 이상 이 생명들의 기본 가치도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4가지 원칙들 중 인간의 사회성과 보조성의 원칙은 가톨릭 사회 교리에서 발전된 개념으로서 오늘날 의료의 사회화, 법제화, 정치화, 생활화의 경향과 더불어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그는 모든 생명윤리의 원칙들을 위와 같이 4개의 원칙들로 단순화시켜 소개하고 있으나 그의 생명윤리의 기본 구조는 전통적 의학 윤리에서 벗어나 생명윤리에로의 이행에 있으므로 오히려 그 단순한 형태 속에서 더욱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지난주 연재에서 가톨릭 윤리신학이 그 오랜 전통과 함께 여러 가지 윤리원칙들을 발전시켜 왔음을 밝혔다. 그러나 우리와는 다른 시대와 다른 정황의 산물인 이러한 원칙들은 오늘의 다원 사회에서 생명윤리의 등장과 더불어 그 전통적인 개념이 많은 경우 수정되고 새로운 적용 과정을 거쳐야 하며 나아가서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을 위한 광범위한 생명윤리의 원칙들로 발전되어야 한다.

 

 

<생명윤리와 윤리 원칙 7.>

 

우리의 생명윤리는 인격 주의적 생명윤리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윤리는 [공동체 안에서의 개별 인격]을 중심으로 한 윤리 원칙들로 그 기초를 삼으며 따라서 이러한 윤리 원칙들에 근거하여 구체적인 윤리적 결정을 한다. 우리의 윤리 원칙들은 형이상학적인 공리에서  출발한 추상의 가치 선언이 짜 맞춘 선험적 규칙들의 나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가치 체계를 무시한 일과성 상황 해결의 원리들이어서는 더욱 안 된다.

 

우리의 윤리 원칙들은 그 자체가 [인간을 중심으로 한 철학과 신학] 이라는 더욱 근본적인 바탕 위에 기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윤리 원칙에 입각한 접근을 통하여 윤리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기술적 방법이 나올 수는 있다. 또한 구체적인 윤리적 상황을 지혜로이 분석하는데 이 윤리 원칙들이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형이상학적이고도 신학적인 기초가 부족할 때 그것은 쉽게 자기모순에 빠지는 맹목적인 기술주의로 전락할 수 있으며, 이미 배척된 결의론에 또다시 안주하는 결과를 빚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채택하는 생명윤리 원칙의 체계는 우리의 그리스도교적 인격주의를 기초로 한, 인격 중심의 필요한 체험들이 일반화된 것이다. 우리는 그 예를 도미니꼬회의 저자들에게서 찾아본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격주의를 표현하는 윤리원칙들을 대신덕(신덕, 망덕, 애덕)의 틀안에서 분류, 열거한다. 믿음, 희망, 사랑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행위의 원천으로 소개하는 바울로의 가르침(1고린 13)에 따라서 그들은 인간의 가장 깊숙한 인간적인 필요와, 세 위격의 공동체(삼위일체)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의 공동체적 삶의 필요는 바로 이 믿음, 희망, 사랑에서부터 충족된다고 말한다. 물론 비 그리스도인들은 이 대신덕들의 그리스도 중심주의적 의미는 모르더라도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매우 중요한 인간적 가치들임을 인정한다고 하면서, 생명윤리의 원칙들을 그 안에 분류하여 그 원칙들의 원천과 최종 지향이 믿음, 희망, 사랑임을 나타내고자 하며, 또한 그것들이 생활상의 실재가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먼저 이들은 믿음의 원칙 안에서 양심 형성의 중요성, 자유롭고도 고지된 승낙, 윤리적 분별, 이중효과, 합법적 협조, 전문적 통교 등의 원칙들을 포함시킨다. 물론 이러한 원칙들이 순수한 그리스도교적 가치들만은 아니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 원칙들을 더욱 명백하고 확실하게 만들어 지혜로운 결정의 실질적 안내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원칙들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 공동선, 보조성 및 가능성, 인격의 전체성을 포함시키고, 희망의 원칙 안에는 고통을 통한 성장, 인격화된 성, 관리와 창조성의 원칙들을 분류하고 있다.

 

그들은 이중효과의 원칙이나 전체성의 원칙 등 전통 가톨릭 윤리신학에서 발전되어 온 원칙들과 현대의 생명 의료 윤리에서 발전된 새로운 개념들을 종합하여 모두 그리스도교적 비전으로 정리하면서 생명윤리 철학과 신학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는 다음 연재에서 이들의 12가지 생명윤리 원칙들을 요약 소개하기로 한다. 이들이 자신들의 틀 안에 포함시키지 않은 일부 전통적 윤리 원칙들은 본 연재 제2부(생명윤리의 문제들)에서 필요할 때마다 따로 소개될 것이다.